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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지배구조 포커스리스트' 작성..정부개입 상시화 우려

신헌철,박윤구 입력 2017. 11. 30. 18:00 수정 2017. 11. 3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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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투자전문委 신설해 비공개 대화 → 법정소송 압박..요구 관철수단도 '공세적'
전문가 "직접적 관여보다 日처럼 위탁운영 확대를..사외이사 추천땐 큰 문제"

◆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초읽기 / 전방위 기업 경영관여 논란 '스튜어드십코드 중간보고서' ◆

최근 국민연금이 KB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노동조합이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에 찬성표를 던졌으나 결국 다른 주주들의 반대로 부결된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친노동계 정권 코드에 맞춘 정치적 의사 결정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내년에 '스튜어드십코드'를 제정하고 직접 경영 관여에 나선다면 충격의 차원이 달라진다.

매일경제가 30일 입수한 스튜어드십코드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 지침을 정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은 산하에 '사회책임투자위원회'를 설치해 객관적으로 기업 지배구조를 들여다보고 문제가 있는 곳을 지정해 개선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업으로선 과도한 개입이나 정부 압박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요구를 관철시키는 수단도 공세적이다. 일단 기업 이사회나 임원들과 비공개 대화를 실시한 뒤 개선이 안 되면 명단을 공개하겠다는 대목이 그렇다. 또 공개서한 발송, 사외이사·감사 추천,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타 주주 동참 요청), 법정소송 등 순차적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점도 기업들에는 위협적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 개입 논란이 상시적으로 빚어질 우려도 있다.

경영 개입에 대한 우려는 국민연금이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고 기금운용위원회도 사실상 정부 의지가 반영되기 쉬운 구조라는 점 때문이다. 과거 이명박정부가 당시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을 통해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를 주장했다가 한발 물러선 것도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객관적 잣대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국민연금이 올 3분기 말 현재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기업은 모두 278개에 달한다. 일단 이들이 경영 개입 '사정권'에 들어가게 된다. 이 가운데 포스코와 네이버 등은 국민연금이 최대주주 지위를 갖고 있다.

또 국민연금은 삼성전자(9.71%)를 비롯해 삼성생명(6.11%), 삼성물산(5.57%), 삼성SDI(9.19%) 등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에 대해 5% 이상을 보유 중이다. 현대·기아차, LG, SK 등 주요 대기업집단은 물론 KB금융, 신한지주, 우리은행 등 금융권도 예외가 아니다.

만약 이들 대기업이나 은행에 국민연금이 사외이사나 감사를 파견한다고 나설 경우 결국은 정치권, 관료, 시민단체 출신 등을 추천할 개연성이 있다. 안 그래도 정권 교체기마다 '낙하산' 논란이 거센데 이 같은 문제가 상시화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주주행동주의 대열에 적극 합류하는 명분은 사회책임투자의 확대에 있다. 이른바 ESG(환경경영·사회책임경영·기업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이 장기적으로 수익률도 우수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적연금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깔려 있다.

연구용역을 진행했던 박경서 고려대 교수는 "해외 연기금들은 투자 기업과 소통해서 요구를 충분히 전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주주총회에서 이사 추천이나 안건 제안 등 단계적 절차를 밟는다"며 "1980년대부터 포커스 리스트(중점관리사안)를 운영해온 미국 캘퍼스(CalPERS·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도 경영 참여를 통해 초과수익률을 내고 있다는 점이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은 '양날의 검'이라는 지적이다. 자의적 잣대로 정답이 없는 기업 지배구조에 개입할 경우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외부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라며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주주 권리를 행사하기보다는 제도 안착 때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게 대안"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선진국의 스튜어드십코드를 그대로 도입하면 초기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독립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국민연금이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한다고 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재작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민연금이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생략하고 투자위원회에서 찬성 결정을 했던 전례를 떠올린다. 국민연금이 과연 정치적 입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다.

최근 국민연금이 주최한 관련 토론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신진영 연세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지금 인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ESG를 할 수 있을지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무는 "국민연금이 결국 의결권 자문회사에 의뢰하게 될 텐데 주식 한 주 없는 자문회사 의견이 주총에 반영되는 왜곡이 생길 수 있다"며 "자문사 의존성이 커질수록 투명성을 보장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직접 기업 관여활동에 나서기보다는 일본 등의 사례처럼 위탁운용 확대를 통해 사회책임투자를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매일경제가 입수한 보고서에 따르면 운용사에 주주권 행사를 위임하는 것을 사실상 배제하는 입장이 담겨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 98조가 투자일임업자(운용사)에 의결권 위임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법 개정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읽힌다.

[신헌철 기자 / 박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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