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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세 배송" 다이궁 유혹..韓화장품 밀수 부추기는 中여행사

임형준 입력 2017. 11. 28. 17:51 수정 2017. 11. 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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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면세점 앞에 버젓이 여행사 사무실 차려 싹쓸이쇼핑 中보따리상에 접근..편법배송 꼬드기고 배달사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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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관광객 韓면세점 금지에 보따리상 활개

"벌써 8개월째 물건이 안 오는데 우리도 편법 장사라 어쩔 수가 없어요. 자기들은 불법도 아니라고 당당하니까…."

지난 3월 제주시 소재 한 면세점에서 1000만원어치 화장품을 대거 사들인 중국인 A씨. "관세를 안 낼 수 있도록 감쪽같이 배송해주겠다"는 면세점 인근 B여행사 직원의 감언이설에 A씨는 해당 여행사에 물품 배송을 맡겼지만 8개월이 지난 최근까지 A씨는 화장품을 받지 못했다.

다시 한국을 찾은 A씨가 여행사에 항의했지만 B여행사는 "분실 시 배송비의 3배를 물어주기로 했으니 우리는 법적 책임이 없다"며 "법대로 하라"고 엄포를 놨다. 세금을 내지 않은 채 한국 물건을 몰래 중국에 반입하려 한 A씨가 법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을 여행사가 악용한 셈이다.

한국 면세품을 헐값에 대량으로 사들여 중국 시장에 되팔아 이익을 챙기는 '다이궁(代工·보따리상)'이 속출하는 데 이어 '관세 없는 배송'을 표방하는 편법 여행사까지 밀반출을 방조하면서 화장품 등 경쟁력 있는 국내 수출 브랜드의 이미지 타격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식 유통채널을 거치지 않은 제품이 이 같은 밀반입을 통해 정상적인 국내 수출상품과 섞여 중국 시장에 나돌면 경쟁력을 갖춘 국내 상품의 가치가 덩달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식 통관 절차를 거치지 않은 국내 상품의 중국 현지 밀반입에 대한 감시·처벌은 중국 과세 당국 소관이라, 한국 정부는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다이궁을 노린 편법 배송 여행사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급감하자 본격화됐다. 중국 현지에서 인기가 많은 상품을 한국 도매상이나 면세점에서 대량·헐값으로 사들여 배편을 통해 중국으로 들여가 되파는 다이궁은 사드 여파로 유커가 줄어들면서 면세점 물건을 싹쓸이하는 장본인으로 지목돼왔다.

유명 면세점 앞에 여행사 간판을 내걸고 본격적인 '밀수 도우미'로 나서는 이들까지 등장하면서 편법 배송에 따른 국내 상품 이미지 하락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기업들이 이른바 '사드발(發) 경제위기'를 겪는 동안 보따리상 의존도가 높아진 점도 이 같은 우려에 한몫한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중국 현지 시장에 진출한 기업의 경우 당장은 물건을 팔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게 될 것"이라며 "벌써 5만원짜리 한 제품은 '3만원짜리'라는 인식이 퍼져서 제값 주고 사는 사람이 이상해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국내 화장품 업계가 지난 9월 관광객 1인당 상품 구매 수량 제한을 일제히 강화하기로 했을 정도다.

편법 배송이 기승을 부리면서 편법 장사를 일삼던 다이궁들이 배송업체로부터 피해를 입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B여행사는 여행업과 상품 구매 알선업, 화장품·가전제품 도소매업 허가와 운수·배송업 허가를 받은 뒤 올해 초부터 면세점에서 물건을 대량 구매하는 중국인들을 상대로 영업을 해왔다. B여행사의 실질적인 운영 주체는 중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도·소매업 관련 운송업을 등록해두고 일명 '묻지마 컨테이너' 등으로 불리는 중국 현지 커넥션을 이용해 물건을 들여가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알음알음 수년 전부터 성행한 방식이지만 면세점 앞에 여행사 사무실까지 내고 영업하는 건 처음 봤다"고 했다. 국내 한 여행사가 자체적으로 접수한 A씨 같은 '피해 다이궁'은 약 20명. 피해금액은 1억원이 넘는다.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국내 여행사는 추정했다.

하지만 관세청이나 제주특별자치도는 중국 관세법 위반을 이유로 한국 정부가 다이궁이나 편법 여행사를 처벌할 수 없다며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B여행사의 배송대행 영업의 편법성을 묻는 기자 질문에 관세청 관계자는 "탈세는 중국에서 이뤄지므로 세관을 통한 수출입 신고가 되지 않은 물품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했다. 제주시청 관계자는 "여행업 자체에서 일어나는 불공정 행위나 소비자 피해 등을 감독할 뿐 이외 업무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내 여행업계 등은 "철저한 실태조사와 함께 엄격한 감독·관리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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