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거짓말..위안부 '이면합의' 있었다

입력 2017. 12. 27. 15:06 수정 2017. 12. 27.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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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TF 검토 보고서 발표
이병기-야치 고위급 비밀협상
2달 만에 합의 잠정 타결돼
주무부처 외교부는 참여 못해

피해자단체 설득·소녀상 문제 해결
제3국 기림비 설치 미지원
성노예 용어 미사용 등 '이면'합의

[한겨레]

2015년 12월2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회담을 마친 뒤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한국과 일본 정부의 지난 2015년 12월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이하 12·28 합의) 당시 제3국 위안부 기림비 문제와 ‘성노예’ 용어 사용에 대한 ‘이면합의’가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그동안 이면합의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그런 것은 없다’고 일축해왔다.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이하 ‘위안부 합의’ 티에프)는 27일 지난 5개월의 검토 결과를 담은 보고서에서 “위안부 합의에는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발표 내용 이외에 비공개 부분이 있었다”며 “이런 방식은 일본 쪽 희망에 따라 (한·일) 고위급 협의에서 결정됐다”고 밝혔다.

‘위안부 합의’ 티에프가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등 ‘위안부’ 피해자 관련 단체 설득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 관련 적절한 노력 △제3국에 위안부 기림비 등 설치 미지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겠다는 내용을 비공개로 일본 쪽과 합의했다. 이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12·28 합의의 ‘이면 합의’에 포함됐다.

당시 일본 쪽은 12·28 합의 발표에 따라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 될 것이므로 정대협 등 단체 등이 불만을 표명할 경우 한국 정부가 이들을 설득해주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어떻게 이전할 건인지, 구체적인 한국 정부의 계획”을 물으면서 제3국에 ‘위안부’ 기림비 등 설치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일본 쪽은 “한국 정부는 앞으로 ‘성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도 밝혔다.

보고서는 이에 한국 쪽이 대응하는 형식으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과 ‘관련 단체’ 등의 설득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 소녀상에 대해 관련 단체와 협의를 통해 적절히 해결 노력 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비공개로 주고받은 내용이지만 이 부분은 지난 12·28 합의 당시 윤 장관의 발표 내용에 명시됐다. 박근혜 정부가 비밀에 부친 것은 제3국 ‘위안부’ 기림비 및 ‘성노예’ 용어 사용 관련 입장이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는 공개된 내용 이외의 합의사항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소녀상과 관련해서는 그런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정대협 설득, 제3국 기림비, ‘성노예’ 표현과 관련한 비공개 내용이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가 일본 쪽 요구를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평가했다.

2015년 4월 제4차 고위급 협의에서 이같은 내용이 잠정 타결된 뒤 외교부가 내부 회의를 통해 수정 또는 삭제가 필요한 네 가지 사항을 정리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외교부가 정리한 내용 가운데는 제3국 ‘위안부’ 기림비와 ‘성노예’ 표현 문제가 포함되고 소녀상 언급도 있었다. 보고서는 “외교부가 비공개 합의 내용이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썼다.

이밖에도 ‘이면합의’에는 12·28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설립하기로 한 ‘위안부’ 지원 목적 재단에 관한 상세한 조처 및 재단 설립 관련 논의에서 일본 쪽이 “(피해자들에게) 현금의 지급은 포함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삭제하는 과정 등이 담긴 논의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티에프는 또 12·28 합의가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이 대표로 나선 비밀협상으로 진행된 8차례의 고위급 협의를 통해 잠정 합의가 이뤄졌다고도 밝혔다. 양국은 2015년 2월 제1차 고위급 협의 이후 약 2개월 만인 4월11일 제4차 고위급 협의에서 대부분의 쟁점을 타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외교부는 고위급 협의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다. 당시 합의 내용은 일본 정부의 책임과 사죄 문제, 금전적 조치를 비롯해 합의 및 ‘이면합의’에 포함된 내용도 들어 있었으며, 이는 양국 정상들의 추인까지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2015년 6월 이른바 ‘군함도’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문제로 한-일 정부 간 갈등이 고조되며 ‘위안부’ 문제 관련 협의도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그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중 3국 정상회의 계기로 중단됐던 고위급 협의가 재개됐다.

2015년 11월2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라는 점을 들어 조기 타결에 합의한 뒤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12월15일까지도 연내 타결에 회의적이었던 외교부의 예상과 달리 12월23일 제8차 고위급 협의에서 합의가 최종 타결된 배경은 의문으로 남아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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