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마이뉴스

그날 이후, 어머니는 삼겹살을 올리지 않았다

이상명 입력 2017. 12. 08. 10:23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먹지 않아도 늘 배부르던 어머니, 이제 편히 드세요

[오마이뉴스 글:이상명, 편집:이주영]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삼겹살구이 아이들이 삼겹살이 먹고 싶다 해서 집 앞 마트에서 삼겹살을 사서 구워줬다.
ⓒ 이상명
집 앞 마트에서 삼겹살을 사 왔습니다. 아이들이 삼겹살 구이가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국내산은 600g에 1만 2000원 정도고 멕시코산은 600g 두 개에 1만 2000원이었습니다. 아이들 먹거리는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음식 먹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국내산을 집어 들었습니다. '너희들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던 부모님 생각이 나네요.

어릴 적 어머니는 늘 싼 것만 찾으셨습니다. 조금이라도 싼 것이 있다면 아무리 맘에 드는 다른 것이 있더라도 절대 사주시지 않으셨지요. 같은 기능이라도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죠. 또 어린 마음에 브랜드도 중요하잖아요. 운동화에 새겨있는 브랜드가 무엇인지에 따라 어깨가 펴지기도 하고 기죽기도 하던 예민하기 짝이 없는 어린 소녀에게 말입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발에 신고 다니기만 하면 되지 브랜드가 무슨 소용이냐'며 늘 시장표 하얀 운동화만 사주셨지요. 친구가 신고 다니던 아디다스 운동화는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됐습니다.

팍팍한 살림에 고등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을 키우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반찬은 늘 김치에 달걀부침, 김치에 소시지 반찬, 김치에 어묵 볶음 등 늘 김치와 한가지 반찬 외에는 해주시지도 않았고요.

그러다 아버지의 월급날이면 파티라도 하듯 삼겹살을 먹을 수가 있었던 겁니다. 어머니가 씻어 놓은 상추에 지글지글 구워진 삼겹살을 얹어 입이 찢어지듯 벌리고 우걱우걱 먹던 기억. 아버지의 월급날은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는 삼겹살 먹는 날로 남아있습니다.

이제는 가장의 월급날만 고기를 먹는 가정은 없을 겁니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하면 삼겹살은 물론 다른 것도 얼마든지 사 줄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복지 사각지대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사시는 분들도 물론 계시겠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가정에서는 월급날만 고기를 먹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우리 세대가 어린 시절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모두 아끼고 아껴 사는 습관이 들어있었고, 그 노력이 지금의 풍요를 가져왔다 생각합니다.

어릴 적 사촌 집에 놀러 간 어느 날이었습니다. 동갑내기 사촌이 예쁜 분홍 자전거를 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갖고 싶었지만, 형편상 살 수는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인 오빠의 학원비조차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심통을 부리며 사촌네 작은 방에 누워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오시더니 '아버지 월급날 자전거를 사주겠다'며 약속을 하시는 겁니다.

나도 곧 분홍 자전거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씽씽 달리는 사촌 자전거를 뒤따르며 뛰면서도 마냥 즐거웠지요. 자존심에 한번 타보자는 말조차 못 하면서도 '한 달 뒤면 나도 자전거가 생길 것'이라고 자랑까지 했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아버지의 월급날이 됐는데도 어머니는 자전거를 사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삼겹살도 밥상에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왜 자전거를 사주지 않느냐'며 생떼부리는 내 엉덩이를 때리시면서 '월급이 너 자전거 따위 사 줄 돈인 줄 아냐'고 무척 화를 내시더군요.

철석같이 약속해놓고 어찌 저럴 수가 있는지…. 어머니가 너무 원망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는데도 험상궂은 얼굴로 째려보시기만 하시고 자전거는 사주시지 않았답니다. 분홍 자전거를 가질 수 있는 희망으로 사촌과 친구들에게도 자랑했는데, 이제 뭐라고 하나 난감하기도 해서 그날 밤새 베개를 적셔가며 울었네요.

다음 날 저녁, 어머니가 말없이 삼겹살을 구워주셨습니다. 자전거 안 사주면 안 먹는다고 떼를 부리고 심통을 부리는데도 화도 내지 않고 '자전거 못 사줘서 미안하다'며 숟가락 위에 삼겹살을 얹어 주셨지요.

짜증을 부리며 삼겹살을 다 먹고 일찍 잠이 들었는데, 문득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 소리에 잠이 깼고 그 대화 내용을 듣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실직하셨고, 이제는 무엇을 할지 고민하시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삼겹살은 밥상에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퇴직금마저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손에 쥐지 못했고, 아버지는 한동안 그 충격으로 일을 쉬시는 통에 어머니가 일하셔서 적은 월급으로 근근이 살아가야 했거든요.

몇 년 후 아버지는 다시 직장을 얻으셨고, 우리 집 밥상에는 다시 삼겹살이 올라왔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늘 먹을 수 있는 삼겹살. 그 삼겹살이 제게는 아픔의 기억과 함께 아스라이 떠오르는 그리운 추억이기도 합니다.

엄마, 그때 자전거 안 사준다 심통 부려서 죄송해요. 제 엉덩이를 때리시곤 뒤돌아서서 눈물 훔치시는 거 봤어요. 분홍 자전거를 딸에게는 못 사줬어도 손녀에게 사주셨으니 더는 미안해하지도 마세요. 제게는 분홍 자전거보다 부모님과 함께 했던 모든 시간이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이제는 제가 삼겹살 사 드릴게요. 오래도록 건강하세요.

Copyrights ⓒ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