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다시, 위안부 문제-②] 위안부 합의, 파기·재협상 왜 어렵다고 하나

입력 2018.01.01. 16:19

새 규범에 따라 경계획정을 새로해야 하자 일본은 어업 상 새 질서도 마련하자고 우리 정부에 제안했다.

지난해 12월 27일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이하 위안부TF)의 결과발표는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합의 성사과정에서 저지른 전략ㆍ협상실패 사실을 드러내기만 했다.

협상주체였던 정부의 상호 동의가 이뤄진 사항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파기하면 향후 외교협상에서의 신뢰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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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국제법상 구속력을 갖춘 조약은 아니지만 ‘2015년 12월 28일 한ㆍ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이하 위안부 합의)는 국가와 국가 간 신의에 따라 맺은 정치적 합의, 즉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 구조를 취하고 있다. 신사협정과 같은 정치적 합의는 결국 국가와 국가 간 ‘신의’를 가늠하는 기준으로도 작용하기 때문에 합의 파기 및 재협상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사진=연합뉴스]

▶위안부 합의문제, 日 어업협정 파기 때와 다른 이유= 1998년 일본의 한ㆍ일 어업협정 파기선언을 예로 들며 ‘피장파장’으로 나가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일본이 한ㆍ일어업협정 일방적으로 파기했을 당시만 해도 ‘국제규범의 변화’라는 거부할 수 없는 변수가 존재했다. 일본이 어업협정 파기를 선언하기 4년 전인 1994년 국제해양법 협약이 발효됐다. 한국과 일본 모두 비준국이었다.

새 규범에 따라 경계획정을 새로해야 하자 일본은 어업 상 새 질서도 마련하자고 우리 정부에 제안했다. 당시 어업의 발달로 이익을 보고 있었던 우리 정부는 개정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국제규범과 결이 다른 체계를 마냥 유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개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어업협정에는 통보로서 조약의 종료를 선언할 수 있다는 조문이 있었다.

반면 위안부 합의의 외부변수에는 변화가 없다. 국제인권법에 대한 규범이 달라지거나 위안부 합의를 바라보는 국제환경이 달라지지 않았다. 위안부 합의 발표 당시 미국과 독일, 호주,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정부와 유엔, 유럽연합(EU) 등은 지지를 표명했다. 오늘날 이 국가들이 지지를 철회한 건 아니다.

지난해 12월 27일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이하 위안부TF)의 결과발표는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합의 성사과정에서 저지른 전략ㆍ협상실패 사실을 드러내기만 했다. 이른바 ‘이면합의’논란이 불거지고 있지만, 오태규 TF 위원장은 “이면합의라는 어떤 법률용어로 정의되는 것이 없다”며 “있는 그대로 ‘비공개 내용’”이라고 말했다. 평화의 소녀상과 제 3국 기림비 등에 대한 한ㆍ일 비공개 협의 자체가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사진=연합뉴스]

▶국내사정으로 인한 합의 파기, 외교파장이 문제= 위안부 TF가 지적한 위안부 합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평화의 소녀상과 제3국 기림비, ‘성노예’ 표현 등을 둘러싼 비공개 협의에 있었다. 이를 놓고 ‘이면합의’ 논란이 불거졌지만 오태규 TF 위원장은 “법률상 용어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비공개 내용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비공개 합의로 볼 것이냐, 비공개로 국가와 국가간 입장표명이 이뤄졌는지로 볼 것이냐는 정부의 해석에 달려있다.

한ㆍ일 정부가 비공개로 진행한 협의조차 당시 양 정부의 동의 하에 이뤄졌다. 협상주체였던 정부의 상호 동의가 이뤄진 사항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파기하면 향후 외교협상에서의 신뢰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위안부 합의는 법적 구속력을 받지 않는 정치적 합의이기 때문에 국제법상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유무형상 실질적 책임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ㆍ재협상이 초래할 외교적 파장을 분석하지 못한 채 덜컥 일본과 다시 협상테이블에 앉는 건 위험하다. 비록 국제법상 문제가 없다고 해도 외교적으로 감수해야 할 대가는 존재한다. 그 대가가 무엇인지 가늠을 하고 후속조치를 결정해야 한다. 한국이 겪어야 할 외교적 파장을 진단하지 못한 채 덜컥 합의를 파기ㆍ재협상했다가는 오히려 일본의 반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

▶ 국내사정에 따른 합의파기, 어떤 선례 있나= 국제변수 없이 오로지 국내사정을 이유로 국가간 합의나 조약을 파기ㆍ재협상한 선례가 없는 건 아니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와 자유무역협정(FTA)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등 기존 국가들이 동의한 체계를 국내정치를 이유로 뒤집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결례는 미국에 대한 신뢰하락으로 이어졌다. 포린폴리시(FP) 등 외교전문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횡포(?)로 국제사회에서의 미국 패권주의가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EU는 나토를 대체할 별도의 안보공동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이 빠진 TPP의 리더를 자처하고 아시아권 내 경제 지도자로서의 약진을 노리고 나섰다. 당장 미국과 FTA 개정협상을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 내에서도 미국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상황이다.

munja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