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먹고 마시는 식습관에 그려진 한국인의 자화상

입력 2018.01.10. 14:54 수정 2018.01.1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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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 교수 신간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조선시대 양반 남성의 일상 식사 상차림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발췌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식사를 한 뒤 습관처럼 커피를 찾는 우리의 음식문화에는 애잔한 한국의 현대사가 녹아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 커피가 소개된 건 19세기 말 개화기 때지만 커피 문화가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건 한국전쟁 후 서울 등 도시에 다방이 들어서면서였다.

당시 다방에서 팔던 커피는 대부분 미군 부대 매점에서 불법으로 빼돌린 인스턴트 커피였다. 과립형 인스턴트 커피는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 개발됐는데,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지금의 독특한 '믹스커피' 문화를 낳았다.

1990년대 말 미국 커피 체인 스타벅스가 국내 상륙하면서 고급스러운 원두커피 붐이 일어났지만, 여전히 '다방커피' 혹은 '자판기커피'로 불리는 믹스커피는 우리 커피 문화의 주축을 이룬다.

깊은 맛이나 향, 멋은 좀 없어도 달고 맛있고 빠르고 실용적인 믹스커피는, 전후 산업화 과정에서 서구 선진국을 선망하며 앞만 보고 내달려온 한국인들의 삶과 정서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믹스커피가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춰버린, 우리의 전통 후식 숭늉의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고 말한다.

음식인문학자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주 교수의 신간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휴머니스트 펴냄)는 우리의 식습관을 비교문화사적 연구 방법을 통해 부분부분 세밀하게 고찰하면서 그 기원을 더듬어 찾아간다.

1976년 12월 세계 최초로 출시된 믹스커피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발췌

신발을 벗고 방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 나지막한 상 위에 차려진 밥, 국, 반찬들을 수저로 먹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 식사 방식이다.

아파트의 보급으로 많은 사람이 입식 부엌과 식탁을 이용하게 되면서 이런 식습관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큰 틀은 유지되고 있다.

모든 음식을 한 번에 가득 차려놓고 여럿이 나눠 먹는 상차림이나 젓가락과 숟가락을 함께 사용하고, 술잔을 돌려가며 술을 마시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책은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식습관이 여전히 많은 외국인에겐 이상하고 낯선 문화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며, 이런 식습관이 한국인만의 특수한 것인지, 인류 보편적인 문화인지를 지역 간 비교를 통해 확인한다.

그러면서 식습관의 작은 차이 하나하나에 고유한 지리적, 생태적 환경에 적응하며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이 배어 있음을 일깨운다.

하지만 우리가 오랜 전통으로 여기는 식사 방식이 생각만큼 오래되진 않았고, 주로 근현대의 사회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알고 보면 우리가 문명화의 기준이자 전범으로 삼아온 서구의 식사예절이나 음식문화도 별반 다르지 않다.

1973년 1월10일 표준식단제 실시 첫날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발췌

일례로 음식을 개인별로 구분해 순차적으로 내놓는 서구식의 '개별형+시계열형' 상차림이 서구 사회에 자리 잡기 시작한 건 19세기 중엽 이후다. 그 전까지는 유럽과 미국에서도 우리처럼 음식을 한꺼번에 내놓고 여러 명이 공유하는 '공통형+공간전개형' 상차림이 일반적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음식을 시차를 두고 차려 내는 '시계열형' 상차림은 18세기 중엽 러시아의 한 음식점에서 시작돼 '러시아식 서비스'로 불리며 19세기 중엽부터 유럽 각지로 전파됐다고 한다.

주요리를 먹은 뒤에 디저트를 먹는 서구인의 식습관도 20세기가 다 돼서야 자리를 잡았다.

심지어 유럽 일부 지역에선 20세기 중반까지도 우리가 된장찌개를 공유하듯 여럿이 한 그릇에 담긴 수프를 개인용 접시 없이 각자의 스푼으로 떠먹었다.

반면 조선 시대 양반들은 개인별로 독상에서 식사하는 '개별형' 상차림이 일반적이었고 지금처럼 두 명 이상이 한 상에서 함께 식사하는 건 극히 드물었다.

저자는 상차림의 변화가 주로 산업화, 도시화와 관련이 깊고, 식사 예법, 식기 보급, 근대적 위생관념의 확산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본다.

오늘날 산업화, 도시화된 한국 사회에서 과거 농경 사회에서 보편적인 '공통형+공간전개형' 상차림이라 할 '한상차림'을 선호하는 데는 또 다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런 상차림은 20세기 초반 조선요리옥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조선요리옥의 '한상차림'은 식민지와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지닌 집단의 독점적인 향유 대상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한상차림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면서 대다수의 중산층이 누릴 수 있는 상차림이 되었다."

428쪽. 2만2천원.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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