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에 대한 '알쓸신잡'.. "읽기 불편한 작품은 NO"

이윤주 입력 2017. 11. 25. 04:42 수정 2017. 11. 2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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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 신인상 심사위원은 3040

신춘문예는 원로 문인들이 많이 봐

실험성보다 대중성 갖춰야

선배들 “당선보단 다음 작품 고민을”

한국 문학의 봄은 1월 1일, 각 신문사들이 신춘문예 당선작과 심사평, 당선자 소감을 게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문학 출판시장이 줄고, 작가 데뷔 방식이 예전보다 다양해졌지만 신춘문예 열기는 쉽게 식지 않는다. 근대 문학의 종말을 고하는 지금도 여전히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게 신춘문예다.

신춘문예의 계절이 시작됐다. 문청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열병을 앓으면서도 희망의 싹을 키워가는 시기다. 신춘문예 당선자와 전 심사위원들에게 물었다. 어떤 작품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어떤 작품이 탈락하는가, 당선 후에는 어떤 길이 열리는가를. 신춘문예 응모자든 독자에 불과한 사람이든 읽어볼 만한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 있을지 모를 신춘문예 잡학사전)이다.

1977 한국일보 신춘문예 응모 풍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신춘문예, 국민 백일장임을 기억하라

통상 한국에서 순문학 작가가 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신춘문예에 당선되거나, 창비 문학동네 같은 문학출판사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거나, 문예지에 투고해 글을 발표하는 방법이다. 이중 세 번째 방법은 손에 꼽힐 정도다.

신춘문예가 온 국민이 참여하는 문학축제라면, 출판사 신인상의 경우 독자의 선호도가 확연히 갈릴 수 있는 ‘선수’들의 경쟁이다.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심사한 이광호 문학평론가(문학과지성사 대표)는 “매체 특성상 신춘문예와 신인상은 당선작 성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신문사가 주최하고 매년 심사위원이 바뀌는 신춘문예가 일정 수준의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작품을 당선시킨다면, 출판사 신인상은 해당 출판사의 문학적 성향에 맞는 작품을 최종 낙점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신인상 심사를 주도하는 문학출판사 편집위원들이 30~40대 젊은 비평가인데 비해, 신춘문예의 경우 통상 50~70대 중견 원로 문인들이 최종심을 담당해 “적어도 지금까지는 훨씬 보수적인 선택”(이광호)을 한다. 이 평론가는 “문예지는 특정 독자가 보기 때문에 실험적이거나 진보적이라도 독자가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며 “반면 신춘문예는 신문, 그것도 1월 1일자에 실리기 때문에 평균적인 문학 감수성에서 받아들이기 불편한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김영하 작가다. 그의 단편소설 ‘거울에 대한 명상’은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떨어졌다. 낙선 이유가 “후반부의 무게에 비해서 전반부의 성애가 너무 가볍고 진하다. 새해 첫날에 도저히 이런 걸 내보낼 수가 없다”(심사위원 백낙청, 최일남)였다. 이 작품은 결혼을 앞둔 한 남자와 남자의 여자 친구가 한강변을 걷다 섹스를 하기 위해 버려진 폐차의 트렁크에 들어갔다 갇혀 죽는다는 내용으로 영화 ‘주홍글씨’의 원작이 됐다. 김 작가는 같은 해 문예지 ‘리뷰’에 이 작품을 발표해 등단했다. 2014~201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심사한 이수형 문학평론가(문학과지성사 편집동인)는 “심사위원이 같은 기준을 두고 심사하더라도 이미 투고자의 성향이 다르다”며 “출판사 신인상 투고작에는 출판사 성향을 미리 가늠한 작품이 많다”고 말했다.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수상자 가운데 훗날 인기작가로 성장한 고교생 최인호(오른쪽)씨의 교복차림이 흥미롭다.한국일보 자료사진

신춘고아? 신인 고비 넘으면 자유를 맛보리라

한때 신인 작가들 사이에서 “신춘문예로 이름을 얻고, 출판사 신인문학상으로 실리를 얻는다”는 말이 유행한 적 있다. 출판사 신인문학상의 경우 해당 잡지 출신의 작가들에게 작품 발표 기회를 관대하게 제공하는데 비해, 신춘문예 출신들은 새해 첫날을 화려하게 장식했다가 소속이 없는 ‘문단 고아’로 전락한다는 냉소다.

신춘문예 출신의 작가들의 말은 다르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로 등단한 김금희 작가는 “첫 단행본을 낸 후에는 (신춘문예 출신이란 점이) 장점으로 작용했다”며 “신인상 받고 등단하면 출판사 색깔을 고민하게 되는 데, 이점에서 자유로워 좋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당선된 해에, 같은 해 등단한 이우성 시인과 2012년 등단한 김솔 소설가는 이듬해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등 주요 문학출판사와 단행본 계약을 했다.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손택수 시인은 신춘문예를 “생존율이 가장 높은 제도”라고 단언한다. “신춘문예로 1년에 10명가량 시인이 배출되면 1~2명 꾸준히 활동하는데 비해, 문예지에서 그 보다 많은 신인을 배출하지만 10%도 활동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손 시인은 “글 청탁부터 첫 창작집 내기까지 등단 초기에 문학계에서 신춘문예 출신이 외면 받는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작품으로 자기를 증명하고 나면, 문예지 출신보다 훨씬 자유롭고 출판사가 지향하는 미의식에 영향 받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2013 한국일보 신춘문예 응모작 접수. 원고지 대신 컴퓨터로 글을 쓰는 시대가 됐으나 신춘문예를 향한 문청들의 열의는 여전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등단에 목숨 걸지 마라

신춘문예 출신 작가들은 “당선에 목숨 걸지 말라”고 입을 모은다. 10년 투고한 끝에 등단한 김솔 작가는 “두 번째 작품을 고민하라. 등단작보다 두 번째 작품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과 ‘현대시’가 매년 4월과 9월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신작을 싣는데, 이렇게 발표한 작품이 이후 각종 문예지의 작품 청탁 기준이 된다. 김금희 작가는 “당선 통보 받았을 때 이미 다른 응모작을 쓰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신춘문예가 끝이 아니라는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라”며 “각 신문사의 최근 당선작을 읽고 자신과 가장 성향에 맞는 매체에 투고하라”고 조언했다. 지난해 당선된 윤지양 시인은 “투고작이 막판 한꺼번에 몰린다. (신문사의) 마감 시한이 이를수록 경쟁률이 낮다. 가장 잘 쓴 작품을 몰아서 투고하라”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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