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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인사의 계절..김과장 이대리들 "나 떨고 있니?"

이지훈 입력 2017. 11. 27. 19:08 수정 2017. 11. 2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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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 & 이대리
인사철 회식은 '역전 찬스'.."부진한 영업, 온 몸 불살라 만회"
"연말에 승진여부 갈린다".. '워라밸' 버리고 폭풍 야근모드로
인사철 다가오자 끊었던 담배 다시 물고..
인사정보 캐내려 '사내 흡연 커뮤니티' 참석
고참 부장에게 '지방 못가는 사정' 슬쩍 흘려
"주폭부장 내려온다" 소문에 '덜덜'
분노조절장애 부장 무서워 이직 카페 '기웃'
술 취하면 뒤통수 치는 부장 피해 해외 지원

[ 이지훈 기자 ]

한 공기업 본사에 다니는 김 과장은 연말 인사철이 다가오면서 2년 가까이 끊었던 담배에 다시 손을 댔다. 연말 인사를 앞두고 정보를 캐내기 위해 건물 밖에 항상 가동 중인 ‘흡연 커뮤니티’에서 귀동냥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팀장이 담배를 꺼내들고 사무실을 나갈 때면 모른 척 따라 나가 자신이 올 연말 승진 대상이라는 점을 반복해 주입하고 있다. 지방 파견을 피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사정도 슬쩍 보탠다. 인사팀 동기를 만나면 커피를 한 잔 건네며 분위기를 파악하는 일도 빼놓지 않고 있다.

연말 인사 평가를 앞두고 김과장 이대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사고과는 곧바로 성과급과 연동되는 경우가 많아 연말마다 부쩍 예민해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동안 부진한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회식 자리에서 몸을 불사르는 직장인도 많아지고 있다. 악명 높은 상사의 팀장 발령 소식에 다른 팀 전보나 이직까지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인사철을 맞아 동분서주하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안녕 워라밸

직장인들에게 연말 인사철은 일과 삶의 조화를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잠시 포기해야 하는 계절이다. 인사를 앞두고 한 해 농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선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정보기술(IT) 업체에 다니는 이 대리는 과장 승진을 앞두고 ‘폭풍 야근’에 들어갔다. “내년엔 승진해야지”라며 은근히 압박하는 팀장의 말을 거스르기 힘들어서다. 이 대리는 “승진을 앞두고 있어 없는 야근이라도 만들어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입사 3년차 오모씨는 인사철을 앞두고 울며 겨자 먹기로 사내 장기자랑에 나서게 됐다. 오씨가 성대모사에 능하다는 말을 들은 한 임원이 이번 송년회 때 공연을 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후 오씨는 매일 저녁 성대모사 연습에 들어갔다. 오씨는 “인사평가 책임자가 말한 것을 거스를 수 있겠느냐”며 “눈 밖에 나는 것보단 눈 한번 딱 감고 장기자랑을 하는 게 낫다”고 했다. 인사철 회식 자리는 ‘막판 역전’을 노리는 김과장 이대리들에게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중견 건설사에 다니는 현 대리는 이달부터 팀이 속한 부문 내 모든 회식 자리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올해 실적 부진을 만회하고자 다른 팀 고참들에게 눈도장이라도 찍기 위해서다. 술자리에서 “인간성이 좋고 성실하다”는 평이 나오면 금상첨화다.

전쟁터에선 종종 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도 나온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입사 2년차 한모씨는 최근 회식 때 충격을 받았다. 몇몇 여직원들이 안주를 집어 직접 상사의 입에 넣어주며 “이번에는 꼭 승진해야 한다”고 귀띔하는 장면을 보고 나서다. 그는 “아무리 승진에 목매는 직장인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씁쓸해했다.

성과급 연동에 긴장감 감돌아

성과급이 인사평가에 연동되는 회사가 늘어난 것도 직장인들의 인사철 스트레스를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인사평가에 따라 성과급이 수백~수천만원씩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다. 대형 캐피털사에 근무하는 차 과장은 “연말 인사평가에 따라 성과급이 최대 3000만원 넘게 차이가 난다”며 “인사철만 되면 사무실에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고 전했다.

제조업체에 다니는 신 대리도 연말 인사평가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낮은 평가등급을 받아 성과급을 거의 받지 못한 쓰라린 경험 탓이다. A~D까지 등급별 인원수가 정해져 있는데, 팀장이 고참들을 위주로 좋은 등급을 나눠줬기 때문이다. 신 대리는 “D등급 평가표를 받아들고 눈물이 핑 돌았다”며 “평가 결과가 연차에 따라 정해져 있으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상향식 인사평가 때문에 화를 입는 경우도 있다. 증권사 기획부서에서 일했던 박 대리는 지난해 인사평가에서 예상치 않게 C등급을 받으면서 성과급이 1000만원가량 줄었다. 무능하다고 본 상급자에게 냉정한 상향식 인사평가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박 대리에게 박한 점수를 받은 담당 부장이 보복성 인사평가를 한 것이다. 박 대리는 회사 인사부에 이 사실을 고발하고, 결국 이직을 택했다.

주폭팀장 이동 소식에 파견 지원도

악명 높은 상사의 부서 이동 소식에 대책 마련을 강구하는 김과장 이대리도 적지 않다. 유통회사 영업3팀에 근무하는 윤 대리는 최근 이직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직원들 사이에서 ‘분노조절 장애자’로 불리는 한 팀장이 영업3팀으로 옮긴다는 소문이 돌면서다. 지난해 태스크포스를 통해 최 팀장의 원색적인 인신공격을 맛본 터라 윤 대리의 스트레스는 더했다. 그는 “최 팀장과 일하며 노심초사하는 것보단 차라리 직장을 옮기는 게 낫다”고 말했다.

중견 건설사에 근무하는 석 대리는 사내에서 ‘주폭’으로 불리는 장 과장이 자신의 부서로 옮기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중국 법인 근무를 지원했다. 입사 초기에 술만 취하면 뒤통수를 때리며 술을 따르라고 윽박지르던 장 과장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그는 “경쟁 없이 무혈입성이 가능한 ‘험지’를 골랐다”며 “매일 사람 스트레스에 시달리느니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반대로 원치 않는 상사의 부름을 받고 고민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공기업에 다니는 김 과장은 최근 다른 부서 엄 부장으로부터 “우리 부서에 지원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엄 부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로 유명한 상사라 기피 1순위였다. 그는 “이미 세 번이나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거절해 또 핑계를 대기 쉽지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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