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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가슴으로 쓴 편지] "덴마크인이 행복한 이유요? 서로 돌보며 살아가기 때문"

한국일보 입력 2017.12.26. 04:44 수정 2017.12.28. 14:13
<2>'행복도 1위 나라' 라우센씨가 헬조선 외치는 한국인에게

한국선 소유 성취가 행복의 조건

월세집 살며 대중교통 이용해도

일상의 소소한 기쁨서 행복 느껴

새해엔 다같이 한국 사랑하길

14년전 한국과 인연을 맺은 덴마크인 에밀 라우센씨는 5년 전 한국인 아내 서유민씨와 결혼해 지난달 딸 리나를 얻었다. 에밀 라우센씨 제공

내가 사랑하는 한국 국민에게

저는 덴마크에서 온 에밀 라우센이라고 해요. 행복도 1위의 나라, 특히 휘게(hygge)가 소개되면서 올해는 더 많은 한국사람들이 덴마크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왜 그 좋은 곳 놔두고 한국땅에서 사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셔요. 그러면 저는 한국은 정말 멋지고 훌륭한 나라이며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답니다.

제가 한국땅을 처음 찾은 것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년 동안 봉사를 하고 덴마크로 돌아갔으나 한국이 곧 그리워졌고 다시 한국에 와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습니다. 2009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한국인 유민을 만나 2012년 ‘살수록 더 좋은 결혼’에 골인하여 남편이 되었고, 오랜 기다림의 결실로 올해 11월 예쁜 공주님 리나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 대신 프리랜서의 삶을 선택했고 코딱지만한 집 월세를 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삶, 한국의 기준에서는 행복과 동떨어진 조건이지만 저는 매일매일이 기쁘고 감사합니다.

물론 한국에서의 삶은 쉽지만은 않았고 지금도 매일 시험대에 오릅니다. 한국에 산 지 14년이 되어감에도 여전히 ‘키 큰 외쿡인’이라는 주홍글씨가 선명합니다. 아내와 저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부터 시작해서 아이들은 “어 외국인이다! 헬로 헬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야 가서 영어 해봐”, 어르신들은 무조건 “미국에서 왔소?” 합니다. 하지만 악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가 먼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며 마음을 열기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구수하게 대화를 나눕니다. 때론 거칠지만 저는 한국의 정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가치관과 의식과 문화를 존중합니다.

저는 행복에 대해 말할 때 ‘선택’을 강조합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행복하기로 선택하는 거죠. 덴마크에 있으면 키 크다는 말 안 들어도 되고 이방인 취급도 안 받아도 되고 에밀이라는 존재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만, 저는 한국 사람들이 저를 통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기를 소망하며 한국에서 살아갑니다.

에밀 라우센씨와 아내 서유민씨. 에밀 라우센씨 제공

한국에서 행복이라는 것을 너무나 큰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거든요. 소유와 성취가 행복의 조건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요. 한국인들도 일상의 소소한 행복의 가치를 알고 누리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있는 것, 이 나라, 나의 가족, 내 존재를 귀하게 여기며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으로 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며 가꾸며 살아가기로 매순간 선택할 수 있어요. 저는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 이 사회에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 청년기에 걸쳐 암과 종양으로 여러 번 사선을 넘었고 시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갔으며 자녀를 가질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한 아이에게 심한 학대를 받았으며 십대 시절 심한 우울증으로 10년을 매일 자살충동에 시달렸습니다. 행복의 나라 덴마크에서 저의 삶은 마냥 행복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아침에 눈을 뜨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또 다른 누군가를 웃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제가 워낙 사람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택시를 타도 시장에 가도 길거리에서도 대화를 나눕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등 다양한 분들을 만나고 고충과 애환을 듣습니다. 물론 저는 그 심정을 알고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덴마크의 강점과 한국의 강점을 잘 살려서 한국을 조금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덴마크도 싫은 나라로 만들고 돌아오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반대로 한국을 사랑하고 강점을 아는 분들은 덴마크의 의식을 배워서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한국에 전했습니다. 아름다운 초원인데 막상 가까이서 보면 양 똥이 수북한 것처럼 덴마크도 완벽한 파라다이스는 아닙니다. 하지만 덴마크인들이 행복하다고 답할 수 있는 이유는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함께 행복해야 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입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모두 함께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세금도 기쁜 마음으로 소득의 60% 넘게 낼 수 있는 것이죠.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함께’를 생각하는 나라. 그래서 행복한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 행복한 나라가 된 덴마크처럼 한국도 함께 행복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휘게는 돈으로 누리는 것도 아니고 지금 있는 곳, 나와 함께 하는 사람, 또 나 혼자서라도 내게 있는 것의 가치를 알고 기쁘게 하는 모든 것에서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경쟁과 비교에서 쟁취한 우월감, 특권의식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에서 소소한 기쁨을 함께 나누고 살아가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나 자신의 귀함을 알고 다른 사람 또한 귀하게 여기며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며 내 이웃을 돌아보고 함께 살아간다면 어느 순간 행복이 찾아와 있을 것입니다.

한국땅 모든 이의 마음에 한국에 대한 사랑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나라를 더 멋진 나라 행복한 나라로 바꾸는 데 저와 함께 힘을 더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미 우리에게 있는 것의 가치를 알고 다른 사람과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기로 선택하고 우리가 이룬 매일 매일의 노력이 작고 소소할지라도 잘 했다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면 좋겠습니다. 작은 것들을 기념하고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배울 것이 많고 멋지고 훌륭한 나라예요. 역사를 알수록 더 멋지고 훌륭하게 느껴졌어요. 더 따뜻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고 믿어요. 다사다난했던 2017년 정말 애 많이 쓰셨고요. 다가오는 2018년 함께 웃을 수 있는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가요.

-한국을 사랑하는 덴마크인 에밀 라우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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