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은 본사가 뽑아가는 현금인출기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입력 2017. 11. 28. 10:05 수정 2017. 11. 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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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GM이 노리는 다섯개 떡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지난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글로벌 GM은 1세기 이상 세계 곳곳에서 독특한 정치를 펼쳐왔다. "이거 안 들어주면 공장 폐쇄할 것" "이거 안 해주면 신차 배정 안할 것" "이거 관철 안 되면 이 나라 노동자들 정리해고 할 것" … 이런 식으로 각국 정부로부터 특혜와 지원을 끌어내곤 했다. (다음 글에서 타국 사례들을 몇 가지 살펴볼 계획이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 '철수설' GM, '검은 속셈'이 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이 경구만큼 글로벌 GM의 전략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 또 있을까? <인사이드 경제>는 이 문구를 제대로 이해시켜줄 만한 외국어 번역이 어렵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런 종류의 설화가 다른 나라에도 있었다면 전세계 GM 노동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경험과 설화를 연결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 도대체 한국GM에 '떡’ 같은 것이 남아 있기는 하나? 생산 물량, 수출 물량은 계속 추락해 공장 가동률이 50~60%로 떨어진 상태인데 말이다. 2008년 이후 사무직에 대해 5차례나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창원과 부평공장에서 비정규직 집단해고를 추진하고 있다.

<인사이드 경제>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이미 마를 대로 말라붙은 한국GM에서 뭐 뜯어먹을 게 남아있을까? 그런데 마음을 고쳐먹고 찾아봤더니 짧은 시간 동안 5개나 되는 엄청난 '떡'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은 "떡 하나 주면 안 철수하지"라며 달려드는 GM이 노리는 떡 얘기를 하나씩 해보도록 하겠다.

▲ 미국 GM의 한 공장. ⓒAP=연합뉴스

떡 하나 : 미국산 차량(수입차) 판매를 위한 규제 완화

지난 글에서 이 부분을 파헤친 바 있다. 겉으로는 '배기가스 제로(Zero Emission)' 전략을 외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한사코 배기가스를 더 내뿜도록 CO2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이게 모두 미국산 수입차를 한국 시장에 더 팔도록 해달라는 요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니, GM의 점유율이 10% 밖에 안 되는 한국 시장에 무슨 매력이 있을까? 사실 그건 현대·기아차 점유율이 너무 높기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알고 보면 글로벌 GM 입장에서 한국 시장은 매우 큰 시장이다. GM의 각국 판매량을 보면 한국 내수시장은 중국·미국·브라질·멕시코·영국·캐나다·독일에 이어 8번째로 많은 차를 팔아주는 곳이다.

GM 입장에서는 때마침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방문해 한미 FTA 재협상 물꼬를 터주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에서 생산이 아니라 수입을 위해 수많은 규제완화 요구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충돌사고 제로(Zero Crashes)' 전략과 모순되는, 안전규제 완화 요구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떡 둘 : 자율주행차 등 신기술 투자를 위한 현금 인출기

현재 한국GM의 재무상태는 '자본 잠식', 즉 손실액이 기존 자본금을 완전히 잡아먹은 상황이다. 이런 회사가 차량 개발도 잘 하고, 생산과 판매, 수출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다. 그런데 글로벌 GM은 자본 잠식 상태의 한국GM으로부터 매년 엄청난 규모의 현금을 빼가고 있다. 이건 괴담이라고 해야 할까, 진기명기라고 해야 할까?

사실 <인사이드 경제>에서 한 차례 다룬 바 있다. 본사가 한국GM에 돈을 꿔준 뒤 고금리를 적용해 이자 비용을 떼어가고 있는 점, 그리고 '최상위지배자 업무지원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본사가 재무·회계 등의 업무 통일을 위해 수행하는 지원에 비용을 물리고 있다. 특히 업무지원의 경우 2013년까지만 해도 무상으로 제공했으나, 2014년부터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

<인사이드 경제>는 이들 비용이 모두 한국GM에서 '현금' 형태로 본사에 지급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현금이 오가는 내용은 이뿐이 아니다. 본사가 라이센스를 보유한 차량을 한국GM이 생산하면 본사에 로열티를 지급하는데, 매년 720~770억이 마찬가지로 '현금'으로 지급되고 있다.

로열티의 경우 금액 규모에도 의혹이 있다. 2012년과 비교하면 생산량이 무려 30만 대 가까이 줄었는데 지급하는 로열티는 거의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반대로 대우차 시절에 개발된 차량 라이센스는 한국GM이 갖고 있으므로 이 차량을 해외 법인이 생산하면 한국GM은 로열티 수입을 챙긴다. 2012년만 해도 1759억의 수익을 올렸으나, 해외 법인의 생산량이 줄어들며 로열티 수입은 급격히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고작 361억 원에 불과했다. (아래 표)

비용 항목

2012

2013

2014

2015

2016

GM관계사 이자비용

-

1,070

1,085

1,121

1,343

최상위지배자 업무지원 비용

-

-

167

694

435

연구비 및 경상개발비

5,705

5,644

5,942

6,498

6,141

로열티 (지출)

739

751

738

777

726

로열티 (수입)

1,759

1,186

812

654

361


자본잠식 상태의 한국GM에서 현금을 뽑아내면 어디에 사용할까? 글로벌 GM은 자율주행차, 전기차, 카쉐어링 등 신기술 개발에 막대한 현금을 쏟아 붓고 있다. 작년에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크루즈 오토메이션 인수에만 1조2000억 원이 들어갔고, 카쉐어링 업체 Lyft에도 6000억 원을 투자했다.

지난달 인수한 라이더(LIDAR) 기술업체 스트로브(Strobe)에도 엄청난 현금이 들어갔을 텐데, GM은 아직도 인수 금액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국GM은 이런 분야에 투입되는 엄청난 현금을 만들어내는 인출기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신기술 개발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이 한국GM에서 인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떡 셋 : 디자인·엔지니어링 및 배터리 전기차 개발 등 R&D 역량

생산물량과 수출물량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데 줄어들지 않는 비용이 하나 있다. 한국GM은 '연구비 및 경상개발비' 항목으로 매년 6000억 원씩 퍼붓고 있다. 자동차업계에서 보통 신차 1대 개발에 3000억 원이 소요된다고 하니, 한국GM은 매년 신차 2종을 개발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을 연구·개발에 투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신차 개발은 확인되지 않고, 신차 생산조차 없는 형편이다. 매년 따박따박 현금으로 투입되는 연구·개발비가 한국GM의 미래에 기여하는 바는 확인되지 않는다. 아니, 반대로 이 6000억 원은 매출원가에 반영되어 한국GM의 매출원가율을 무려 93%대로 끌어올려 대규모 적자를 낳는데 기여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그러다가 <인사이드 경제>는 위키피디아(Wikipedia)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다. 최근 GM이 내놓은 배터리 전기차 쉐보레 볼트(Chevrolet Bolt)를 검색했더니 '한국GM이 2012년부터 볼트 개발을 시작했다'고 나오는 게 아닌가? (위 사진) 사실이었다. 볼트의 디자인 총괄은 스튜어트 노리스 씨로 한국GM 상무이자 디자인센터 책임을 맡고 있다. 디자인에 투입된 180명의 노동자들은 모두 한국 국적의 한국GM 노동자들이다.

글로벌 GM이 보유한 배터리 전기차는 스파크EV와 볼트EV 2종인데, 이들 모두 개발은 한국GM이 주도했다. 즉, 글로벌 GM 내에서 배터리 전기차 개발 역량은 한국GM이 월등하다는 것이다. 카허 카젬이 신임 사장으로 부임한 직후인 9월 6일, 철수설을 불식시키기 위해 맨 먼저 한 일이 기자들에게 디자인센터를 공개한 것이었음도 이런 배경으로 해석된다.

6000억 원을 투입해 신차 연구·개발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개발된 스파크EV와 볼트EV의 라이센스는? 아마도 미국 본사가 챙겼을 것이다. 한국GM이 라이센스를 챙겼다면 로열티 수익이 늘어야 하는데 오히려 줄어들지 않았던가. 재주는 누가 부리고 돈은 엄한 놈이 챙겨가는 꼴이다. 그럼 이런 '떡'을 가져가면서 한국GM에 떨어진 떡고물은 없을까?

한 가지 있다. 쉐보레 볼트는 지난해 미국에서 글로벌 첫 출시를 한 뒤 한국에서 두 번째로 출시된다. 올해 3월, 650대의 초도 물량이 2시간 만에 완판되었던 바로 그 행사가 세계에서 2번째로 볼트가 출시된 날이었다. 그 뒤 5월에 노르웨이에서 3번째 출시, 8월에 캐나다에서 4번째 출시가 이어졌다. 한국에서 연구·개발이 이뤄진 인연으로 2번째 출시라는 떡고물이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한국에 미국산 수입차를 들여와 판매수익을 내는 것이니 결국 돈은 본사가 챙겨갈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중 가장 많은 액수의 정부 보조금(약 1400만 원)이 지원되는 차량이 바로 쉐보레 볼트이다. 이거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기, 마당 쓸고 돈 줍기 아닌가.

떡 넷 : 선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제조 품질

글로벌 완성차업체 대부분은 현지생산 현지판매 전략을 추구한다. 중국처럼 가장 많은 차가 팔리는 곳도 그렇지만, 미국·유럽처럼 선진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선진 시장이라면 생산가격이 저렴한 곳에서 수입해오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비용만 보면 그 말이 맞지만, 이들 선진 시장에서 통용되는 품질을 만족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GM 역시 미국에서 팔리는 차는 미국에서, 유럽에서 팔리는 차는 유럽에서 대부분 생산해왔다. 여기에 딱 한 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바로 한국GM이다. 쉐보레 스파크·아베오·트랙스·크루즈 등 소형차와 소형 SUV를 미국과 유럽 시장에 수출해왔다. 물론 쉐보레 유럽 철수로 인해 이제 미국·유럽 시장에 수출하는 차량은 스파크와 트랙스(유럽의 경우 오펠 칼과 모카)만 남은 상태이긴 하지만.

GM의 다른 법인들, 이를테면 브라질이나 인도·태국의 경우 미국·유럽에 수출할 수 있을 정도의 제조 품질을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쉐보레 인비젼(Envision)을 미국 시장에 수출하기 시작하긴 했지만 이제 초보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법인의 제조 품질이 일정 수준으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한국GM의 역량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떡 다섯 : 엄청난 자산 가치를 보유한 부동산

지난 15년 동안 산업은행은 한국GM에 사외이사와 감사 추천권을 행사했고, 비토(veto)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정 규모 이상 자산의 처분에 대해서는 산업은행 동의 없이 GM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산업은행은 이 비토권을 몇 번이나 사용했을까?

산업은행이 밝히지 않으니 정확한 횟수는 알 수 없으나, 2015~2016년 사이에 비토권을 한 차례 사용했다는 사실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산업은행이 바른정당 지상욱 의원에게 제공한 보고 자료에 따르면, '공장담보 제공 추진시 반대('15년~'16년)'라는 항목이 등장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얘기일까?

글로벌 GM이 한국GM에 돈을 빌려주고 고금리를 적용해 이자놀이를 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2015~2016년 사이 GM은 돈을 빌려주면서 한국GM 공장을 담보로 제공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자회사와 모기업 사이 거래 아닌가. 아이가 부모한테 돈 좀 빌려달라고 했더니 부모가 아이에게 집을 담보로 달라고 했다?

산업은행도 이 요구에 대해 "공장처분 결정권이 GM으로 이전되는 문제 등을 우려하여 공장 담보제공에 반대"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자 GM이 공장 담보 제공 안건을 주주총회에 일방 상정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안건은 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 즉 비토권 대상이었기 때문에 산업은행이 비토권을 행사하여 부결시켰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사안만큼은 산업은행이 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산업은행의 비토권은 지난 10월 16일자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글로벌 GM은 그 비토권 때문에 하지 못했던 짓을, 이제는 자유롭게 하려고 하지 않을까?

한국GM의 부평·군산·창원·보령 공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공시지가가 1조7162억 원에 달한다. 시가로 계산하면 자산 가치 규모는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이것도 GM이 한국에서 노리는 '떡'의 리스트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이제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이다.

전래동화의 반전 : 튼튼한 동아줄을 준비하자

이미 창원·부평공장에서 비정규직 집단해고를 시도하며 노동자들을 상대로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밀기 시작한 GM이다. 이제 그들은 떡 리스트를 들고 조만간 한국 정부의 문을 두드리게 될 것이다. '일부 공장 폐쇄', '정리해고·구조조정' 등까지 테이블 위에 올리며 한국 정부와 노동자들을 압박하게 될 것이다.

조만간 카허 카젬 사장은 군산공장 방문에 이어 전북 도지사, 군산시장도 면담한다고 한다. 조만간 노·사간 임단협 재개를 앞두고 언론사 기자들과도 만나는 등 외부 일정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 자리에서는 또 어떤 요구 리스트를 선보이게 될까? 어쩌면 GM은 자신의 일정표를 완성해서 집행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그 이후 전개는 어떻게 될까? 전래동화에서 마지막 떡까지 넘겨준 떡장수 엄마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그렇게 비극으로 끝나는 걸까? 아니다. 전래동화는 그 이후 반전이 시작된다. 호랑이는 떡장수 엄마로 변장해 아들과 딸까지 잡아먹으러 집으로 찾아간다.

아들과 딸은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뒷마당의 나무로 올라간다. 그런데 이놈의 호랑이가 나무까지 쫓아 오르려 하자 이들 오누이는 하늘에 구원 요청을 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다. 호랑이도 하늘을 향해 빌자 줄이 내려왔는데 썩은 동아줄이었다. 하늘로 올라간 오누이는 각각 해님과 달님이 되었고, 땅에 떨어진 호랑이의 붉은 피는 노을이 된다.

그래, 이 전래동화의 제목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가 아니라 '해님·달님'이다. 떡장수 엄마가 잡아먹히는 비극이 아니라,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가 죗값을 치르게 된다는 결말이다. 한국GM 노동자들에게 지금 닥쳐온 시련의 상황도 비극이 아닌 다른 결말을 원한다면?

떡 달라고 달려드는 GM에 맞서, 이제 생산직·사무직·판매직·정비직·비정규직·부품사 등 30만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튼튼한 동아줄'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인사이드 경제>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며 작은 손 하나 보탤 생각이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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