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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주택 실상 어떻기에-녹물·외풍·소음..관리비 부담 가중 화재 위험 높고 내진 취약..안전 위협

정다운, 나건웅 입력 2017. 12. 0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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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입주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강남아파트’는 안전등급 ‘D’를 받고도 15년가량 재건축 사업이 지연됐다.
#1. 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6번 출구를 나서자마자 마주친 신림동 ‘강남아파트(총 876가구)’. 올해로 준공 44년 차에 접어든 이 단지는 초겨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동네 흉물 아파트다. 외벽 페인트는 벗겨져 동 간 구별이 어렵고 갈라진 벽 사이로 손을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다. 이미 20여년 전 서울시 안전등급 D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위태로운 이 아파트는 그간 정비사업 논의가 진척을 보이지 못하다 지난 2015년에야 SH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가 공동 시행자로 참여하면서 사업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단지 전체가 텅 빈 마냥 조용하지만 이곳엔 아직도 미처 이사 나가지 못한 가구가 거주 중이다. 이들은 겨울마다 빈집 수도관이 얼어버리는 통에 몸살을 앓고 있다.

#2. 올해로 입주 25년 차인 경기도 평촌신도시 A아파트(총 800가구)는 단지 내 손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급수·급탕·난방에 필요한 공용 배관은 평균 사용 연한이 15년이지만 그보다 10년도 더 사용했다. 배관은 부식이 심하고 이따금 물이 새 급하게 부분 교체하거나 수리하기 일쑤다. 공용 배관 전체를 새로 설치하려 해도 문제는 적립돼 있는 장기수선충당금(9억8000만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배관 교체 공사(13억8000만원)와 잡비 등 각종 비용을 계산해보면 가구당 부담해야 하는 장기수선충당금이 현재 월 1만7000~2만3000원에서 내년엔 5만~7만원대로 대폭 늘어난다. 가구별 설문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더디다. 급수 배관은 오늘도 녹물 섞인 물을 토해낸다.

낡은 주택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단순 미관상의 문제를 떠나 주택으로서 기능 저하, 과도한 관리비 부담, 더 나아가 주민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거주민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다. 근래 속속 들어서는 신축 아파트와 비교하면 더 두드러진다.

▶배관 노후화 심각하지만 교체 미흡

야간조명·CCTV 없어 치안문제도

가장 흔한 문제 중 하나가 상수도 배관이 노후화되면서 나오는 녹물이다. 1기 신도시를 비롯해 전국 노후주택 단지에선 녹물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스무 살을 넘긴 주택에서 녹물이 자주 발생하는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시공 과정에서 부식에 취약한 ‘아연도금 강관’ 수도관이 주로 사용됐기 때문. 정부가 1994년 4월 이후 사용을 중단했지만 그전에 공사를 시작했거나 준공된 주택이 태반이다. 1기 신도시 기준으로 전체 아파트 단지 절반가량이 아연도금 강관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는 2014년 기준 건축 후 20년 이상 주택 중 아연도금 강관을 상수도관으로 사용 중인 주택이 100만여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약 56만5000가구가 아연도금 수도관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가 2007년부터 수도관 교체 비용을 일부 지원하고 있지만 지난 8월 기준 교체 진행률이 60%에도 못 미치는 등 아직 갈 길이 멀다. 오래된 수도관은 녹물 외에도 누수 문제가 발생해 상수도 요금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노후주택은 방음과 난방에도 취약하다. 방음재, 단열재 등 품질이 최신 제품보다 떨어질 뿐 아니라 창문, 벽면, 출입구 등 파손된 시설 사이로 열과 소리가 새기 일쑤다. 준공 이후 무리하게 전선 개수를 늘린 탓에 전력 사용량이 폭증하기라도 하면 합선 가능성도 높다. 단지 내 편의시설을 이용할 때도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내 노후주택 단지 대부분은 주택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인구밀도도 높다. 주차 공간이 협소하고 쓰레기 분리수거장 관리도 엉망인 경우가 많다. 단지 내 야간 조명이나 CCTV 설치가 미흡하다며 치안·방범 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종합해보면 노후주택 거주민 삶의 질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접어들며 주택 수요자 눈높이는 빠르게 높아진 상황. 입지와 무관하게 신축 아파트 인기가 치솟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윤영호 LH토지주택대 교수는 “최근 부동산을 자산관리가 아닌 삶의 질 측면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그간 교육, 교통, 입지 등 지역 인프라가 부동산 가치 대부분을 좌우했지만 강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젊은 세대 중심으로 주택 기능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확산 중”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일상생활이 불편한 점을 차치하더라도 노후주택은 거주민 안전을 위협하기까지 한다. 우선 지은 지 20년 넘은 노후 아파트, 구체적으로는 1993년 이전 지어진 아파트 상당수가 전기 안전과 소방시설이 제대로 갖춰 있지 않아 화재 위험에 취약하다. 우리나라는 1992년 10월 경량 칸막이나 방화문을 설치한 대피 공간, 하향식 피난구 등 피난시설 설치를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그나마 피난시설 설치는 2005년 12월 들어서야 법적으로 의무화됐다. 다시 말해 1992년은 고사하고 2000년 들어 지어졌더라도 피난시설이 안 갖춰진 아파트라면 인명피해 위험이 높다. 서울 강남구를 사례로 들면 구내 아파트의 57%가 2005년 이전에 지어져 피난시설이 전무하다. 게다가 최근 경북 포항 지진으로 노후주택 재난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지은 지 오래된 주택일수록 내진설계가 되지 않았거나 부실한 경우가 많아 지진 발생 시 붕괴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셈이다.

서울연구원의 ‘서울시 건축물 지진 위험도 평가 자료 확보와 관리 방안’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서울시 건축물 중 내진 설계가 된 주거용 건물은 전체의 29.7%로 전국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평균 내진율은 35.5%로 전체적으로 내진설계가 취약한 편이다. 단독·다세대주택 등 저층주택 밀집 지역은 더 심각한 수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영일 국민의당 의원이 서울시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 저층주택 39만5668가구 가운데 내진설계 대상 건물(2층 이상 또는 연면적 500㎡ 이상 건축물)은 12만6116가구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가운데 내진설계가 적용돼 건물은 1만5954가구로 전체의 12.4%에 그쳤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후주택 대책은커녕 제대로 된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같은 노후주택이라도 지역, 가구 수, 관리 방식에 따라 노후화 정도와 해결 방안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단지별 노후 수준과 주민 애로사항에 대한 정부 차원 조사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더 큰 문제는 지역 주민이 갖는 노후주택 문제 관심과 해결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최근 경기도와 경기도시공사 의뢰로 한국주거학회가 진행 중인 ‘노후 공동주택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연구에 따르면 경기도 내 30년 이상 된 노후 공동주택 단지 652곳 중 90%(583곳)가 의무 관리 대상이 아니다. 비의무 관리 대상(300가구 미만, 또는 승강기가 있는 150가구 미만 가구)은 장기수선계획 수립과 장기수선충당금 적립 의무가 없어 그야말로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단지다.

그럼에도 해당 지역 주민의 노후주택 관리 의식 수준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 주민 36.9%는 장기수선충당금이 있는지도 몰랐다. 입주민 회의 등 주민 단체에 참여해본 응답자도 26.1%에 불과했다. 최하위 안전등급인 D등급 주택에 사는 주민 43%는 아예 관리 방식조차 모르는 실정이다.

김미희 전남대 생활복지학과 교수는 “주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많지만 의식 수준이 워낙 부족하다. 다양한 공동주택 지원 사업이 마련돼 있는데도 정보를 접하기 어렵고 관리 주체가 없어 주민 간 합의도 어렵다. 노후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주민 교육이 선제돼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정다운 기자 jeongdw@mk.co.kr,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 사진 : 윤관식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36호 (2017.12.06~12.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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