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카스텔라 살해사건' 진범은 누군가

오현주 입력 2017. 11. 22. 00:12 수정 2017. 11. 2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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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상권의 성공과 실패 분석
카피 쉬운 대왕카스텔라 몰락
의심방송 아닌 점포만 늘린 탓
안목·취향없는 순진 접근으론
골목시장서도 성공할 수 없어
..
골목의 전쟁
김영준|288쪽|스마트북스
짧고 굵게 골목시장을 강타하고 사라진 ‘대만카스텔라.’ 성분이 의심스럽다는 한 방송프로그램에 직격탄을 맞아서라고들 했지만 저자 김영준은 다른 의견을 낸다. 무작정 점포만 늘리고 본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주가 스스로 무너뜨린, 이미 예고된 몰락이었다는 거다(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그즈음 대만서 건너왔다는 그 ‘빵’ 한 번 먹어보라는 말이 계속 들렸다. 한 번은 시도해야 할 듯했다. 어렵게 구한 빵은 두툼한 사이즈도 만족스러웠지만 맛에서도 시비 걸 ‘거리’가 없었다. 게다가 가격은 좀 착한가. 긴 줄을 부르는 가게가 하나 더 생겼다 싶었다.

그런데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만 본다? 한국사회에서 그런 온화한 그림은 도저히 그려낼 수가 없다. 너도나도 창업대열에 끼어들었다. 한 집, 한 블록 지나 또 한 집. 이쯤 되자 슬슬 의심이 생겼다. 이거 제대로 만든 거야? 이 가격에 이런 견적이 나와?

결국 입맛도 비슷하고 생각도 비슷한 이들이 딴지를 모으기로 했다. 팔랑귀 민족인 한국인을 정확히 겨냥한 ‘의심방송’을 내보낸 거다. 대단한 걸 건져낸 건 아니다. 대단하게 포장은 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매일 먹게 돼 있는 식용유를 빵에 다량 주입한 게 문제라고 했다.

하룻밤 새 천하에 둘도 없는 나쁜 음식이 된 빵은 팔랑귀 민족에게 버림을 당했다. 죽음을 부른 몰락. 누가 죽였나. 식용유가 죽였나. 방송이 죽였나. 팔랑귀? 이도저도 아니면 자살? 눈치챘는가. 지난해 초부터 올해 초까지 짧고 굵은 태풍처럼 스치고 꺼진 대만카스텔라 얘기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결말에 무슨 공을 그리 들이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대만카스텔라가 누구나 믿고 있는 것처럼 의심방송 한 방에 사망에 이른 것이 아니라면?

이 의혹은 뱅커 출신 경제분석가인 저자에게서 나왔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몰락의 조짐은 이미 드러났다는 거다. 갈수록 대만카스텔라 매장 앞의 줄이 점점 짧아지던 정황이 근거라고 했다. 의심방송은 그 시기를 좀더 앞당겼을 뿐이라고. 그러곤 진범으로 프랜차이즈 본사를 지목한다. 레시피가 단순하고 카피가 쉬운 점을 간파한 본사가 경쟁자를 견제하려 가맹점을 무턱대고 늘린 게 결정타였다는 얘기다. 공범도 있다. 그 장단에 기꺼이 합세한 가맹점주. 그도 그럴 것이 붐이 일기 시작한 지난해 3월 이전까지 ‘대만카스텔라’란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한 업체는 달랑 4개. 그런데 연말쯤 되자 12개로 늘어났다. 그중 11월 뒤늦게 등록한 한 업체는 이후 두 달여 동안 83개의 점포를 유치하기도 했다니.

퍼즐이 맞춰졌나. 비단 대만카스텔라뿐이겠나. 크기가 정해진 파이에 서로 포크 하나씩 들이밀다가 시장 자체를 죽여버린 비극은 한두 건이 아니다. 자영업자의 진한 비애까지 얼룩진 이른바 ‘골목의 전쟁’이다. 책은 ‘너희가 골목시장을 아느냐’란 질문에 저자가 내놓은 상식 이상의 답안이다. 동네비즈니스라고 무시할 게 절대 아니란 것, 대로상권 이상의 성패논리가 무섭게 작용하는 ‘신개념 자기 밥그릇 챙기기’란 걸 조목조목 꺼내 보인다.

△그 많던 ‘무한리필 연어집’은 다 어디로

어찌 보면 망해버린 다른 자영업과 비슷하지만 전혀 뜻밖의 사연도 있다. ‘무한리필 연어집’도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흔히 “장사가 안 된다”고 푸념하면 0.1초만에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원인분석은 이거다. “손님이 없으니까.” 그런데 정말 그런가. 연어집을 접은 사장들은 ‘웃기는 소리’라고 한다. 왜? 그들에겐 “재료를 구할 수 없어서”가 답이니까. 사실 그랬다. 장사 하루이틀 하고 말 것도 아닌데 물량을 계산하지 못하고 덤벼들었던 거니.

2015년 하반기 ‘무한리필 연어집’ 사업이 붐을 이뤘던 건 순전히 저렴한 가격 덕분이었다. 너도나도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런데 딱 그해만 그랬다. 2016년이 되자 예전 가격으로는 연어를 도저히 확보할 수 없게 됐는데. 유럽연합이 정치적인 이유로 막아놨던 러시아 판로를 풀면서 생긴 일이다. 한국의 연어집 대부분은 노르웨이산 양식연어로 장사하던 터. 국제정치 논리에 파도치던 가격변동을 미처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골목상점이 러시아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버틸 재간이 있나. 앞다퉈 문을 열었던 가게들은 딱 1년 만에 앞다퉈 문을 닫았다.

자영업이 본전이라도 건지려면 2년 이상은 내다봐야 한단다.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뽑는 기간이 1~2년은 된다니까. ‘무한리필 연어집’은 고작 그조차도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이 빚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사례가 됐다.

△연남동·경리단길엔 뭐가 있길래

골목이면 다 같은 골목인가. 그것도 아니다. 저자는 장소가 주는 상징성에 주목한다. 최적의 입지란 게 있다는 뜻이다. 가령 명동의 화장품, 연남동의 중국음식점, 경리단길의 추러스집 등. 장사가 잘된다고 다른 동네에 똑같은 매장을 옮겨다 놔봤자 절대 신통한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져온 공간경제학도 주목할 점이란다. 조용하던 동네가 갑자기 뜨면서 덩달아 뛰어오른 권리금이 원주민을 몰아내는 현상. 저자가 볼 때 이는 큰 도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과 맞물려 있다. 결국 주택이 밀집한 골목까지 상가가 쳐들어온 셈인데. 이로 인해 단독주택·다가구주택단지까지 새로운 상권에 진입한다. 자영업이 완전히 몰락하지 않는 이상 10년쯤 뒤에는 2000년대 초반 지은 주택들이 상가로 변할 거란 전망도 해볼 수 있다고 했다.

△종말론자의 ‘자영업 붕괴’ 실화되나

자영업에 뛰어들 때 대부분은 자본이 가장 큰 문제다. 하지만 가진 것이 자본만이어도 문제가 된다. 그저 번듯하게 차려놓기만 하면 돈은 저절로 벌릴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순간 재앙은 시작되니까. ‘아무나 창업’도 경계의 대상이다. 진짜배기를 구분할 안목도 없고 취향도 미지근하고. 이런 순진한 접근으로 ‘어쩌다 보니 자영업자’가 된 이들의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가 된다는 거다. 퇴직금 말아먹기 딱 좋다는 얘기다.

보통의 상식을 뒤엎는 시장이야기로 승부를 냈다. 그 골목스토리가 계속 이어질 ‘내일’에 관심을 갖게 한 게 책의 미덕이다. 물론 조건이 있다. 골목시장의 허리라 할 자영업의 생존 여부. 저자는 5년 내 생존율을 현재의 20%대에서 60%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만이 종말론자가 부르짖는 ‘자영업 붕괴’를 막는 일이라고. 가장 큰 과제는 내수시장을 키우는 거라지만 이외에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당장 소비자와 판매자 간의 불신을 줄이는 거란다. “시장에서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의 간극을 좁히면 좁힐수록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했다.

흥한 이유는 한 가지인데 망할 이유는 수십 가지다. 골목도 더 이상 푸근한 장소는 아니란 걸 극적인 재미로 에둘러 전하려 했다면, 성공했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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