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겨레21

불타버린 코리안드림

입력 2017. 11. 27. 15:55 수정 2017. 11. 2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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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산업재해로 얼굴 잃고 고국 스리랑카로 돌아간 이주노동자 딜란타

그의 이름은 딜란타. 스리랑카 국적의 노동자다. 2010년 3월6일 일요일 새벽 3시, 대구에 있는 염색공장 기숙사. 한 평이 채 안 되는 딜란타의 숙소에 불이 났다. 그는 얼굴, 목, 팔, 손 등 몸의 24%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손가락은 신경을 잃어 여덟 개를 잘라냈다. 그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불법체류자)였다. 이듬해 11월 그는 고향 스리랑카 파나두라로 돌아갔다. 고향 사람들은 화상 입은 그의 얼굴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딜란타처럼 노동 현장에서 화상 산업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보상과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화상 치료는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 비중이 다른 치료들보다 높다. 피해자 다수가 복원 성형수술을 포기하는 이유다. 한국에서 일하다 화상을 입은 이주노동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을 만나러 스리랑카 파나두라와 경북 포항, 경남 통영을 찾았다.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 한 인간의,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엿볼 수 있었다. 기사에 등장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들 나라의 관습에 따라 성 대신 이름으로 표기했다. _편집자

딜란타가 지난 10월 1일 낮 스리랑카 파나두라에 있는 자신의 집 안방 침대 위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딜란타와 아내, 아들, 딸 등 네 가족이 사는 이곳은 부모님이 자신의 남동생에게 물려준 집으로 동생이 장가를 가면 비워줘야 한다. 스리랑카에는 집안 막내아들이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오랜 관습이 있다.

“우리 딸 울고 떼써도 예뻐. 나 어떡해.”

10월1일 늦은 밤, 최근 집 한쪽에 식료품 가게를 새로 연 딜란타 라식 마나툰가(38)가 개업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오랜 친구 둘 앞에서 웃었다. 딜란타는 2007년 8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한국에서 4년 정도 일하다 고향인 스리랑카 남서부 도시 파나두라로 귀국했다.

한국 취업 성공한 자랑스러운 남편

딜란타(오른쪽)가 지난 10월 2일 새벽 5시 35분께 중학생인 아들 자누다를 등교용 셔틀버스로 학교에 보낸 뒤 아내 수디파, 딸 사누디와 함께 멀어져가는 버스를 바라보고 있다.

딜란타는 올해 3살인 딸 사누디 자랑을 하며 환하게 웃었지만, 그의 웃음은 주변인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일할 때 입은 심한 화상으로 얼굴 피부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딜란타는 1979년 4월12일 태어났다. 현재 살고 있는 파나두라는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그는 15살 때부터 친구로 지낸 아내 수디파(37)와 2005년 결혼했고, 이듬해 아들 자누다(11)를 낳았다.

이 무렵 스리랑카는 정부군과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 사이의 내전으로 시름하고 있었다. 딜란타는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월급 20만원 이상 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보니 생활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내전 이후 스리랑카 정부는 국가채무를 낮추기 위해 세금을 크게 올려, 딜란타 같은 저소득층 노동자가 생활에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몇몇 친구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리랑카 정부가 2004년 한국과 인력 송출 양해각서를 써서, 스리랑카 노동자가 고용허가제에 따라 한국에서 일할 길이 열렸다. 고용허가제는 인력난을 겪는 공장에서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외국인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하도록 허가해주는 제도를 뜻한다. 이 제도에 따라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는 최장 4년10개월 동안 한국에서 일할 수 있다. 현재 고용허가제에 따라 한국에서 일하는 16개국 외국인 노동자 27만4848명 가운데 스리랑카 노동자는 2만4103명에 이른다.

딜란타가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것은 2007년 8월22일이었다. 이날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딜란타는 경북 포항의 파이프 생산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3450원에 불과했지만, 한국에서의 급여는 스리랑카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딜란타는 이 공장에서 달마다 60만여원씩 벌어 분기별로 급여 일부를 집에 송금했다. 산업재해로 화상을 입기 직전인 2010년 초에는 숙련을 인정받아 한 달에 130만원을 벌었다. 그는 1만 명 넘는 지원자 가운데 선발돼,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자신이 대견했다. 아내 수디파도 돈 잘 버는 남편을 자랑스러워했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딜란타는 산업재해 사고 현장을 종종 목격하곤 했다. 스리랑카 출신 동료 두스만타 타랑가(35)가 파이프를 만들다 손목 골절 사고를 당했다. 딜란타도 파이프 공장에서 두 차례 손목이 꺾이는 사고를 당했다. 딜란타는 고용허가제 울타리를 넘어 수차례 일자리를 옮겨다니다, 한국에서 일한 지 3년째인 2009년, 대구의 염색공장에 취업했다. 하지만 현행 고용허가제에선 특정 요건이 안 되면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다. 딜란타의 신분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몸 4분의 1이 불탄 뒤

딜란타(오른쪽)가 지난 10월 1일 오후 같은 동네에 사는 처갓집에서 아들 자누다와 함께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본 뒤 기지개를 펴고 있다(위)./

딜란타가 지난 10월 1일 오전 집 화장실 외벽에 걸린 거울을 보며 면도를 하고 있다(중간)./

부처의 환생을 축하하는 불교 행사 '페해라하라'(Peherahara)가 지난 9월 30일 늦은 밤 집 근처에서 열려 딜란타가 행사 일환으로 진행된 행진중에 코끼리가 지나가자 두손을 모아 가족의 안녕을 빌며 기도하고 있다(아래).'>

늦겨울 추위가 가시기 전인 2010년 3월6일 토요일 밤이었다. 딜란타는 이날 술을 마신 뒤 벽돌로 지은 2층짜리 허름한 기숙사로 돌아왔다. 다음날 새벽 3시께 한 평이 채 못 되는 숙소에 불이 났다. 선풍기 모양의 전기난로가 쓰러지면서 매트리스를 달궜고 이때 난 불이 딜란타를 덮쳤다. 불이 나고 2시간30분이 지나서야 기숙사 밖에서 화장실을 가던 타이인 부부가 수상한 연기를 보고 119에 신고했다. 딜란타는 구급차에 실려 아침 6시께 병원에 도착했다.

현장에 있던 딜란타의 친구 두스만타가 당시 상황을 어눌한 한국말로 묘사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6시30분께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어요. 딜란타의 얼굴이 엄청 부어 있었어요. 얼굴과 몸 모두 벌겋고, 피부가 시커멓게 타거나 벗겨져 있었어요.”

한국말이 익숙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상법) 절차를 설명해주는 이는 없었다. 근로기준법상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도 노동을 제공하다 산업재해로 다치면 산재보상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두스만타와 딜란타는 처음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행히 나중에 한국말이 유창한 다른 스리랑카 이주노동자의 도움을 받아 산재보상을 신청할 수 있었다.

딜란타는 언어 문제로 겪은 병원에서의 고충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치료를 받으면서 비용과 수술 실패 등의 이유로 여러 번 병원을 옮겼어요. 왜 병원을 옮겨야 하는지 알고 싶었지만 한국어가 서툴러 알 수 없었어요.” 그는 첫 번째 병원에서 허벅지 피부를 떼어 얼굴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2011년 6월20일 세 번째로 찾아간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에서 손가락을 8개나 자르는 수술을 받을 때도 상세한 설명 등은 한국어와 일부 영어로 들었다. 그가 당시 이해한 내용은 “어차피 못 쓰는 손가락은 절단하고 남아 있는 관절 끝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였다.

2011년 8월16일 동산병원에서 발급받은 딜란타의 진단서 내용을 보면 머리와 얼굴, 목, 팔, 손 등이 불에 타 몸 전체의 24%가 3도 화상을 입었다. 심한 전신 화상에 손가락 8개를 절단한 그는 장해등급 4급 판정을 받았다. 정상적인 노동력을 상실한 것이다.

딜란타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하루 일급의 1012일치인 4890만원을 장해보상일시금으로 받았다. 미등록 외국인 산재 노동자는 치료 뒤 한국에서 강제 추방되기 때문에 산재보험에 따른 장해급여를 연금이 아닌 일시금으로 받는다. 딜란타와 같은 장해등급 4급의 경우 내국인 노동자는 평생 매년 224일치 일급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딜란타와 같은 급여를 받는 내국인 노동자가 30살에 장해등급 4급을 인정받아 80살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일시금을 받는 외국인에 견줘 약 11배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딜란타는 2011년 11월 스리랑카 콜롬보 반다라나이케 공항으로 귀국했다. 공항에선 아내 수디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모든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나가던 사람들은 부부를 향해 수군거리거나 심하게는 손가락질을 했다. 공항에서 파나두라의 집으로 가는 중에 해가 지면서 도로는 칠흑같이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딜란타는 “그날 저녁이 유난히 어두웠다”고 말했다.

뒤틀린 삶, 단 하나의 희망

딜란타(가운데)가 지난 10월 2일 오후 파나두라역에서 콜롬보역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구걸하는 시각 장애인에게 지갑을 열고 있다. 딜란타는 외출시 얼굴에 남은 화상 자국을 가리기 위해 늘 모자를 쓴다(위)./

딜란타가 지난 10월 1일 오전 집 안 거실에 놓은 어항을 매만지며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다. 딜란타는 "물고기에 집중해서 어항 속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라고 말했다(중간)./

딸 사누디(가운데)가 지난 10월 2일 늦은 밤 집 안 거실 소파에서 과자통 안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울면서 때를 쓰자 딜란타(오른쪽)와 아내 수디파(오른쪽)가 이를 보며 귀엽다는 듯 웃음 짓고 있다. 사누디 등 뒤로 놓인 LED 전등은 정전 시에 쓰이는데 스리랑카에서는 만성 전력 부족으로 정전사태가 종종 발생한다(아래).'>

화상으로 양쪽 귀와 콧방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딜란타는 동네에서 혐오의 대상이다. 손가락이 없어 일거리도 찾을 수 없다. 코리안드림을 좇던 그의 삶은 산업재해로 순식간에 뒤틀리고 말았다. 그에게 유일한 희망은 가족이다. 딜란타 부부는 2014년 사누디를 낳았다. 딸은 부부에게 우정과 의리의 징표가 됐다. 딸을 낳은 뒤 딜란타는 부정적 생각에서 차츰 벗어났다. 딜란타를 사랑하고 위로하는 아내와 아들, 딸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

식료품 가게를 처음 연 지난 10월 1일 아침 아내 수디파(맨 오른쪽)가 반찬거리를 사러 온 손님에게 팔 닭고기 무게를 재고 있다. 그리고 딜란타(맨 오른쪽)가 가게 밖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다. 가게 운영은 수디파가,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은 주로 딜란타가 맡는다(위)./

딜란타가 지난 9월 30일 오후 집 근처 해변가에서 수평선 너머로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딜란타는 어릴적부터 친구들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에게 이 인도양이 보이는 바닷가는 마음의 안식처로 아이들을 돌보다 틈이 나면 이곳을 찾는다(중간)./

딜란타(가운데)가 지난 9월 30일 오후 90여km 떨어진 콜롬보로 중학교를 다니는 아들 자누다(오른쪽)와 함께 학교에서 나와 시내 기차역으로 향하고 있다. 딜란타는 매일 오후 2시가 되면 집에서 나와 3시 반께 수업을 마치는 아들을 데리러 간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업성적이 우수해 외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콜롬보 명문 공립 중학교로 진학했다(아래).'>

딜란타가 지난 10월 2일 밤 마을에서 같이 자란 가까운 친구 둘과 함께 술을 마시며 아들, 딸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 이날 밤 딜란타는 "성실하게 공부하는 아들과 울어도 이쁜 딸이 있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위)./

딸 사누디(왼쪽)가 지난 10월 2일 아침 딜란타의 화상 자국이 선명한 얼굴 위로 입을 맞추고 있다(중간)./

2일 저녁 파나두라 기차역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아들 자누다의 하굣길을 가로등이 아닌 달이 비추고 있다. 스리랑카는 만성 전력 부족으로 정전사태가 종종 발생한다(아래).'>

딜란타 부부가 결혼사진 액자를 들고 있다. 그들을 지켜보는 딸 사누디.

파나두라(스리랑카)=사진·글 김성광 <한겨레> 사진부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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