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요? 아파트 한번이라도 살아보고싶다"

신상호,이희훈 입력 2017. 12. 18. 21:19 수정 2017. 12. 1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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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고에 산다 ②] 반지하에 사는 30대 김씨, 결혼 '유예'형을 받다

[오마이뉴스 글:신상호, 사진:이희훈]

주택법에는 최저주거기준이란 게 있다. 인간이 쾌적하게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 확보해야 하는 주거 면적을 말한다. 1인 가구의 경우 대략 4평(14㎡)이 최저주거기준이다. 요즘 유행하는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라는 주거유형은 대부분 최저주거기준 미달이다. 즉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것. 하지만 지옥고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해결점은 보이지 않는다. <오마이뉴스>는 지옥고 경험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그 실상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기자 말 
 반지하방 입구를 나오면 바로 계단이 있다. 일곱 계단을 오르면 빌라 밖으로 나가는 건물 현관이 나온다.
ⓒ 이희훈
"10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김아무개(32)씨를 만난 곳은 지난달 30일, 서울 관악구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1번 출구 앞이었다. 그가 사는 집을 보고 싶다고 하자, 김씨는 "10분 정도를 걸어 가야 한다"고 했다. 10분 정도 걷는 건 대수롭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길이었다.

낙성대역에서 그가 사는 집까지 가는 길은 30도 되는 급경사길을 넘어야 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15분을 걸었다. '10분 정도'란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상당히 멀게 느껴졌다. 거친 숨이 차오르는 걸 느낄 때쯤, 그가 살고 있는 집이 보였다.

도로 옆에 있는 반지하, 먼지와 소음 그대로 전해져
 김씨의 집 창은 지면과 맞닿아 있다. 그 앞엔 어김없이 차 한 대가 주차되어 빛을 막았다.
ⓒ 이희훈
 101호, 김씨가 7개의 계단을 내려가 살고 있는 반지하방의 호수다.
ⓒ 이희훈
역세권에서 15분 이상을 걸어야 하는 입지(일반 아파트 입지를 1~4 등급으로 나누면 3등급 이하다), 그것도 다세대 주택의 10평 남짓한 반지하방이 그가 머무는 공간이다.

창문은 도로 옆에 있었다. 창문을 통해 오가는 사람들의 발, 차량의 바퀴가 그대로 보였다. 마침 집의 창문 앞에는 차량 1대가 주차돼 있었다. 차량의 알루미늄 휠이 창문 밖 풍경의 전부였다.

주차된 차량이 시동을 걸면, 매연이 스며들었다. 도로와 인접한 창문 밖으로는 항상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소음과 먼지, 반지하방에 사는 그가 항상 마주하는 것들이다.

"택배 차량이 자주 드나드는데, 항상 저희 집 앞 창문에 서더라고요. 그 차량이 서있는 동안 매연이 들어오는 거죠. 밤에 차량이 오갈 때면 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기도 해요. 차들이 오갈 때 먼지가 들어오는 건 당연하고요"

그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났다. 예전에 겪었던 질병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반지하방으로 쉴새없이 들어오는 먼지도 적잖은 영향을 받았을 것 같았다. 반지하방에 사는 그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집만 마련됐으면, 결혼 더 진지하게 생각했을지도
 김씨는 자신이 사는 집 바로 뒤로 아파트 단지를 바라 봤다. 반지하를 벗어나 아파트에서 사는 꿈을 가지고 있다.
ⓒ 이희훈
 반지하 생활을 하면 내려온 계단 옆으로 공간이 있다. 이곳에는 집안에 두기 힘든 짐을 보관하기도 한다. 김씨는 몇 해 전 산 자전거를 세워뒀다.
ⓒ 이희훈
대학 석사 과정을 마친 그가 연구 활동을 하면서 버는 돈은 월 150만~160만원 남짓이다. 연구 활동 거리가 끊기면, 수입은 '0 원'이다. 내 집 마련을 꿈꾸기 어려운 형편이다.

학사장교 생활로 모은 3000만원은 반지하 보증금으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4년을 만난 여자친구가 있지만, '결혼' 얘기를 쉽게 할 수 없다. 반지하 신혼생활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집 문제가 해결됐으면, 좀 더 진지하게 결혼 이야기를 했을 거 같아요. 여자친구와도 하는 이야기가 집 걱정만 해결되면, 지금 고민의 90% 이상은 해결 됐을 거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집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이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이런 그에게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는 선망의 대상이다. 90년대식, 발코니 확장도 적용되지 않은, 평범한 공공 분양 아파트였다. 그는 이 아파트를 지나오면서 "정말 좋은 아파트"라고 칭찬을 거듭했다. 허름해 보이는 아파트는 그의 '꿈' 같은 존재였다.

"아파트가 이젠 꿈이 된 거죠. 항상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그 생각을 해요. 아, 저 아파트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아파트에 한 번 살아보고 싶은데...막상 들어갈 생각하면 비용 자체가 수억원, 만만치 않다는 걸 느끼죠."

부동산앱 켜고 아파트 얼마인가 확인하지만...
 김씨는 자신이 사는 집 바로 뒤로 아파트 단지를 바라 봤다. 반지하를 벗어나 아파트에서 사는 꿈을 가지고 있다.
ⓒ 이희훈
그의 취미는 부동산 앱 보기다. 다른 지역을 갈 때마다, 부동산 앱을 켠다. 이 지역 아파트는 얼마인지 확인해본다. 가격을 보면서 또 한 번 탄식을 한다.

"어딜 갈 때면 꼭 부동산 앱을 켜요. 근처 아파트는 얼만지 확인해 봐요. 습관이 된 거 같아요. 대부분 서울 아파트는 보통 6억이 넘어가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고, 언제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죠."

연구직에 있는 그는 조만간 유럽으로 유학을 떠날 구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유학을 다녀온 뒤 미래에 대해서도 확실히 답을 하지 못했다. 유학을 다녀온다고 집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는 행복주택 같은 정부의 공공 주택은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다. 까다로운 자격요건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아, 지레 포기했다.

"행복주택 같은 정부에서 내놓는 주택들은 사실 관심 있게 보진 않았어요. 제 소득도 기타 소득으로 잡혀서 별다른 세금 혜택이 없는 상황에서 (주택들은 더) 자격 요건이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파트를 구할 수 있을까' 1시간 대화에서 그는 공허한 물음을 반복했다. 서울에서의 반지하방 생활 10여년, 그 시간은 그에게 희망을 그릴 수 있는 '그림판'을 앗아 버린 것 같았다. 대화를 마치고 반지하방 계단으로 내려가는 그의 어깨가 유달리 쓸쓸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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