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금지' 학부모 반발하는 두 가지 이유 [더(The)친절한 기자들]

박다해 입력 2018. 1. 10. 08:56 수정 2022. 8. 1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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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더(THE) 친절한기자들]
'선행학습 금지' 담은 '공교육정상화'법 불똥 유치원·어린이집으로
"현장 모르는 탁상행정" vs "정책일관성 필요해" 대립
한 어린이가 벽에 걸린 알파벳 그림을 보고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교육부의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후 학교 과정 금지’와 발맞춰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도 오는 3월부터 함께 시행하고자 했지만,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습니다. 파장이 확산되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나서서 교육부에 영어수업 금지 ‘시행 연기’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교육부는 일단 한 발 물러선 모양새지만 “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방침이 나오게 된 걸까요. ‘더(the) 친절한 기자들’에서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 교육부 “한글·영어 대신 놀이·돌봄 중심으로”

<동아일보>는 8일 “정부가 올해 3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던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특별활동 금지시기를 늦출 방침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도를 보면, 교육부 쪽은 “누리과정과 초등 교육과정이 연계돼 있어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방침은 불변”이라면서도 “부처 간 협의가 남아 있는 데다 현장 의견 수렴을 위해 적용 시기를 늦추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밝혔습니다. (▶관련 기사 : [단독]‘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금지’ 늦춘다)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는 앞서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27일 발표한 ‘유아교육 혁신방안’에서 시작됐습니다. 혁신방안에는 한글·영어 등 지식습득을 위한 교육이 아닌 놀이·돌봄 중심으로 방과후 과정을 개선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유아기는 전 생애에 걸친 인지적·감성적·사회적 발달 등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시기로, 개별 유아들의 다양한 특성이 발현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글, 영어 등 초등학교 준비와 지식습득을 위한 교육으로 개별 유아의 다양한 특성이 발현되지 않고, 지나치게 세부적인 교사용 지침서 등으로 현장의 교육 자율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에, 교육부는 유아의 다양한 특성이 반영될 수 있는 자유놀이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하고, 다양한 교육방식이 발현될 수 있도록 현장의 교육 자율성을 큰 폭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중략)

또한, 무분별한 영어, 한글 등 특성화 프로그램 위주의 방과후 과정을 개선하고, 놀이·돌봄 중심의 ‘방과후 놀이유치원’을 단계적으로 확대?지원해 나갈 예정이다. (2018년 10개 → 2022년 50개)

-교육부 ‘유아교육 혁신방안’ (2017년 12월 27일 발표)

■ ‘공교육정상화’가 ‘유치원·어린이집’으로 불똥 튄 이유

‘유아교육 혁신방안’에 영어 학습 금지가 포함된 이유를 보려면 19대 국회 때인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2014년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습니다. 2013년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과 강은희 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교육 정상화 촉진에 관한 특별법’을 합쳐 만든 법안입니다. 선행학습을 금지하고, 공교육 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안입니다. 이 법은 방과후학교 과정에서도 선행학습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8조(선행교육 및 선행학습 유발행위 금지 등)

① 학교는 국가교육과정 및 시·도교육과정에 따라 학교교육과정을 편성하여야 하며, 편성된 학교교육과정을 앞서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서는 아니 된다. 방과후학교 과정도 또한 같다. -‘공교육정상화’법

법 제정 당시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후학교 과정’을 한시적인 선행학습 금지 ‘예외’ 대상으로 규정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가 의무교육 과정에 포함되기 때문에, 법이 시행되면 초등학교 1·2학년에서 영어를 가르칠 경우 불법 선행학습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법을 적용할 여유를 주기 위해 예외 대상으로 규정했고, 이 예외 규정의 적용 시한이 바로 2018년 2월 28일까지입니다. 오는 3월부터는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후 수업이 전면 금지되는 이유입니다. 초등학교 1·2학년의 영어 방과후 수업을 규제하는 만큼, 그보다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도 영어를 따로 가르치면 안된다는 것이 교육부의 논리입니다.

사진 픽사배이

■ 참여도·선호도 높은 ‘영어 특별활동’

그런데 문제는 영어 수업이 유치원·어린이집에서 가장 인기있는 특별활동 프로그램이라는 점입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펴낸 ‘2015년 전국보육실태조사’를 보면, 어린이집에 다니는 영유아의 45.4%가 영어 특별활동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비율은 2살과 3살 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3~5살의 경우 평균 60% 가까이 영어 특별활동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영어 특별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1인당 최대 비용은 어린이집의 경우 월 평균 2만 5700원, 유치원의 경우 월 평균 3만 2900원대으로 저렴한 수준입니다.

학부모들을 상대로 ‘어떤 특별활동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도 묻자 학부모들은 체육(30.9%)에 이어 두 번째로 영어(25.6%)가 필요하다고도 답했습니다. 어린이집보다는 유치원에서, 중소도시·읍면 지역보단 대도시에서 ‘영어 특별활동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높은 편입니다.

■ 청와대 누리집 폐지 반대 청원 봇물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육부의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소식이 알려지자 청와대 누리집에 불이 났습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어린이집 영어 방과후 과정 폐지 반대’ 글이 70여개 이상 올라온 겁니다.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후 금지까지 반대하는 청원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납니다.

“7살 딸을 둔 학부모 겸 유치원 영어 교사”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의 의견이 대표적인데요. 이 누리꾼은 “탁상행정으로 밖에는 안 보인다”며 “어차피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영어공부를 하는데, (방과후 과정에선) 유아기 때 놀이 위주로 흥미를 느끼게 해주니 학부모님들이 모두 만족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누리꾼은 “학부모 의견이 1도 반영이 안 된, ‘전문가’라고 불리는 소수의 의견만 듣고 결정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100만원짜리 영어유치원 제재는 어떻게 되는건가”라고도 물었습니다.

청와대 누리집에 올라온 청원글. 청와대 누리집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 학부모 불만의 첫 번째 이유 ‘기회비용’

학부모들의 불만은 크게 두 가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 문제입니다. 학부모들이 느끼는 영어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그대로인데, 영어 프로그램을 일괄적으로 없애면 결국 가격이 저렴한 방과후 학교나 유치원·어린이집에서 수십만원대의 사교육 시장으로 그 열기가 옮겨갈 것이란 설명입니다. 이른바 ‘풍선 효과’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회의 불평등’이 발생하게 됩니다. 수십만원대 사교육 시장으로 갈 수 있는 가정의 아이들과 달리, 학원에서 따로 영어를 배울 여력이 안되는 가정의 아이는 영어에 뒤처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실제로 유아를 대상으로 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 넘는 돈을 받는 전일제 영어학원, 일명 ‘영어유치원’은 유치원이 아닌 ‘학원’으로 등록돼있어 ‘공교육정상화법’(선행학습금지법)의 적용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학원 등에서) 따로 영어를 (교육) 시킬 여건도 안되며 더더욱 영어유치원 같은 곳은 보내지 못한다”, “(나중에) 학교 가면 (영어실력으로) 차별 받을 게 뻔한데 몇만원짜리 유치원 교육도 서민의 자식에겐 호사인가요”, “유치원 영어수업 3만∼4만원 하는데 사교육 영어 학원은 15만원 이상 쓰게 된다” 등의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입니다.

■ 학부모 불만의 두 번째 이유 “영어 놀이일 뿐”

유치원·어린이집에서 실시하는 영어 방과후 활동이 ‘학습’보다 ‘놀이’에 가깝다는 지적도 학부모들이 불만을 가지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6살 아이를 키우면서 유치원 영어 방과후 교사로 2년 정도 근무한 문아무개 씨는 “보통 유치원에서 영어 프로그램은 20분 정도 진행되는데 동화책 읽어주고 게임, 노래, 스티커 붙이기 등을 통해 단어를 배우는 형식”이라며 “아이들도 오늘이 영어 프로그램을 하는 날인지 물어볼 정도로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소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는 교육부가 원하는 ‘한글·영어 등 지식습득을 위한 교육이 아닌 놀이·돌봄 중심’의 수업이 이미 이뤄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때문에 “저렴하게 20∼30분 즐겁게 노는 수업을 중단한다니 너무한다”, “우리 아이도 집에서 노래 부르면서 즐거워하는 유치원 영어수업 폐지를 반대한다”, “어린이집 영어교육은 일주일에 2번 20분씩 정도인데, 그것도 노래나 간단한 게임 위주인데 마치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테스트받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제 아닌가요?” 등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픽사베이

■ 선행학습 금지가 공교육 정상화?

방과 후 영어수업이나 특별활동을 무턱대고 금지하는 것이 ‘공교육 정상화’라는 법의 기존 취지에 맞는지도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애초에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것과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것은 별도의 정책 목표인데 두 목표를 같은 선상에서 잡아 정책을 마련하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이 법은 학원의 선행학습 광고 금지 조항만 있을 뿐, 벌칙 규정이 없어 학교에만 국한된 ‘반쪽짜리’ 법이란 비판도 받았습니다. 게다가 학생들의 서열을 나누고 경쟁만 강조하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교육 시스템은 어떻게 하지 못하면서, 선행학습만 금지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교육계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 벌써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부활” 개정안 나와

학부모들의 불만을 의식해서인지, 국회에선 ‘방과후 영어수업’을 두고 추가 입법 논의가 진행될 전망입니다. 박인숙 바른정당 의원은 논란이 불거진 지난해 12월 28일 ‘공교육정상화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이 개정안은 초등학교 1·2학년의 영어 방과후 학교 과정을 ‘선행교육 규제 제외 대상’에 포함해 다시 부활시킨다는 내용입니다.

박 의원은 “영어 방과후학교 과정은 지금까지 맞벌이 가정이나 저소득층의 수요가 높아 방과후 수업 중 가장 만족도와 실효성이 높은 수업”이라며 “초등학교 1·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결국 자녀를 영어 학원에 보낼 수 밖에 없게 돼 교육비용 부담이 갑자기 몇십만원으로 증가하게 되고, (해당 법안이) 사교육도 같이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서 주변에 영어학원도 없는 시골 학생들은 아예 출발선상이 달라지게 된다”며 개정안 발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이 상임위에서 논의, 통과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일단 ‘키’는 교육부가 쥐고 있습니다. 9일 교육부 관계자는 “현장 분위기를 보고 (해당 문제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날 저녁 국회 교문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신년인사회 겸 만찬 자리에서 만나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를 두고 방향 조율에 나섰습니다. 교육부는 현장 의견을 수렴해 이달 안으로 결론을 내릴 계획입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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