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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부치고 욕먹는 기재부 차관 건망증 걸린 국회는 민생예산 '왕따'

by. 이정환,유성호,김성욱 입력 2017.11.29. 09:26 수정 2017.11.2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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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에 묻혀버린 '슈퍼맨' 1만8812명

[오마이뉴스 글:이정환, 사진:유성호, 글:김성욱]

지금 국회에서는 내년 예산안 심의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정치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예산들, 정쟁에 묻혀 있는 민생 예산의 현주소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들여다봅니다. <편집자말>

 지난 9월 25일,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한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한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
ⓒ 기획재정부
훈훈했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이 지난 9월 추석을 앞두고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한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했을 때 모습이 꼭 그러했다. 좋은 말씀과 함께 센터장에게는 위문금도 전달했다. 고소한 시간이기도 했다. 고 차관은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들과 함께 전을 부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로부터 두 달도 되지 않았는데, 고 차관이 국회에서 '욕'을 먹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예산 증액을 막은 장본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기재부 1차관은 정녕 우리의 요구가 과도해서 그 작은 예산도 끌어내려 낮은 적정선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도대체 우리가 얼마를 받는지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30년 간 하루 24시간, 365일 일해서 실질 급여 월 155만원을 받는 게 과도하다니 차관께서 생각하는 적정선은 얼마란 말입니까."

▲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아동복지예산 증액하라" 전국지역아동센터와 아동청소년그룹홈 종사자들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타 사회복지 시설에 비해 재정지원과 정책적 배려에 있어 차별을 받고 있다”며 아동복지예산의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주관으로 '지역아동센터·아동청소년그룹홈 예산 증액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수년 간 발목 잡힌 아동 복지예산의 증액! 국가의 미래를 확보해 주십시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아동 복지예산을 증액하라!!!", 이렇게 쓰인 현수막 앞에서 "최소한의 예산을 원안대로 반영해달라"는 안정선 회장(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의 호소가 계속됐다.

꼭 일주일 전, 윤소하 의원(정의당) 상황도 안 회장과 비슷했다.

"크게 낙심...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지난 10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남소연
"크게 낙심했습니다. 한편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의료 복지 증진을 위해 예결소위를 열었고, 우리는 지금까지 심도 깊은 토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기초연금, 그리고 아동수당 문제를 갖고 하는 거대 양당의 힘 겨루기 내지 정치적 게임에, 그 부분이 제대로 의결되지 않은 부분에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합니다."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 의원이 언급한 '그 부분'을 세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월평균 급여 132만원 수준의 지역 아동센터 생활복지사 처우 개선이 필요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추가 지출 부담이 예상되니 지역아동센터 기본 운영비를 291억5400만원 더 지원해주자. 매월 84만8천원 정도 받는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위해 63억9800만원 더 쓰자. 장거리 근무가 잦고 사실상 상시 근무를 하고 있는 어린이집 현장관찰자들 인원 보강과 처우 개선을 위해 21억7200만원 더 지원하자.

이 세 줄은 앞서 나흘 간 토론 끝에 보건복지위 예산 소위에서 어렵게 합의된 것이었다. 허나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아동수당과 기초연금 인상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복지위 예산안 심사 전체가 '포맷'이 됐다. 이견은 두 가지다. 민주당은 아동수당 예산 1조1009억원을 0세부터 5세까지 월 10만원씩 모두 주자고 하고, 한국당은 소득 상위 30%는 제외하자고 한다. 기초연금 인상을 내년 4월부터 하자는 것이 민주당, 7월로 하자는 게 한국당 입장이다.

애써 합의에 이른 다른 민생 예산까지 도외시 할 정도 차이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윤 의원은 앞서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잠깐 정회하고 예산소위를 다시 할 것을 요구했고, 국민의당 소속 김광수 의원이나 최도자 의원도 각각 "민생 예산이 몰려 있는 보복위에서 상임위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부끄러운 일", "아동수당, 기초연금 받는 국민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국민도 중요하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는 말로 공감을 표시했다. 양승조 위원장(더불어민주당)도 "적절한 의견 제시"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 "3개월 뒤로 미뤄 지급할 이유가 하등 없다", "아동수당과 기초연금 관련해서는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 "통 큰 양보는 여당이 하는 것", "대선 공약대로 한다면 나라 다 말아먹는다" 등등 협상의 여지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예의 익숙한 충돌이 계속 됐다. 그 충돌 과정에서 지역아동센터 생활복지사,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어린이집 현장관찰자들 이야기는 단 한 차례도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 이들을 잊은 듯 했다.

'건망증' 의심되는 국회의원들

여당 쪽에서는 기동민 의원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생활복지사 처우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던 국회의원이다. 당시 그는 "지역 아동센터 종사자들은 정말 슈퍼맨처럼 일하고 있다"고 했고,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따뜻한 정책을 만들 수 있다. 장관은 이 분들 사정을 잘 안다고 했는데 잘 알면서 안 하는 건 더 나쁜 것"이라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질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20일 보건복지위에서 슈퍼맨처럼 일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기 의원 입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따라 치른 대선 결과에 따라 굵직한 정책은 잘 수행되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거나 "진행 과정에서 문제점이 나타나면 그 후에도 보완 가능한데, 그런 부분을 넓게 봐주지 않고 우리 당 정책 왜 안 받아 들이냐고 하면, 그럼 대선 무엇 하러 하냐는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는 발언 또한 협상용으론 부적절했다.

기 의원 같은 경우는 한국당 쪽에도 많았다. 보건복지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상훈 의원은 지난 국감에서 현장관찰자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2017년 9월 현재 어린이집 현장관찰자는 199명인데 비해, 현장 관찰 대상 어린이집은 1만5680개나 된다"는 자료와 함께 "현장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평가를 하라는 것은 '배추도 없이 김장 담그라는 격'"이란 그의 발언이 고스란히 기자들에게 전송됐었다.

같은 당 김명연 의원은 2015년 '새누리당 민생 119본부' 소속으로 안산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 "센터 종사자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동 돌봄 시설에 종사하는 복지사가 하나 둘 현장을 떠날 것"이라고 경고했었고, 성일종 의원은 2016년 국감에서 '어린이집 평가 인증 현황' 자료를 발표하며 "현장 관찰자의 전문성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었다. 송석준 의원은 이번 국감에서 홀몸 노인 증가 실태를 역시 배포하며 "홀몸 노인에 대한 돌봄 서비스가 생색내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던 국회의원이었다. 이들은 모두 '건망증'에 걸린 것일까.

국회의 건망증과 기재부 차관의 '전 부치기'

국회 보건복지위 자료에 따르면, 지역아동센터 종사자 9415명,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9200명, 현장관찰자 197명의 처우 개선안이 정쟁에 묻혀 있다. 국회의원 건망증으로 후유증을 겪을 직접적인 당사자, '슈퍼맨' 숫자만 1만8812명에 이르는 셈이다. 여기에 10만9661명에 달하는 지역아동센터 이용 아동과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들이 돌보는 홀몸 노인 25만명을 더하면, 직·간접적으로 엮여 있는 유권자는 최소 37만8473명에 이른다.

하지만 거대 정당 국회의원들의 '건망증'을 깨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로 보인다. 정쟁이 발동하면 민생 예산이 '왕따' 당하는 일 역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 국회의원의 건망증이 이런 식으로 반복된다면,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가 보여주기식으로 전을 부치는 훈훈한 풍경 역시 자주 목격하게 될 것 또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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