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법시험 합격하던 날, ‘가족이 굶지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부터 들어…안된다고 생각하고 되는 사례는 하나도 없다”
‘승풍파랑’(乘風破浪·먼 곳까지 부는 바람을 타고 끝없는 바다를 헤치며 배를 달린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당대표의 새해 구상은 사자성어로 집약된다. 탄핵정국과 조기대선으로 지난해 7월 취임해 6개월 동안 당 쇄신의 기치를 높이며 내부 혁신에 매진했던 홍 대표에게 2018년에는 지방선거라는 또 다른 시험대가 놓여있다. 대표직까지 걸고 보수 진영의 재건을 외치는 그를 여의도 당사 대표실에서 만났다. 그의 카키색 점퍼 차림에서 전투를 앞둔 야전사령관의 결의가 느껴졌다.


▶ ‘독고다이’ 홍준표 “위기가 곧 기회”…세상에 대한 긍정이 인생의 원동력=무학인 아버지와 문맹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홍 대표는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해 담담하게 얘기를 풀었다. 홍 대표는 “유년기ㆍ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지독한 가난 속에서 자랐다.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서울 봉천7동 지하단칸 셋방에서 인생을 시작했다. 검사시절도 상당기간 전셋집을 전전했다”고 회상했다.
가난에서 그를 건진 것은 ‘긍정의 힘’이였다. ‘못 가진 자’가 ‘가진 자’에게 가지는 증오와 분노를 경계했다. 홍 대표는 “그렇게 힘들게 살았어도 가진 자를 증오와 분노의 대상으로 삼은 일이 없다. 가진 자는 언제나 선망의 대상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가진 자를 증오와 분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며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부정적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다. 그게 자수성가해서 이 자리(제1야당의 당대표)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살아라”는 것. 홍 대표는 “된다 된다 해도 안되는 게 세상 일이다. 그런데 안 된다고 생각하고 되는 사례는 하나도 없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그의 삶은 가난이라는 절망 속에서 희망의 빛을 찾아 떠나는 여정 그 자체였다. 홍 대표 인생 첫 번째 변화였던 사법시험을 준비하게 된 것도 단순히 경제적 궁핍을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홍 대표는 “변호사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내가 먹고 살 수가 있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던 날 제일 먼저 생각한 게 이제 변호사 자격이라도 땄으니까 내 가족이 굶지 않고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회상했다.
‘모래시계 검사’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걷고 싶은 길은 처음부터 검사가 아니었다. 그는 “변호사 개업을 알아보려 울산 옥동 사무실을 알아보니까 그 당시 보증금이랑 임대료가 서울 서소문에 있는 배재빌딩이랑 맞먹었다”며 “당시 1억원에 가까운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판사는 성격상 안 맞을 것 같고 그래서 검사의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법시험인 만큼 이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홍 대표는 “고려 광종 때 과거제를 시행한 이후로 1000년을 내려온 인재 등용문이다”며 “사법시험을 폐지하는 것은 서민들에게 희망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로스쿨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행정고시, 외무고시도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육 정책에서도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대표는 “경쟁 없는 사회는 발전하지 않는다”며 “다만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입학사정관제 같은 현 입시제도에서는 서민들의 자녀들은 스펙을 쌓지 못해 수시입학에 합격하기 어렵다”며 “대선 때도 얘기했지만, 수능을 1년에 두번 정도 치르고 이 중에서 높은 성적으로 대학을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사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 또한 위기에서 희망을 찾기 위한 과정이였다. 거침 없는 언변으로 ‘홍트럼프’, ‘홍스트롱맨’이라는 자칭타칭 별명을 가진 그는 “일부 인사는 나를 마초라고 하는데, 마초가 아니고 상남자라고 불러주면 좋겠다”며 “나는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산다. 정치계 입문할 때도 광주에서 잡아넣은 깡패들이 가족을 협박했기 때문에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치판에 들어왔다”고 전했다.
보통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가난한 시골 소년에서 검사로, 또 정치인으로 굵직굵직한 길을 걸어온 홍 대표는 “검사로 임용되면서 내 인생에서 성공했다. 두번째는 정치인으로서 당대표까지 됐으니 성공했다고 본다”며 “마지막 한번 남은 기회가 있을지는 한번 지켜보겠다”며 더 큰 행보의 여운을 남겼다.
실제 홍 대표는 요즘도 역경과 희망 속에서 길을 찾고 있다. 국회의원 4선과 경남지사 2선 등 화려한 정치 경력을 쌓았지만 요즘도 아침에 눈을 뜨면 갈등의 연속이다. 홍 대표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갈등으로 시작해서 잘 때까지 갈등으로 끝나는게 정치인의 하루”라며 “갈등 속에서 선택도 해야 하고. 갈등과 싸우기도 해야 하니 하루종일 긴장을 놓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두 아들이 대학진학을 앞두고 과를 놓고 고민할 때 사학과를 가라고 했다”며 “역사학은 과거 일을 공부하면 되니까 공부할 때는 갈등이 없기 때문”이라고 웃어보였다.
비록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있는 두 아들이지만, 자식들에 대한 자랑도 숨기지 않았다. 이날 오전 당 회의부터 오후 인터뷰까지 한시도 벗지않고 있었던 항공점퍼는 미국에서 항공 기술을 공부하고 있는 둘째 아들에 대한 자부심의 징표다. 홍 대표는 “지금까지 내가 내 옷을 직접 사거나 골라본 적은 없었는데, 이건 저번에 미국에 가서 직접 고른 것”이라고 자랑했다. 비행기 파일럿의 꿈을 위해 먼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에 대한 자랑과 격려인 것이다.
▶ ‘집토끼’부터 잡고 간다…서민 정책으로 지지층 외연 확장=정치인 홍 대표와 인터뷰이기에 정치 현안이 빠질 수는 없었다. 우선 지지부진한 당 지지율, 그리고 지방선거가 화두였다.
이에 홍 대표는 청년ㆍ여성층 같은 새 지지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지지층을 견고히 하는 전략을 우선 구사하겠다고 답했다. “젊은층이 진보ㆍ좌파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비단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고 미국도 똑같다. 미국도 젊은 층은 진보진영의 민주당을 지지한다. 50대 이상은 공화당을 지지한다”며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40대 향배가 정권의 향배를 결정한다. 젊은층으로부터 지지를 못받는 대신에 장년층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으니 (젊은층의 지지가) 선거에 절대적인 변수는 아니다”고 정치 9단의 수를 숨기지 않았다.
홍 대표 자신이 지난해 대선 당시 ‘서민대통령’을 내걸었고, 최근 원내 지도부도 서민경제를 강조하고 나섰다. 기존 한국당 이미지 쇄신을 위한 변화의 노력도 빼지 않았다. 그는 “한나라당, 새누리당을 거치면서 귀족정당, 엘리트정당으로 이미지가 굳어 있다. 그러다보니 기득권 정당, 특권층 정당, 부자정당, 웰빙 정당으로 취급이 돼 왔다”면서 “올해부터 새롭게 출발하는 한국당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으로 다시 변모할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 인구의 90%다. 그 사람들을 위한 정당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수의 마음을 다시 찾는 키워드로는 ‘국익’을 꼽았다. 홍 대표는 “국익이라는게 국가의 이익도 국익이고 국민의 이익도 국익이다. 국가나 국민의 이익이 되는 것이 국익이다. 그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정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 국익에 부합하는 그런 정책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대표는 “소위 학자들이 말하는 중도라는 것은 ‘스윙보터’(Swing Voter·선거에서 어떤 후보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 계층”이라며 “현실에서는 중도라는 게 없다. 특히 보수 성향의 스윙보터들은 민심에서 우리가 (통합정당에 비해) 우위임을 확인할 때 자연적으로 우리쪽으로 오게 돼 있다”고 자신했다.
최정호ㆍ이태형ㆍ박병국 기자/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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