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관계 개선 양국 간 협의 결과' 완전 분석

천관율 기자 입력 2017. 11. 1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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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1일 한국과 중국 정부가 발표한 '한·중 관계 개선 양국 간 합의 결과'에는 '우려를 인식하고' 혹은 '입장에 유의하며' 등 모호한 표현이 많다. 무슨 의미인지 분석해보았다.
ⓒ시사IN 조남진

한국과 중국은 10월31일 ‘한·중 관계 개선 양국 간 협의 결과’를 발표했다. 잔뜩 꼬여 있던 한·중 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됐다. <시사IN>이 공식 발표 문건을 해부해보았다. 국제정치 전문가인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서울대 국제협력본부장·왼쪽 사진)와의 90분 인터뷰 및 <시사IN> 취재 결과를 문건 해설 형태로 재구성했다.

① “한국 측은 중국 측의 사드 문제 관련 입장과 우려를 인식하고” “중국 측은 한국 측이 표명한 입장에 유의하였으며”

이 협의는 어떤 규칙을 서로에게 강제한다기보다는 상호간에 인식을 공유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우리 정부는 “입장은 입장이고 현실은 현실이다”라는 표현을 썼다. 양국 간 이견은 이견대로 확인하고, 현실에서 가능한 문제부터 풀어나간다는 접근법이다.

이 문서는 신뢰 구축 프로세스의 첫 단계다. 현재는 사드 배치를 하지 않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대중국 약속이 파기되어 신뢰가 바닥난 상태다. 국제정치의 논리로 보면 신뢰란 지도자 개인에 대한 호불호보다는 투명성과 비가역성(되돌릴 수 없음) 등에서 나오는 결과다. 지금은 신뢰를 통해 결과물을 내는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신뢰를 쌓아나가는 첫 단계다.

②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는 그 본래 배치 목적에 따라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 것으로서 중국의 전략적 안보이익을 해치지 않는다.”

한국 정부가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논리다. 사드 체계는 북한의 공격을 탐지하고 방어하는 것으로, 중국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이는 중국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논리다. 사드 배치는 남한의 안보 이슈로 주권국가의 결정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자신들을 겨냥하지도 않는 사드를 두고 중국이 간섭하는 것은 주권 침해라는 결론도 따라온다. 중국은 한국의 주권 침해를 시도해놓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경제제재로 보복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국가가 된다.

③ “중국 측은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를 반대한다.”

중국이 생각하는 ‘전략적 안보이익’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게 사드 논의에서 중요하다. 중국의 핵심 관심사는 ‘상호 억지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즉,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쟁을 일으키면 서로 손해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냉전기에 등장한 고전적인 모델이 ‘상호확증파괴’다. 이 모델에 따르면,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들은 서로 전쟁하지 않는다. 선제공격으로 상대의 핵 보복 능력을 완전히 파괴하지 못한다면 핵 반격을 당할 위험을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 엮인 국가들끼리는, 내가 먼저 때리면 나도 죽는 관계가 성립한다. 이 힘으로 선제공격은 양쪽 다 억눌러지고 결국 전쟁이 억지된다.

상호 억지를 유지하는 고전적인 방법은, 상대가 요격하거나 선제공격 한 번으로 파괴하는 게 불가능할 만큼 충분히 많은 핵과 장거리 공격 능력을 보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안보전략은 이와 다르다. 중국 안보체제의 중요한 원리는 ‘최소 억지(minimum deterrence)’와 ‘선제 핵공격 포기(no-first using)’이다. 대규모 핵전력을 보유하는 고전적 억지 전략을 쓰지 않는다. 중국의 핵탄두 보유량은 300기 안팎으로 추산된다. 각각 7000기 이상을 보유했다고 간주되는 미국과 러시아와는 차이가 크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전력은 더 처지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Reuter 지난 3월14일, 영업 정지된 롯데마트 점포 앞을 지키던 중국 공안이 지나가는 사람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미국과의 ‘상호 억지력’을 유지하는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이다. 유사시 중국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은 충분하지 않다.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은 타격할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은 해외 파병군의 대규모 희생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이것이 중국이 생각하는 ‘최소 억지’가 작동하는 핵심 고리일 수 있다.

이 추론이 옳다면, 주한 미군의 방어능력을 강화하는 사드는 중국과 미국이 ‘전쟁을 하면 서로 손해인 상태’에서 미국을 혼자 빠져나가도록 만든다. 중국의 억지 능력이 손상된다. 여기서 사드가 방어 무기냐 공격 무기냐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 ‘상호 억지’가 안보의 핵심 원리인 세계에서, 상대의 보복 능력을 무력화하는 방어 무기란 곧 최고의 공격 무기다.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라는 논리도 이런 이유로 중국 정부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중국은 사드 배치가 미국의 현상 변경 시도라고 보고 있다. 즉, 강대국 질서를 지탱하던 계약 위반이라고 본다. 냉전 이후 국제사회는 공식 핵보유국끼리의 상호 억지력을 안전 보장의 핵심으로 간주해왔다. 이것은 강대국끼리의 암묵적인 계약이었고, 중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인정하는 핵보유국이므로 이 계약의 일원이다. 한국 정부는 중국의 주장을 ‘중국 중심의 신패권 질서 구축’으로, 한국 정부의 주권을 무시하는 공세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국의 인식은 반대다. 오히려 중국이 강대국 계약의 현상 유지를 원하고 미국이 현상 변경을 시도한다고 본다.

④ “양측은 양국 군사당국 간 채널을 통해 중국 측이 우려하는 사드 관련 문제에 대해 소통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논의의 체급을 군사당국 단위로 낮췄다. 현재 배치된 사드 문제는 양국 정상이 논의하는 국가전략 차원에서 다루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 역시 기왕에 배치된 사드는 기정사실화하는 의미가 있다. 또, 한국군이 사드 운용 관련 정보를 가능한 범위에서 제공하면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⑤ “중국 측은 MD 구축,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협력 등과 관련하여 중국 정부의 입장과 우려를 천명하였다. 한국 측은 그간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혀온 관련 입장을 다시 설명하였다.”

이른바 ‘3불(不)’ 논란으로 후폭풍이 인 그 대목이다. 협의 도출에 앞서 10월30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은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국 관점에서는 셋 다 ‘현상 변경 시도’다. 중국의 대미 억지능력을 떨어뜨린다. 방어 무기와 공격 무기가 사실상 같다는 상호 억지 체제의 특성을 생각하면 왜 중국이 MD와 사드 추가 배치를 위협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한·미·일 군사협력은 중국이 ‘대중국 포위망’으로 인식한다. 동북아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등장한다고 보는 것이다.

ⓒ연합뉴스 7월6일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미국이 구축하려 하는 MD 체제는 원리상 강대국끼리의 상호 억지를 훼손한다. 냉전 이후 강대국들의 암묵적 계약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중국의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국제사회가 이런 시도를 용인했던 것은 이른바 ‘불량국가’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게 행동할 만큼의 ‘체급’을 갖추지 못하면서 핵무기 제조에는 성공한 나라들이다. 북한도 이에 포함된다.

이런 ‘불량국가’들에는 상호 억지 원리를 적용하기 어렵다. 이 원리는 핵 보유 정부의 냉정한 손익계산 능력과 확고한 핵무기 운용 장악 능력을 전제로 성립하는데, ‘불량국가’들은 이를 만족하지 못한다. 핵무기 운용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을 가능성, 테러 집단에 핵을 유출할 위험, 정부 스스로 무모한 모험주의에 포획될 걱정에 모두 취약하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요격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MD가 중국과 러시아 등 공식 핵보유국 상대로까지 펼쳐진다면, 이는 상호 억지 원리를 훼손하는 중대한 현상 변경 시도라고 중국은 본다.

변수는 미국이다. 미국 정부는 한·중 협의에 환영 논평을 냈다. 그러나 불씨는 구조적으로 잠복해 있다. 한국의 MD 체제 편입과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 구축은 둘 다 미국의 주요 관심사다. 11월1일자 <뉴욕타임스>는 익명의 행정부 고위관리를 인용해 “이것(한·중 협의)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3불’을 한국의 ‘약속’이라고 표현하자, 한국 외교부는 중국 측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약속’ 대신 ‘입장 표명’이라는 용어를 쓴다.

⑥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중국은 그동안 한국에 대한 사드 경제보복을 공식적으로는 부인해왔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기류일 뿐이라는 태도였다. 이번 협의문에서 그동안의 교류협력이 정상 궤도에서 이탈했다고 표현했다. 이로써 중국은 경제보복이라는 제재 수단을 사용했음을 은근히 확인했다. 이 협의 결과 문건은 그 자체로 조약이나 동맹과 같은 구속력은 없지만, 파기할 경우 신뢰의 상실이 뒤따를 것이고, 그 경우 어떤 제재 카드가 있는지까지 암시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대중국 경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민간의 중국 시장 진출이나 투자를 좌지우지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번 사태가 시장 참가자들에게 중요한 경험이 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앞으로 시장 참가자들은 차후 중국과의 경제협력 기회의 비용과 편익을 평가할 때 ‘정부 정책 리스크’를 계산에 집어넣을 수는 있다.

이번 협의의 대차대조표는 아래와 같이 그려진다. 한국 정부는 기왕에 들어와 있는 사드를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사드 경제보복도 해소했다. 반면 중국은 MD,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동맹과 같은 미국의 현상 변경 시도에서 한국을 일단 떼어놓았으며, 경제보복에 대해 사과하거나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추후 약속 파기에 대한 ‘제재 수단’도 확인했다.

그 결과에 대한 손익계산은 노선과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중국을 ‘전략적 협력동반자(협의 결과에 나오는 표현이다)’로 본다면, 중국이 얻어간 과실이 한국 처지에서 별다른 손실이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다. 중국을 잠재적 긴장 관계의 대상으로 본다면, 내어준 카드가 지나치게 크고 단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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