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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 '바늘구멍' 뚫고 신약 탄생하기까지..신약 임상의 세계

김혜순,원호섭 입력 2017.12.08. 15:45 수정 2017.12.08. 17:09
제약·바이오株 신약개발 기대감으로 폭등했는데..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치매 신약 '솔라네주맙'에 대한 의약품 승인 신청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 신약을 기다리던 환자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지난해 11월 23일 미국 제약회사 일라이릴리의 존 레클라이터 최고경영자(CEO)가 기자들 앞에 섰다. 3년간 경미한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던 2100여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솔라네주맙'의 임상3상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실패였다. 일라이릴리가 27년간 약 3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치매 신약 개발에 쏟아부었지만 신약 허가 마지막 단계인 임상3상을 통과하지 못해 신약 개발은 물거품이 됐고 주가는 폭락했다.

올해 들어 코스닥시장 랠리는 신약 개발 재료를 가진 제약·바이오주가 주도했다. 이른바 '세기의 신약' 개발을 재료로 주가가 연초 대비 10배 이상 폭등하는 주식이 출현하기도 했다. 신약 출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지만 기대감만으로 시장이 너무 과열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신약 승인을 받기 위해 넘어서야 하는 임상 과정이 오래 걸리고 힘든 데다 성공 확률도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약후보물질이 임상1상을 통과한다 하더라도 신약 승인을 얻어 시장에 출시될 가능성은 9.6%에 그쳐 채 10%도 안된다. 실제로 신약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걸까. 지난해 조건부 판매가 허용된 한미약품 폐암 신약 올리타정으로 신약이 출시되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해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봤다.

폐암 환자 10명 중 6명은 항암제 투여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체내 단백질이 변하면서 약효가 듣지 않는 '내성'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한미약품도 '올무티닙'이라는 항암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권세창 한미약품 사장은 "내성을 억제하고 항암 효과를 내기 위해 기존 약물 농도를 높이다 보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내성을 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찾아내는 게 항암 신약 개발의 첫 단계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한미약품은 다년간 항암제 연구를 통해 수만 개 신약후보물질들을 이미 확보해둔 상태였다. 수백 번의 실험을 거친 끝에 체내 단백질 변이를 막고 내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물질을 추리고 추려 'HM61713'이라는 물질을 찾아냈다. 신약 개발의 첫 관문, 신약후보물질 발굴이 마무리된 것이다. 하지만 신약 개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제약사들은 후보물질을 가지고 전임상시험을 진행한다. 전임상이란 사람을 대상으로 후보물질을 투여하기 전에 세포나 동물 모델 실험을 통해 독성은 없는지, 약효는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단계다. 전임상 단계 때는 실험 대상으로 대부분 쥐를 활용한다. 한미약품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폐암에 걸리도록 한 쥐를 대상으로 폐암 신약후보물질인 'HM61713'을 투여해 약효를 검증했다. 만약 전임상에서 효능이 입증되고 독성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임상시험을 신청하게 된다. 미국 시장을 노린다면 FDA에 임상을 요청해야 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인 만큼 식약처와 FDA는 제약사가 제출한 신약후보물질 연구 자료를 면밀하게 평가한 뒤 임상 허가를 내주거나 되돌려 보낸다.

최근에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 병원과 함께 환자 대상 신약 임상시험을 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국내 의료진과 의료기관 수준이 워낙 높은 데다 임상에 참여한 환자와 정보 관리도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임상1상은 주로 건강한 일반인 대상으로 약물 독성 테스트를 진행하지만 올리타정 같은 항암 신약은 처음부터 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한다. 10여 개 국내 병원을 통해 임상에 참여할 환자 모집이 이뤄졌다. 임상에 참여하는 환자는 별도 보상을 받진 않는다. 대신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간 항암제를 투여받는 데 드는 약제비가 면제된다. 권 사장은 "국내 임상 당시 내성이 생긴 말기 폐암 환자에 대한 약이 전무하던 상황이라 올리타정 임상에 참여하겠다는 의료진과 환자가 많았다"고 말했다. 임상1상을 통과하면 보다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2상이 진행된다. 임상2상은 다시 임상2a와 임상2b로 나뉜다. 노은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화학키노믹스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임상2a는 수십 명 규모의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약효 및 약용량(투여량) 실험으로 보면 된다"며 "임상2b는 임상2a에서 결정된 용량을 바탕으로 150~5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약효 입증을 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올리타는 731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도중 부작용으로 1명의 사망 환자가 발생해 안전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올리타와 유사한 기전을 가진 항암제 타그리소도 임상 2상 과정에서 4명의 환자가 사망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전 세계에 출시된 모든 항암제는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다"며 "다만 약물이 주는 이득이 위험보다 월등히 크다는 과학적 근거가 밝혀지면 항암제로 쓰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약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올리타정에 대해 임상2상을 마친 단계에서 조건부 판매를 허가했다. 조건부 허가란 아직 임상3상을 거치진 않았지만 치료 대안이 없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전 세계 국가 대부분이 도입하고 있는 제도다. 주로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 등에 적용된다. 실제 호주와 미국 등 10개국 68개 기관에서 진행한 글로벌 2상 임상 결과 올리타정은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된 폐암 환자의 생존기간을 늘리는 등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2상을 통과한 신약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판매되려면 마지막 고비인 임상3상을 거쳐야 한다. 한미약품도 현재 글로벌 임상3상을 진행하고 있다. 1000~5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임상3상은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데다 소요 기간만 3~5년에 달할 정도로 길고 수천억 원의 비용이 든다.

이 때문에 신약 개발에 나선 제약사 입장에서 3상은 '죽음의 계곡'으로 불린다. 특히 신약이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다면 인종별로 나눠 임상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나라 병원과 함께 임상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임상 비용만 1인당 약 1억원 정도가 소요될 만큼 부담이 크다. 임상3상은 임상2상에서 이미 약효와 부작용을 테스트한 만큼 통과 확률이 58.1%에 달한다. FDA가 3상을 통과한 신약에 대해 제품 허가 승인을 줄 확률은 85.3%로 집계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임상3상을 통과해 신약 판매가 허용되더라도 임상4상을 진행해야 한다. 임상4상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검증하는 단계인데 드물지만 이때 문제가 발생하면 약이 회수되기도 한다.

2004년 다중 경화증 치료제로 시판이 허가된 '나탈리주맙'은 3개월간 유통됐지만 진행성 백색뇌질증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으로 밝혀져 긴급 회수되기도 했다.

[김혜순 기자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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