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20년] "금 모으기 운동, 위기 극복 위한 한국인의 결기 보여줘"

하현옥 2017. 12. 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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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재정위기 때 "한국 배워라"
금 227t 모아 22억 달러 확보해
금 값 하락으로 헐값 처분 논란도
빈부 격차와 사회 갈등 심화하며
제2의 금모으기 기대하기 어려워
사회적 자본 확충 위해 노력해야
'금모으기 운동' 시행 첫날인 1998년 1월5일 주택은행 지점에서 일반 시민들이 금을 내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유럽인들이 나랏빚을 갚는 데 쓰라고 자신의 결혼반지를 내놓기 위해 줄을 설 수 있을까.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인은 그렇게 했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010년 5월 1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97년 외환위기로 곳간이 거덜 나고 망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에 나선 한국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그리스 등에서 당시 긴축 재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오히려 금 사재기와 외화 빼돌리기가 벌어지자 “한국을 배우자”는 기사가 외신에 잇따라 등장했다.
애국 가락지 모으기 운동 소개한 1997년 12월4일자 중앙일보 지면
애국 가락지 운동 소개한 1997년 12월11일자 중앙일보 지면
97년 12월 1일 새마을부녀회의 ‘금가락지 모으기 운동’이 촉발한 ‘금 모으기 운동’은 국민 캠페인으로 확대되며 총 227t의 금(당시 약 22억 달러 상당)을 모았다. 이렇게 모인 금은 해외로 수출돼 부족했던 외화를 확보하는 데 쓰였다. 수출하고 남은 3t가량의 금은 한국은행이 매입해 외환보유액에 추가됐다.

나랏빚을 갚기 위해 국민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금붙이를 자발적으로 내놓는 장면은 해외 언론이 앞다퉈 보도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금 모으기 운동은 국민의 뇌리에 가장 또렷하게 각인돼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IMF 외환위기 20년을 맞아 최근 실시한 대국민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42.4%가 ‘외환위기’에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금 모으기 운동’이라고 답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원동력으로도 ‘금 모으기 운동’ 등 국민의 단합(54.4%)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수렁에 빠진 한국 경제를 건져낸 ‘금 모으기 운동’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는 “실제 경제적인 효과보다는 위기 극복의 의지를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위기 극복에 대한 한국인의 결기를 보여준 상징성이 강했다는 것이다.

1998년 1월14일 외환위기 당시 진행된 '금모으기 운동'으로 수집된 5000만 달러의 금이 유럽에 첫 수출됐다. 사진은 이 날 운수업체 직원들이 김포공항 화물청사에서 금괴를 포장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이런 의미에도 '금 모으기 운동'의 경제적 효과는 크지 않았다는 지적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헐값 수출 논란이다. 대대적인 금 모으기 운동으로 당시 금수입국이던 한국이 수출국이 되면서 전 세계 금값이 급락했다. 대규모 물량이 쏟아지며 10%가량 금값이 떨어진 데다 시세보다도 싸게 처분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오히려 그렇게 모은 금을 외환보유액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 나았을 것이란 비판도 있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당시 IMF가 제공한 210억 달러의 10%에 이르는 돈을 금 모으기 운동으로 마련했다”며 “금을 헐값에 처분했다는 비판에도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국가적 역량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남는 장사”라고 강조했다.

금 모으기 운동을 애국심과 국민의 자발적 희생으로 포장해 외환 위기로 인한 희생과 책임을 떠넘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FT는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저소득층이 희생을 감수했지만 부유층 및 일부 기업들은 오히려 이득을 챙기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이 1998년 2월 27일 '금모으기 운동'으로 수집한 금괴12개(290㎏)을 매입했다. 한국은행은 이 운동으로 모인 금 중 수출한 것을 제외한 3t 가량의 금을 매입했다. [중앙포토]
외환위기 20년이 지난 현시점에 ‘금 모으기 운동’의 교훈을 찾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사회적 자본’에 대한 고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구성원이 힘을 합쳐 공동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신뢰와 규범, 네트워크 등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체의 무형 자산을 뜻한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은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이룬 상황에서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공동체 의식이 발휘된 것”이라며 “이제는 사회적 자본이 약해지면서 제2의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공동체 의식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김경수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과 금융회사 사정은 좋아졌지만 일반 국민의 사정이 나빠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고 소득분배는 편중되는 등 사회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연대의식은 없어졌다”고 말했다.

소득 양극화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지난해 0.304(처분가능소득 기준)로 전년보다 0.009가 증가했다. 2012년(0.307)이후 가장 높다. 지니계수는 높을수록 소득불평등이 크다는 뜻이다.

지난해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로 나눈 값)도 5.45배로 2011년(5.73배) 이후 5년만에 악화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중산층 비중(65.7%)도 전년(67.4%)에 비해 1.7%포인트 하락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 사회적 자본과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공존과 공생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한편 통합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임원혁 KDI 글로벌경제연구실장은 “외환위기를 극복했던 것처럼 포용적 성장을 통해 사회적 응집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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