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몇 등급이야?"에 저항하는 발랄한 찍소리

2017. 11. 1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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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투명가방끈' 운영위원 난다·따이루·호야

서열·경쟁사회 비판하며 대학 거부
2011년 이후 '투명가방끈' 운동 7년
거부 선언자들이 맞닥뜨려온 시간들
모임에서 상처받고 돌아오는 부모님
구직 때마다 직면하는 고졸의 장벽

학력·학벌 차별에 그들답게 맞서며
62명의 대학 거부자들이 꿈꾸는 세상
"대학 안 가도 차별받지 않는 삶 위해
한국 사회 '정상성'에 태클 걸고 싶다"
연기된 수능날 10여명 대학거부 선언

[한겨레]

14일 서울 용산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투명가방끈’ 운영위원 난다(왼쪽부터), 따이루, 호야씨. 이들은 7년 전 대학입시 거부 선언을 하고 7년째 이 단체에서 활동 중이다.

한반도를 뒤흔든 포항 지진으로 이튿날로 예정돼 있던 ‘수능’이 23일로 연기됐다. 지진은 수능뿐 아니라 매해 수능일에 맞춰 진행되던 ‘대학입시 거부 선언’도 연기시켰다. 한국에서 자란 젊은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왜 열아홉살이 되면 모두 대학수학능력을 시험당해야 하는지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고, 대학 서열상의 위치와 수능시험 등급으로 분류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들을 만나봤다. 지진 발생 전날 한 인터뷰에 지진과 수능 연기 상황을 반영했다.

“지금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니?”

“공무원 시험이라도 봐라.”

“대학 나와야 아빠처럼 고생 안 한다.”

난다(26)씨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말들이다. 난다씨는 대학에 진학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의 억압적 공기, 입시를 노골적으로 강조하던 학교가 싫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는데, 대학에 가고 싶다는 마음도 딱히 들지 않아서 굳이 수능을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는 2011년 대학입시 거부 선언을 한 뒤 지난 7년을 바쁘게 보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선택한 길이 쉽진 않았다. 20대 초반엔 어딜 가도 ‘대학생이냐’는 질문부터 받았고, 아르바이트를 위해 이력서를 준비할 땐 학력란에 뭐라고 써야 할지 머쓱했다. 난다씨의 20대 삶은 여느 청년들처럼 불안했지만, ‘난 학교가 아니어도 잘 살고 있다’는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열심히 살았다.

땅이 흔들리니 ‘지옥 같은 일주일’이 연장됐다. 포항 인근에선 지진의 공포와 싸우며, 다른 지역에선 정리한 수험서를 다시 꺼내며, 59만 수험생들은 ‘늘어난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반면 시험과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찾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에 가지 않는 삶을 선택한 10여명의 청소년이 모여 오는 23일(지진으로 선언일도 연기) ‘2017 대학입시 거부 선언’을 한다. 2011년 30명을 시작으로, 2012년 18명, 2013년 7명 등 매해 수능일에 대입 거부를 선언한 사람들이 2017년까지 62명이 됐다.

모든 사람이 대학을 가야 한다는 편견에 반대하며 탄생한 대학 비진학자들의 모임 ‘투명가방끈’이 올해 7년을 맞이했다. 고3 100명 중 70명꼴로 대학에 가는 사회에서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투명가방끈 운동은 신선했다. 대학 진학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대학 외 삶의 방식을 가르치지 않는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투명가방끈은 70여명의 청소년, 대학생, 교사, 활동가 등을 회원으로 두고 학력·학벌 차별 실태조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그들은 대학과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사회에 반대하며 ‘8대 요구안’을 만들어 서명 운동을 했다. 학벌에 따른 혐오 표현 거부 캠페인과 취업 등에서 학력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도 벌이고 있다.

2011년 첫 대입 거부 선언을 한 뒤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한 이 단체 운영위원 난다(26), 따이루(24), 호야(25)씨를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이들은 대학 거부 선언 이후 글쓰기, 강연 등을 이어가며 10대 인권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커피숍, 편의점, 생활잡화점, 사무보조 등 지난 7년간 그들은 안 해본 알바가 없다. 대학을 거부하고 고졸의 알바 노동자로 살아온 이들에게 ‘대학’이란 무엇인지, ‘학벌’이란 무엇인지를 물었다.

“경쟁에 묻혀 버리기 싫었다”

―7년 전 왜 대학입시 거부 선언을 했나?

따이루 10대 인권 운동을 시작한 게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초등학교와 달리 억압적인 학교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됐다. 머리도 자르라고 하고 교복도 입어야 하고…. 특히 영어 교사가 너무 싫었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애들을 때렸다. 교과서 진도 나갈 때 자기 기준에 안 맞는 행동을 하는 애들 이름을 칠판에 적고 옆에 작대기 하나씩을 그어 나갔다. 수업이 끝나면 작대기 수대로 애들을 때렸다. 그 교사 덕분에 인터넷에서 ‘선생 골탕 먹이는 방법’을 검색하다가 청소년 운동 단체를 알게 됐다. 10대 때 두발 자유 운동 열심히 했고, 고등학교 때 자퇴했다. 2011년 대학입시 거부 선언을 하고 비정기 알바를 하면서 10대 인권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대입 거부 선언을 한 건 ‘찍소리’라도 내고 싶어서였다. 그냥 조용히 경쟁에 묻혀 버리기 싫었다. 학교 안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를 경쟁으로 만드는 것이 문제이고, 정상적 삶의 궤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삶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것이 문제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호야 저는 대학을 거부하고 반년 정도 가족들과 냉전을 겪었다. 가족이라서 더 격렬한 반응이 있었다. 대학을 안 간다고 했을 때, 남의 일이면 그러려니 하는데 자기 자식이면 그렇게 안 되는 것 같다. 대학에 안 갈 수는 있는데 왜 하필 내 딸이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엄마들은 모임에 가면 자식들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엄마가 모임에 다녀오실 때마다 위축되어 돌아오시는 게 속상했다. 최종 학력이 대졸이 아니면 고생할 게 너무 뻔하니까. 우리나라는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해서 가족 구성원끼리 서로를 책임져야 하는데, 그걸 하려면 자식이 대학에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이 아니라 가족의 삶을 산다.

난다 집에선 부모님이 압박하지 않는데도 제가 스스로 압박을 받는다. 일단 엄마는 다른 집에 비해 제 선택을 지지해주는 편이다. 하지만 엄마가 사람들 만나면서 나 때문에 상처받지 않을까 나 스스로 눈치를 보게 된다. 가끔 엄마가 나한테 한번씩 ‘미안하다’고 하는데, 난 ‘뭐가 미안해, 괜찮아’라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살피는 그런 긴장감이 있다. 육체노동을 하시던 아빠가 하루는 ‘너도 지금 공부 안 하면 아빠처럼 산다. 아빠가 배운 게 없어 이렇게 산다’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할 말이 없었다. 그날 혼자 집에 와서 막 울었다. 부모님한테 상처를 준 것 같은 죄책감이 있다. 친척들은 ‘공무원 시험 봐라’ 이런 이야기 많이 한다.

“차별은 더 공고해졌다”

―7년 동안 한국 사회에 변화가 있었다고 느끼나?

호야 대학을 선택하지 않는 삶에 대해 개방적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늘어난 것 같다. ‘그래, 대학 안 가도 되지’라는 생각도 7년 전보다는 많아진 것 같고. 하지만 경쟁력 있는 인간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사회 자체가 달라지진 않았다. 대학 졸업장을 갖지 못하면 ‘저임금·고위험 노동’에 종사하는 구조는 그대로다.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일수록 또 다른 경쟁력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아이유처럼 대학에 안 갈 수도 있어, 하지만 대학에 안 가려면 아이유처럼 예쁘고 인기 있고 노래도 잘 부르고 능력도 있어야 해, 이렇게 생각한다.

난다 7년간 우리 사회가 학력·학벌에 대한 차별을 드러내는 방식이 더 노골화됐다고 느낀다. 무슨 대학교 대나무숲 이런 페이스북 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자신은 명문대에 들어가느라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애썼는데 왜 내 학벌을 인정해주지 않느냐는 글이 올라온다. 학벌에 따른 차별은 정당하다는 학벌 차별 담론이 더 공고해졌다. 같은 학교라도 ‘수시충’ ‘지균충’ ‘재외국민충’ 등의 말로 끊임없이 차별을 생산한다.

따이루 그동안 정부가 ‘고졸도 잘 사는 사회’를 많이 강조했다. 그런데 고졸도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빨리 취업해서 돈 벌어라’, ‘고졸도 성공할 수 있다’는 고졸 성공 신화를 강조했다. 이것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하지 않으면 여전히 낙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쟁의 신화가 더 강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투명가방끈 회원 나래씨는 단체 누리집에 ‘2017년 나의 대학입시 거부 선언' 릴레이 기고를 하며 직접 손그림을 그려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손그림 나래 제공

―‘고졸’로 살아가는 시간들이 어땠나?

따이루 힘들고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라 생각한다. 대입 거부 선언을 하고도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두 번 있었는데, 둘 다 연애가 하고 싶었을 때였다. 청년들의 인간관계가 대학을 통해 형성되니 대학을 선택하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고립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나기 어렵게 된다. 탈학교를 택하거나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들이 겪는 관계의 빈곤, 정보의 빈곤, 사회적 연결망의 빈곤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방끈이 보이지 않는 사회를 바랐지만 자신의 가방끈만 더 잘 보이는 경험을 하진 않았나?

난다 학력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근거없이 남발되고 있는지 경험할 때가 많았다. 업무 성격과 상관없이 무조건 ‘대졸 이상’이라고 돼 있는 학력 제한 구인광고가 정말 많다. 어떤 일자리를 구하려고 이력서를 쓰는데, 학력 기재란이 있어서 이걸 기입하기 거부하다가 담당자와 다툰 경험이 있다. 때로는 너무 불안한 적도 있다. 이번 알바가 끝나면 뭘 할까 싶을 때다. 한때 현실이 뒤통수를 딱 때리는 느낌이 들어서 ‘지금이라도 대학에 갈까’ 싶은 생각도 했다. 주변에 대학생 친구들이라고 행복해 보이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안정적 지위가 있고 ‘대학생’으로 불렸다. 나 스스로에게 붙일 이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지금은 관심사가 좀 달라져 고민에서 벗어났다.

호야 일반적인 직장을 갖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력서를 넣고 통과를 해서 어떤 직장에 합격하는 과정 자체를 못 따라가겠고, 이력서의 학력란이 여전히 있는데 고졸이라고 쓰는 게 싫다. 이런 과정은 도전하고 싶지 않은 삶이다. 대학에 가지 않아 좋았던 점도 있다. 사람들과 위계적 인간관계로 만나지 않아서다. ‘학생’이 아니라서 사람들은 나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할 때가 있다. 학생이라고 하면 아랫사람, 낮은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한 사람을 더욱 수동적 인간으로 만든다.

투명가방끈 회원 나래씨는 단체 누리집에 ‘2017년 나의 대학입시 거부 선언' 릴레이 기고를 하며 직접 손그림을 그려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손그림 나래 제공

“없는 사람 취급 받지 않겠다”

―수능이 바뀌면 입시 중심 교육도 달라질까?

호야 절대평가 수능이니 학생부종합전형이니 입시 제도는 계속 변하지만, 대학 서열은 건드리지 않은 채로 어떻게 다양하게 줄세울까만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시 방식이 다양해지면 학생들은 더욱 다양하게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데, 그 노력은 학생 개인에게 계속 전가된다. 가정형편 좋은 학생들이 결국 승리자가 된다. 금수저, 흙수저 담론이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다. 정말 부모의 재산이 가장 큰 능력인 시대가 왔다.

―어떤 삶을 꿈꾸나?

따이루 꿈과 희망이 ‘앞으로 뭘 해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독한 경쟁 속에 살면서 ‘내 능력이 부족해’ 하며 자신을 탓하거나 무기력해지지 않는 것도 희망적인 삶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만이 갖는 특유의 ‘발랄함’이 있다. 우리 회원들은 아주 발랄하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우리 힘으로 만들어 가고 있으니까.

호야 사람들이 ‘학생이세요?’ 하고 물었을 때 ‘아니요, 투명가방끈이에요’라고 답하면, ‘아하 그럴 수 있지’ 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대학에 가지 않는 선택은 수십년째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개인적인 선택이 아닌 집단적 목소리를 냈을 때 사람들이 듣게 된다.

난다 대학 입시로 많은 10대들이 고통받고 있지만 입시 교육과 학력 차별 사회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는 쉽지 않다. 대다수가 목표의식 없이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진학하는 게 현실이다. 누군가 작지만 꾸준히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없는 사람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존재를 알릴 생각이다.

투명가방끈 회원 나래씨는 단체 누리집에 ‘2017년 나의 대학입시 거부 선언' 릴레이 기고를 하며 직접 손그림을 그려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손그림 나래 제공

23일 ‘2017 대입 거부 선언’에 나설 이들 중 5명은 자신의 경험과 다짐을 쓴 수기를 투명가방끈 누리집에 미리 공개했다. 지난달엔 함께 모여 “외로움은 덜고, 용기는 더하고, 가방끈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자”며 의지를 다졌다. 그들 중 한 명인 임혜민씨는 “주변 친구들에게 ‘왜 대학에 가냐’고 물었을 때, 놀랍게도 그 어느 누구도 ‘더 배우고 싶어서’라고 말한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글·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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