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시켜놓고 '이어폰 끼고 게임'.. 배달 알바의 고충

박정훈 2017. 11. 2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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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를 지켜주세요" 겨울철 라이더 알바가 제안하는 4가지 에티켓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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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등은 따뜻하지만 콧등은 시린 계절이 왔다. 마약 같은 솜이불을 떨쳐내는 대신 머리맡에 둔 핸드폰에 먼저 손이 간다. 밥은커녕 화장실도 가기 싫어 자신과의 대화를 하고 있는 이때, 구세주와 같은 존재가 바로 배달앱이다. 옥탑방이나 언덕위의 집이라면 더욱 간절하다.

같은 시간 매장의 라이더들은 끊임없이 뜨는 배달주문에 정신이 없다. 시린 손을 싹싹 비비고, 뺨을 베는 찬 바람을 뚫고 따뜻하게 음식을 배달하는 배달노동자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바로 배달 에티켓을 지키는 것이다.

▲ 살얼음판 눈오는 날 말고 그다음날이 더 위험하다. 이런 빙판길에는 오토바이를 세워놓기도 힘들다. 겨울철 배달을 했다면 여유있게 기다려주시길 부탁드린다.
ⓒ 박정훈
1. 이어폰 끼고 게임하지 말자

하루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배달을 갔는데, 초인종도 없어 담벼락에 얼굴을 빼꼼 내밀고 "맥도날드입니다"라고 소리쳤다. 어릴 적 "친구야 놀자"라며 소리치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야 정말 놀고 싶은 친구라 설레기라도 했지, 햄버거를 식기 전에 배달해야 하는 라이더라면 마음이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은 없고 자연스레 몸이 떨렸다. 할 수 없이 끼고 있던 장갑을 벗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매장에 전화를 걸어 손님의 번호를 묻는다. 개인정보 때문에 주문서에 번호가 자동으로 인쇄되지 않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암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번호를 듣자마자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끊어버린다.

다른 말을 하다간 번호를 까먹어 버려 '금붕어'로 이미지가 굳을 수 있다. 그 순간 우연히 빨래를 널러 마당으로 나온 주문자의 누나가 나를 발견했다. 구세주다. 한숨을 푹 쉬며 안쪽 문을 열고 동생을 부른다. "너 맥도날드 시켰어? 빨리 나와". 주문자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다. 소환사의 계곡에 가는 것이 맥도날드 라이더를 맞이하는 것보다 훨씬 재밌겠지만, 밖에서 인간이 떨고 있음을 잊지 말자.

심지어는 배달을 시켜놓고 외출을 하시는 분이나 샤워를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차라리 예약주문을 넣어주시길 부탁드린다. 한 손님을 기다린다고 배달이 지연되면 다른 손님도 늦게 음식을 받게 된다. 특히 요즘 같은 겨울에는 강한 바람에 오토바이가 흔들리고 눈이라도 온 다음날에는 빙판길 때문에 속도도 못 낸다. 물론, 컴플레인을 받는 건 라이더의 몫이다.   

2. 인터폰이 고장 났다면 연락처를 적어주자

▲ 한줄의 메모 메모한줄이 배달노동자들을 따뜻하게 한다.
ⓒ 박정훈
요즘은 원룸이나 빌라 입구에 잠금장치가 있는 경우가 많다. 건물주가 어떤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잠금장치는 있는데 인터폰이 아예 없거나, 인터폰은 있지만 고장이 난 경우가 종종 있다.

마음 바삐 도착해서 인터폰은 없고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느끼는 깊은 분노는 배달 일을 해보지 않으면 쉽게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손님은 라이더가 어떤 상황에 처할지 조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가을까지는 참을만 하지만 지금같이 추운 날은 화라도 내서 몸을 데워야 한다.

그래서 가끔 소리를 치거나, 오토바이로 빵빵거린다. 화풀이다. 혹자는 나에게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음을 의심할지도 모르지만, 한번 말씀을 드렸던 고객이 또 그러면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물론, 다시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 매장으로부터 손님번호를 받는다.

비나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손은 얼고, 핸드폰은 젖는 최악의 상황이라 정말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다'라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인터폰이 고장 났으니 전화를 달라던가, 5층까지 너무 높으니 내려오겠다고 메모를 적어주는 사람들 때문에 얼었던 마음이 확 녹기도 한다. 이 간단한 메모를 부디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3. 주소는 정확하게

▲ 의미없는 주소판 신주소를 보며 배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신주소가 가려진 경우가 많다.
ⓒ 박정훈
정말 이해가 안 되지만, 자기 집 주소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검색에서 자기 집이 잘 뜨지 않아서 대충 주소를 적었다던가, '월드컵로 30길'을 '월드컵로 33'으로 적는 사소한 실수들이다. 주소만 적어놓고 몇 층이나 몇 호인지를 적지 않은 경우도 있다. 대충 찾아오겠지(?) 하는 생각인듯하다.

이 사소한 실수들 때문에 라이더들은 수 km를 이동해야 할 수도 있으며, 주소를 잘못적은 곳이 하필 5층 옥탑방이라면, 거친 숨과 욕이 같이 나올 수밖에 없다. 5층까지 올라갔는데 "안 시켰어요"라는 소리를 한 번 들어보라. 요즘은 건물에 파란색으로 자기 집 주소를 달아놓았다. 이걸 한 번만 확인해주면 된다.

물론 가끔 미관상의 이유로 떼어놓거나 '홍익로 3길'처럼 간판도 없는 조그마한 상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가건물의 경우에는 자기 주소를 찾기 힘들 수 있다. 이때도 간단한 메모 하나면 된다. 전화 주세요. 그러면 연락처를 미리 적어서 간다.

한 번은 자기 집 주소를 못 찾은 손님 때문에 한참 헤매다가 겨우 연락이 돼서 주소를 제대로 적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기분이 나빴던지, '네, 네~~~' 비아냥거리며 카드를 던졌다. 또 다른 손님은 다른 라이더는 잘 찾아오던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뭐, 한번 보고 말 사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배달노동자는 손님에게 음식을 전해주고 되레 욕을 받는 사람이 아니다. 

4. 카드라 해놓고 현금을 건네면 안 된다. 반대는 가능하다.

현금으로 결제를 한다고 하면 우리는 무조건 5만 원 짜리냐고 되묻는다. 거스름돈을 정확히 맞춰가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카드로 결제한다고 하면 거스름돈이 없다. 카드결제라고 해서 갔는데 5만 원 짜리를 건네서, "손님 거스름돈을 안 가져왔습니다"라고 했더니, 오히려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며 "일부러 생각해서 준건데, 싫다고 하면 할 수 없지"라는 답을 들었다.

거스름돈은 필요 없고 나머지는 팁으로 가지라는 의미다. 아마도 어떻게 결제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시켰다가 당황했을 것 같다. 팁을 그런 식으로 주는 거라면 결코 받고 싶지 않다. 외국인들의 경우 팁 문화가 있어 종종 팁을 주는데, 이렇게 화를 내며 주는 경우는 없다.

거스름돈을 챙겨오지 못한 경우에는 잔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매장에 들렸다가 다시 와야 한다. 300원짜리 거스름돈을 돌려주기 위해 매장에 갔다 온 적도 있다. 그 돈이 작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문을 하기 전 단 한 번만 체크하면 서로가 행복하다.

불쌍해서가 아니라 예의를 지켜달라는 의미

▲ 따뜻한 메모 한줄 이게 없었다면 밖에서 서성거릴 수밖에 없다. 주문서에 적힌 정보를 없애기 위해서는 영수증은 반드시 회수하는 게 좋다.
ⓒ 박정훈


손님 탓만 하는 건 아니다. 임금이 좀 더 높고, 건당 수당이 아니라 시간당 기본급이 좀 더 많이 보장된다면 손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어느 정도 감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일해 봐야 버는 돈이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주5일을 일해도 150만원 정도다.

저임금으로 부려먹는 기업보다는 당장 눈앞의 손님에 대한 짜증과 원망이 더 높아진다. 이해한다. 나도 퇴근하고 나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배달시켜먹고 싶다. 하지만 너무 추운 날, 비와 눈이 오는 날엔 웬만하면 주문하지 않는다.

우리가 먹는 배달음식이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라이더도 좀 더 괜찮은 직업일 수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우리가 만들 수도 있는 셈이다. 당연히도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좀 더 친절한 라이더를 만날 수 있다.

이건 라이더가 불쌍해서 배려를 해달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인생의 실패자, 가난한 사람만 알바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시간을 이유로, 기업에 얽매이기 싫어서 등 이유는 다양하다. 배달노동자는 사회적으로 하층에 있다는 생각도 일종의 편견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당연히 해야 할 존중과 배려를 해달라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만큼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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