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20년] "금 모으기 운동, 위기 극복 위한 한국인의 결기 보여줘"
금 227t 모아 22억 달러 확보해
금 값 하락으로 헐값 처분 논란도
빈부 격차와 사회 갈등 심화하며
제2의 금모으기 기대하기 어려워
사회적 자본 확충 위해 노력해야
유로존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010년 5월 1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97년 외환위기로 곳간이 거덜 나고 망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에 나선 한국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나랏빚을 갚기 위해 국민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금붙이를 자발적으로 내놓는 장면은 해외 언론이 앞다퉈 보도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금 모으기 운동은 국민의 뇌리에 가장 또렷하게 각인돼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IMF 외환위기 20년을 맞아 최근 실시한 대국민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42.4%가 ‘외환위기’에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금 모으기 운동’이라고 답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원동력으로도 ‘금 모으기 운동’ 등 국민의 단합(54.4%)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수렁에 빠진 한국 경제를 건져낸 ‘금 모으기 운동’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는 “실제 경제적인 효과보다는 위기 극복의 의지를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위기 극복에 대한 한국인의 결기를 보여준 상징성이 강했다는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당시 IMF가 제공한 210억 달러의 10%에 이르는 돈을 금 모으기 운동으로 마련했다”며 “금을 헐값에 처분했다는 비판에도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국가적 역량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남는 장사”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구성원이 힘을 합쳐 공동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신뢰와 규범, 네트워크 등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체의 무형 자산을 뜻한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은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이룬 상황에서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공동체 의식이 발휘된 것”이라며 “이제는 사회적 자본이 약해지면서 제2의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공동체 의식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김경수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과 금융회사 사정은 좋아졌지만 일반 국민의 사정이 나빠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고 소득분배는 편중되는 등 사회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연대의식은 없어졌다”고 말했다.
소득 양극화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지난해 0.304(처분가능소득 기준)로 전년보다 0.009가 증가했다. 2012년(0.307)이후 가장 높다. 지니계수는 높을수록 소득불평등이 크다는 뜻이다.
지난해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로 나눈 값)도 5.45배로 2011년(5.73배) 이후 5년만에 악화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중산층 비중(65.7%)도 전년(67.4%)에 비해 1.7%포인트 하락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 사회적 자본과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공존과 공생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한편 통합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임원혁 KDI 글로벌경제연구실장은 “외환위기를 극복했던 것처럼 포용적 성장을 통해 사회적 응집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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