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대 그룹과 비공개 만찬하려던 청와대, 이틀 앞 돌연 취소

손해용.허진 2017. 12. 19.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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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경제보좌관이 먼저 제안
언론 알려지자 취지 훼손 판단한 듯
재계 "소통 물꼬 기대했는데 아쉽다"
청와대 "다양한 경제 주체 만날 것"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김현철 경제보좌관,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왼쪽부터)이 17일 ‘11시 50분 청와대입니다’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에 출연해 중국 국빈방문 관련 토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주요 대기업 고위 경영진과의 간담회를 추진했다가 이를 취소했다.

18일 청와대와 재계에 따르면 김현철 대통령 경제보좌관과 8대 그룹 대외협력 담당 임원들은 20일 서울 시내에서 비공개 만찬 간담회를 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는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정진행 현대차 사장, 장동현 SK㈜ 사장, 하현회 ㈜LG 부회장, 황각규 롯데 사장, 오인환 포스코 사장, 홍순기 GS 사장, 여승주 한화 사장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김 보좌관 측에서 대한상의를 통해 대기업과의 비공식 회동을 제안했고 8대 그룹으로 대상을 추렸다”며 “특별한 의제는 없으며 기업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는 소통의 자리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재계에선 이번 간담회에서 청와대의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일자리 창출과 협력업체와의 상생, 평창 겨울올림픽 후원 등에 대한 협조 요청이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비공식 만찬을 열려던 계획이 이날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청와대는 이 계획을 돌연 취소했다. 김 보좌관이 대기업 경영진 만찬 회동 추진 의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 보도 이후 당초 회동 취지가 훼손될 수 있는 만큼 이를 연기하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김현철 경제보좌관은 중국 방문 전에 “기업인들과 만나 편하게 대화하는 자리를 갖고 싶다”고 대한상의에 전했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이 중국을 다녀왔고 아무래도 중국과 기업의 관계가 개선되면 가장 먼저 민감하게 움직일 데가 기업”이라며 “정부의 경제운용 방식 등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가 필요한 타이밍이니까 기업인들을 보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방중을 마치고 귀국하자 대한상의가 8대 그룹 핵심 경영진을 만나는 형식으로 행사를 만들었다. 이에 청와대에서 “8대 그룹으로 대상을 특정한 것은 행사 취지에 맞지 않다”며 20일 만찬 일정을 취소시켰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경제부총리나 장관들과 달리 경제보좌관은 기업인의 말을 편안한 분위기에서 듣는 게 역할”이라며 행사 취소 배경을 설명했다.

재계에선 약속이 갑작스레 취소된 데다 책임을 대한상의에 떠넘기는 것에 당황한 분위기다. 참석이 예정됐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회사 대표가 당초 있던 20일 약속을 취소하면서까지 일정을 비워뒀다”며 “청와대와 재계의 소통에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일정이 미뤄지고, 8대 기업을 특정해 만나지 않을 뿐 대기업과의 회동은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또 시장 등 경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자 다양한 경제 주체들과 비공개 회동을 수시로 가질 계획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예전처럼 몇 대 그룹 기업인들을 줄세우기식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청와대와 대화하고 싶은 기업을 산업 분야별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청와대의 입장은 재계와의 ‘비공개 접촉’을 금기시하던 기존과는 다른 분위기다. 최근 산업계·재계와의 소통을 강화하자는 청와대 내부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LG그룹과 첫 간담회를 여는 등 대기업과의 본격적인 접촉에 나선 데 이어 청와대에서 교감을 나누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청와대 입장에서도 내년부터 본격화할 최저임금 인상과 일자리 창출 정책, 경제·투자 활성화, 각종 노동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요 대기업과의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주요 그룹 총수들과 만찬을 하긴 했지만 실무적인 대화나 조율을 하기에는 부족했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 법인세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등 친(親)노동 성향의 정책으로 불편해진 재계와의 관계를 풀어보자는 의도도 있다.

손해용·허진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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