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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경제]<아이 캔 스피크>-'1코노미' 시대 이웃과 함께 사는 방법

입력 2017. 11. 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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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를 꼭 어둡고 무겁게 만날 필요는 없다. 슬픈 웃음은 때로 더 큰 울림을 준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유머와 풍자로 폭로했다.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가 꼭 그런 영화다. 영화 전반부엔 생각없이 웃지만 후반부 그 웃음의 의미를 아는 순간 끝내 눈자위가 벌겋게 된다.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말할 수 있어요’와 ‘증언하겠습니다’다.

일흔여섯의 봉원동 할매도깨비 나옥분 여사(나문희 분)는 민원왕이다. 20여년간 명진구청에 넣은 민원만 무려 8000여건. 이곳에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 분)가 전출온다. 옥분은 우연히 민재의 영어실력을 보고는 자신의 선생님이 되어줄 것을 요구한다. 옥분이 그 나이에 굳이 영어를 배우려는 이유는 뭘까.

옥분이 동네 곳곳을 간섭하는 이유는 ‘외로워서다’. 옥분은 위안부 출신이라는 것을 평생 숨기며 혼자 산다. 옥분만 외롭게 살아왔을까. 옥분은 민재 동생의 밥을 챙겨주면서 비로소 민재와 친해진다. 민재가 묻는다. “(밥을) 왜 챙겨주신 거예요?” 옥분이 답한다 “아이가 라면 부순 걸 먹고 있더라고. 짠해서. 나도 혼자 먹으면 적적하니까.”

민재 형제는 둘만 산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다. 억척스러운 족발집 혜정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처녀다. 이웃인 진주댁의 슈퍼에도 다른 가족들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가 유별난 것일까?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 2016년 기준 5가구 중 1가구는 홀로 사는 1인 가구다. 2인 가구까지 합치면 전체 가구의 절반이 넘는다. 특히 고령자 가구는 3가구 중 1가구가 1인 가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소비형태도 바뀌고 있다. 이같은 경제현상을 ‘1코노미’라고 한다. 1인(일인)과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다. 혼밥(혼자 밥먹기), 혼술(혼자 술마시기), 혼여(혼자 여행가기), 혼놀(혼자 놀기) 등 다양한 신조어가 생겨났다. 소포장·소용량 상품이 봇물을 이루고, 즉석에서 만들어 소비할 수 있는 간편상품도 많아졌다. 영화 속 민재 형제가 먹는 냉동만두나 라면은 혼밥족의 대표 아이템 중 하나다. 편의점 이용이 늘어나면서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을 사먹는 사람), 편채족(편의점에서 1인분 요리에 필요한 채소를 소량 구매하는 사람)이라는 용어도 생겼다. ‘혼금’(혼자금융) 마케팅도 시작돼 1인 가구 맞춤형 연금상품·전세자금대출이나 1인 가구가 많이 기르는 반려동물 보험이 출시됐다.

1코노미 시대는 타인의 시선이나 미래를 의식하기보다 현재와 자신의 삶을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건강(Forhealth), 싱글족(One), 여가(Recreation), 편의(Moreconvenient), 고가(Expensive)의 첫 자로 만든 포미(FORME)족이나 ‘인생은 한 번뿐이다(You Only Live Once)라는 욜로족(Yolo)이 그런 사람들이다. 기업들은 이런 1인 가구를 겨냥해 제품을 집중개발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솔로 이코노미(solo economy)’라 일컫는다.

민재는 자기계발을 위해 영어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욜로족으로 매우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다. 그러다 남을 위해 사는 옥분 할머니를 보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어쩌면 영화는 1코노미시대를 현명하게 맞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자기만의 작은 방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나와 이웃과 함께 서로 돕고 살아야 되는 시대라고 말이다. 그 시작은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고 다독여 주는 데서 출발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시민의 지지도 그 중 하나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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