커져가는 '박정희 동상' 논란..반복되는 '동상(銅像) 이몽'

임선영 2017. 11. 1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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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기증식 앞둔 '박정희 동상'
찬성 측과 반대 측 갈등 깊어져
건립 위해선 서울시 심의 거쳐야
재단, "기증식 후 절차 밟겠다"
서울의 동상 55개, 갈등 되풀이
경북 구미시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동상. [프리랜서 공정식]
━ 세우려는 자 VS 막으려는 자 지난 10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앞. 더불어민주당 소속 마포구의회 의원 8명이 ‘박정희 동상 건립 결사반대’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계단에 섰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이들은 성명서에서 “마포구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려는 작태를 즉시 중단하라. 마포구가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한 독재자 박정희의 역사를 되새기는 암울한 장소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마포구의회 의원들이 '박정희 동상 건립 반대' 성명서를 읽고 있다. 임선영 기자
오후 4시쯤 보수단체의 회원 이모(67)씨는 이 시위 현장을 찾아 “박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시설 안에 동상을 세우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항의했다. 건립 반대 시위가 오후 5시쯤 끝날 때까지 기념관은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지난 10일 '박정희 동상 건립' 반대 시위 현장을 찾은 보수단체 회원 이모씨(오른쪽)가 시위에 항의하고 있다. 임선영 기자
━ 내일 동상 기증식에선 무슨 일이

박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14일)을 맞아 13일 오전 상암동 기념관에선 ‘박정희 동상’ 기증식이 열린다. 이를 앞두고 건립 찬성 측과 반대 측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시민단체 ‘동상건립추진모임’이 제작한 동상을 기증받아 기념관에 세우려고 한다.

청동으로 만든 이 동상은 높이 4m20cm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을 만든 조각가 김영원씨 작품이다. 2012년 문을 연 기념관은 시유지를 무상으로 빌려 쓰고 있어 조형물을 세우려면 서울시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이봉수(55) 마포구 의원은 “재단이 서울시의 심의를 받지 않고 13일 기증식에서 동상을 세울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관계자는 “심의를 통과하면 설치할 것이다. 13일에는 동상을 기증받는 행사만 한 후에 서울시에 동상 건립을 위한 심의를 요청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등 동상 건립 반대 측은 13일 기념관 앞에서의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 마포구 주민들의 생각은? ‘박정희 동상 건립’을 바라보는 마포구 주민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기념관 앞 아파트에 거주하는 직장인 허모(45)씨는 “기념관에 공공도서관은 아직도 개관하지 않고 있으면서 동상을 세워 기념관 성격만 강화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내부 전경. 최정동 기자
하지만 대학생 홍모(26)씨는 “박 전 대통령은 경제 발전을 이끈 공적도 있는 만큼 서울에 동상을 세우는 게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관을 둘러본 박모(70)씨는 “기념 시설에 동상이 없는 게 더 이상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 있는 1970년대 봉제 공장 재현 모습 . 최정동 기자
━ ‘가장 어려운’ 심의에 서울시는 속앓이

‘동상 허가권’을 가진 서울시의 고민은 커가고 있다. 여론이 갈려 서울시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재단이 동상 건립 심의를 서울시에 요청하면 새로 꾸려질 공공미술위원회가 심의한다. 지금까지는 ‘서울시 동상·기념비·조형물 건립 및 관리 조례’에 따라 시유지에 세워지는 조형물에 대해선 각 건별로 별도 위원회를 만들어 심의했다.

하지만 이달 19일부터는 ‘공공미술 설치 및 관리 조례’에 따라 신설되는 공공미술위원회가 심의를 맡게 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동상 건립 반대 측과 찬성 측이 위원회 인적 구성부터 문제 삼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미술 전문가와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동상이 가진 역사성, 조형성, 장소의 적합성 위주로 심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인물 적합성 논란부터 ‘싱크로율’ 지적까지 서울에 세워진 동상은 시유지에 있는 것만 35개다. 국유지·구유지의 동상을 합치면 50여 개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중앙포토]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중앙포토]
서울 남산공원의 백범 김구 동상. [중앙포토]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설치된 을지문덕 장군 동상.[사진 서울시]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있는 독립운동가 조만식 선생의 동상.[사진 서울시]
서울을 포함한 전국에서 ‘동상 논란’은 반복되고 있다. 1991년 서울대공원에 세워진 인촌 김성수(1891~1955) 동상은 독립운동기념단체 등의 철거 요구에 직면에 있다. 올 4월 대법원이 인촌의 일부 친일행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요구는 더 세졌다.
서울대공원의 인촌 김성수 동상은 독립운동기념단체 등의 철거 요구를 받고 있다.[사진 서울대공원]
2012년 경기도 군포시에 설치된 ‘김연아 동상’은 5억2000만원을 들여 만들었지만 김연아를 닯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인물을 본뜬 것은 아니지만 가수 싸이의 말춤 안무를 본떠 강남구에 세워진 ‘강남스타일’ 동상(4억원)도 시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충북 음성군 생가터 앞에 세워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동상은 논란이 일자 군청에서 자진 철거했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안무를 본떠 만든 동상.[중앙포토]
경기 군포시의 김연아 동상은 김연아와 전혀 닮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는다.[중앙포토]

━ “동상 형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해야 할 때” 논란이 잇따르자 서울시는 동상에 관한 심의를 강화하고 있다. 2015년부터 올 10월까지 서울시의 동상이나 기념비 심의결과를 보면 9건의 심의 중 한 번에 통과한 것은 2건뿐이다.

한강 방어전투 기념물, 정일형 박사(1904∼1982) 흉상은 각각 공적 내용 불명확, 설치 장소(장충단공원)와의 부조화 등을 이유로 부적합 결정이 내려진 상태다.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는 “도시환경에 현재와 같은 동상 형식이 적합한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 볼 시점이다. 위치, 규모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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