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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 담임선생님은 '2000살 공자님'

입력 2017. 12. 11. 20:06 수정 2020. 02. 2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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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고전 읽는 가족> 저자 전병국씨 인터뷰
지난 7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고전 읽는 가족>의 저자 전병국씨가 ‘삼중 독서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2000살 넘은 선생님이 40대 학생 둘, 10대 학생 둘을 가르치는 ‘작은 학교’가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소크라테스와 공자, 예수를 담임선생님 삼아 6년 동안 100여권의 고전을 읽어왔다. 전병국(46)씨 가족이 꾸린 ‘로고스 고전학교’(이하 고전학교) 이야기다.

2012년 3월, 전씨의 첫째 아들과 둘째 딸은 각각 중학교, 초등학교를 그만뒀다. 공부도 곧잘 했고 가정 안팎의 문제도 전혀 없었다. 전씨는 “중?고교 시절 6년이 사춘기와 맞물린다. 부모와 자식이 오직 입시만을 목표로 한 표면적인 관계에 머물 것인지, 가족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지혜를 나누고 함께 공부해볼 것인지를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교양 차원의 고전 읽기가 아니라, 삶 전체를 통찰하는 힘을 키워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도 부모의 뜻에 동의하고 따라준 덕분에 고전학교는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학교 그만둔 아이들과 ‘고전’ 스승 삼아 6년간 실험

공학을 전공한 전씨는 라이코스 검색팀장 출신이다. 지금은 작은 사업체를 꾸리며 엔지니어로 일한다. 고전 등 인문학 분야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전씨의 꾸준한 관심사였다. 아이티(IT) 쪽에서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살피다 보니, 무작정 기술을 배우거나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등 ‘남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여러 분야 가운데서도 고전을 가족학교 커리큘럼으로 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고전을 통해 인생, 학문, 진리와 역사 등을 살펴보며 큰 주제를 끝까지 끌고 가보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씨는 “국·영·수 등 교과목을 나눈 건 산업화 이후의 일”이라며 “옛날에는 라틴어 고전 등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역사, 논리, 수학까지 통합교육이 가능했다. 학문을 융합하고 엮어볼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게 바로 고전”이라고 말했다.

공교육 현장을 떠났다는 이유로 가족들은 “그래서 대학은 어떻게 할 건데요?” 등 모진 말도 꽤 들었다. 고전학교를 시작하며 전씨는 직업적 야망을, 아내는 자식 자랑을, 아이들은 또래의 길을 포기한 만큼 쉽게 흔들리진 않았다. ‘가정에서 고전을 읽으며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뒤부터는 매년 커리큘럼도 직접 짰다.

소크라테스·공자·예수를 선생님으로 6년 동안 100여권 고전 읽어온 가족 1교시는 식탁에 모여 탁상담화 ‘단락별 읽기’ 하며 질문과 토론해 문법·논리·수사 등 삼중독서법 개발도 “가족 함께 독서, 공동체 회복”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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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한 권씩 함께 읽는 교육과정 직접 짜

고전학교의 시간표는 단순하다. 2교시밖에 없다. 1교시(90분)는 고전 독서 나눔, 2교시(180분)는 생각 훈련으로 진행한다. 전씨는 “매일 아침 8시에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1교시를 시작한다. ‘탁상담화’ 시간이다. 이때부터 2교시 생각 훈련까지 마치면 낮 12시30분부터는 자유 시간”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루 4시간30분의 공동 수업을 마치면 부모 학생과 자녀 학생은 하교한다. 자유 시간에는 각자 관심사에 따라 공부하는데, 고전 한 권을 읽더라도 문법·논리·수사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다.

남들이 쉽게 떠먹여 주는 요약형 책들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겉보기에도 어렵고 부담스러운 고전을 6년 동안 읽어온 바탕에는 ‘인문고전 삼중 독서법’(이하 삼중 독서법)이 있다. 1단계 문법 독서, 2단계 논리 독서, 3단계 수사 독서로 이뤄진다.

문법 단계는 어휘를 수집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논어>에 자주 나오는 ‘호학’(好學) 등 어려운 단어를 사전을 찾아보며 인식하는 과정이다. 논리 단계에서는 자신만의 어휘 사전을 만들어본다. ‘<논어>에서 호학이란?’, ‘<국가>가 말하는 올바름이란?’ 등 1인 사전을 만든다. <논어>에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는 문장을 통해 공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 등을 살피고 무엇을 주장하는지 나열해보는 것이다.

마지막 수사 단계는 저자의 주장에 찬성, 반대 등 자신의 의견을 내본 뒤 판단, 평가하는 단계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이 좋았다’ 등 다각적으로 토론하는 것이다. 삼중 독서법을 거친 뒤 서평을 반드시 쓰는 게 고전학교의 원칙이다.

가족들은 탁상담화에서 단락별 읽기(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기)를 특히 중시한다. 단락별 읽기는 옛날 왕들의 공부법이다. 전씨는 “스승이 경전을 먼저 읽은 뒤 세자가 따라 읽고 설명과 질문을 주고받는 방식”이라며 “왕에게 ‘경연’이라는 공부 시간이 있었듯 1교시 탁상담화 시간에는 그달의 고전을 읽고 질문, 토론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교육에서 국어, 영어, 수학, 역사 등 교과 과정을 배운다면, 고전학교는 ‘인류의 역사’라는 큰 뼈대를 놓고 4개 시기로 구분했다. 근원의 시대(~BC500), 사상의 시대(BC500~AD30), 시련의 시대(AD30~1600), 통합의 시대(AD1600~현재) 등 4개의 시대에서 다시 12가지의 이야기를 빼내면 1년치 프로그램이 완성된다. 문명의 시작과 역사, 그리스와 서양사상, 중국과 동양사상, 로마제국,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혁명의 제국들 등 12가지의 이야기가 12개월에 걸쳐 각각 배치돼 365일 커리큘럼이 꾸려진다. 수학은 <기하학 원론>으로, 영어는 <어린 왕자>, 국어는 윤동주의 시집, 윤리와 사상은 플라톤의 <국가>로 공부하는 식이다.

시즌1 마무리하며 각자 논문 쓰는 아이들

얼핏 보면 전씨 가족의 고전학교는 탄탄대로만 걸어온 듯하다. 하지만 전씨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사춘기 아들과 단둘이 식탁에 마주 앉아 긴 시간 동안 어색한 침묵만 주고받은 게 고전학교의 시작”이라고 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부모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했지만, 부모가 자세를 낮추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하니 탁상담화 시간은 지식과 생활을 공유하는 공론장이 됐다.

가족 모두가 ‘공교육 열차’에서 내린 뒤 생각하는 방식도 완전히 바뀌었다. 전씨는 “처음엔 부모로서 권위를 찾았다. 어느 날 딸이 ‘나는 아빠가 틀린 부분을 인정해서 좋다’고 말했을 때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아이들이 고전학교를 통해 대안교육을 받았지만, 공교육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거나 우리 가족의 방법이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6년 동안 뿌리내린 고전학교 ‘시즌1’ 마무리를 앞둔 두 자녀는 올해 20살, 18살이 됐다. 요즘은 각자의 관심사를 반영해 수학 및 관계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전씨는 자녀와 함께하는 인터뷰를 끝내 고사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고전 읽고 뭐가 됐냐?’고 묻기 바쁘다. 그런 질문은 우리가 꾸려온 고전학교의 지향과 달라서, 아이들과의 인터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전 자체를 절대화하거나 우상화하면 안 됩니다.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는 게 고전 읽기의 전제조건도 아니고요. 우리 가족의 경우 고전이라는 안경으로 세상 보는 연습을 6년 동안 해온 것뿐입니다. 가족 모두가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세상을 배운다는 것,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전씨네 가족은 주 1회, 매주 토요일 모여 읽고 있는 책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모임인 ‘고전 읽는 가족’도 이끌고 있다. 현재 열 가족 정도 참여 중이다. 관련 정보는 누리집(classicfamily.net)을 방문하면 된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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