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간 문화, 유전자가 결정할까?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입력 2018. 1. 1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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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주의자는 보통 생물의 여러 형질이 유전자에 의해 지배된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정신 능력이 만들어가는 ‘문화’입니다. 

그런데 문화란 과연 무엇일까요? 문화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인류학에서는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믿음과 가치의 구조’라고 합니다. 생물학자는 ‘사회적 학습을 통해서 전해 내려가는 행동 양식’을 문화라고 부르죠. 그리고 진화인류학에서는 ‘인간의 유전자를 통해 내려가는 것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 정보, 즉 지식과 이념, 믿음, 가치’를 문화라고 합니다. 일단 여기서는 마지막 정의를 사용해서 다음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인간의 문화도 다른 생물학적 형질처럼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요?

GIB 제공

문화는 독립적이다
     
세상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문화가 있지만, 사람들의 유전자는 아주 비슷합니다. 게다가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는 거의 대부분 신석기 혁명 이후에 탄생한 것입니다. 유전자의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죠.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문화란 유전자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합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기웃거리는 생물학자에게 ‘너희는 문화를 다룰 자격이 없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죠.

이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종종 문화가 인간성을 규정하는 유일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날 때는 모두 백지 상태인데, 어떤 양육과 교육을 받는지에 따라서 어떤 인간도 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를 빈서판 가설이라고 합니다.

    
‘내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훌륭한 학자가 되었을텐데’
‘저 범죄자는 너무 불우한 환경 때문에 죄를 저지른거야’
‘정신장애는 모두 문화적 환경의 부산물이야’
     

이런 말들은 모두 이러한 입장을 대변합니다. 환경결정론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심지어 에밀 뒤르켐은 사회적인 현상은 오로지 사회적 현상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고 단언하기도 했죠.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을 답하기 어렵습니다. 과연 최초의 문화는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요? 환경을 바꾸면 모든 사람이 모짜르트가 될 수 있을까요? 성적 소수자의 성적 취향도 오로지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면, 교육을 통해서 그들을 ‘원래대로’ 바꿀 수 있을까요? 아니 ‘원래’의 성적 취향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유전자와 완전히 독립된 ‘문화’는 이러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합니다.

 

AngMoKio (2011)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이러한 문화는 유전자와 독립된 자율적 존재일까? 아니면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에 불과한 것일까? wikimedia (cc) 제공

문화는 생물학의 한 분야일 뿐이다

앞서 말한 주장과 정반대의 입장입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제안했는데, 이른바 ‘확장된 표현형’ 가설이라고 하죠. 리처드 도킨스가 제안한 가설입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문화적 현상은 유전자가 운반체, 즉 인간의 몸을 벗어나서 벌이는 표현형일 뿐이라는 과격한 주장입니다.

이 가설에 의하면 아주 사소한 문화적 현상들도 사실은 모두 유전자의 지시에 의해 일어납니다. 윤리와 도덕 등의 거대한 문화적 현상뿐 아니라, 개인이 선호하는 음악 장르나 음식 종류, 옷차림 등도 알고 보면 유전자가 지배한다는 것이죠.

‘저는 무죄입니다. 단지 제 몸 안에 살인을 지시한 유전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유전자가 죄가 있을 뿐, 저는 무죄이니 풀어주십시오’

미국에서 있었던 살인범 재판에, 정말 이렇게 항변한 피고가 있었습니다. 물론 터무니 없는 이야기죠.

만약 이런 주장이 옳다면, 우리는 거의 비슷한 유전자를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왜 이렇게 많은 문화가 존재할까요? 심지어 일부 문화는 완전히 상호배타적이기도 합니다. 소를 먹지 않는 인도인과 돼지를 먹지 않는 이슬람인은 정말 유전자가 다를까요? 확장된 표현형 가설은 이런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물론 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유전자에 의해 직접 지배당하는 메타 문화’, ‘환경에 따라 좌우되는 유발 문화’, ‘여러 곳으로 전파되는 차용 문화’로 나누기도 합니다. 심리학자 투비와 코스미데스가 제안한 것인데, 사실 좀 궁색한 해결책입니다. 결국 문화적 현상을 ‘생물학적’ 문화와 ‘문화적’ 문화로 차등화하는 것에 불과한데, 그러면 ‘문화적’ 문화는 자율적으로 작동한다는 식의 자기모순적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죠.   
    

밈 가설
     

이처럼 문화결정론과 생물학적 결정론이 가진 단점으로 인해 몇몇 절충적 주장이 제시되었습니다. 그 중 요즘 유행하는 가설이 바로 ‘밈’ 가설입니다.

밈 가설은 다윈의 주장을 차용한 것입니다. 다만 유전자를 ‘생각’으로 바꾸었죠. 유전자가 그 표현형의 상대적 적합도에 의해서 유전자 풀 안에서 명멸해 가듯이, ‘생각, 즉 문화적 현상’도 그 영향력의 적합도에 의해서 문화의 풀 안에서 명멸해 간다는 것이죠.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처럼 자연선택되는 ‘생각’을, ‘밈’이라고 부르자고 했습니다.

언뜻 보면 아주 기발하고 멋진 착상입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종교를 생각해 봅시다. 수천 년 간 교리가 대를 이어 전달됩니다.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늘어납니다. 서로 다른 종교끼리 경쟁하기도 합니다. 정말 신자들은 교리라는 ‘밈’을 운반하는 숙주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인간의 뇌가 커진 것도 더 많은 밈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Traduko de Arno(2007). 자전거의 진화. 자전거는 지난 이백 년 간 진화해왔다. 그런데 밈 이론, 즉 미메틱스에 의하면 자전거는 스스로 인간의 뇌라는 숙주를 이용하여 진화하고 번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일까? 자전거가 우리를 이용하는 것일까? - wikimedia (cc) 제공

하지만 몇 가지 의문이 듭니다. 밈은 그 자체로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유전자는 서로 구분되는 실체가 있는데, 밈은 섞이면 그 실체가 사라지는데 어떻게 각각의 밈이 경쟁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밈은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이중유전이론

다른 형태의 절충주의적 주장도 있는데, 이른바 이중유전이론이라고 합니다. 밈 가설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밈이라는 것은 상상의 존재일 뿐이며, 인간 문화의 자율성 자체가 바로 호미닌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것이죠. 즉 문화적 유연성 자체가 바로 생물학적 표현형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가설은 제법 설득력이 있습니다. 새로운 행동 양식을 창안하거나 혹은 이를 신속하게 모방하는 경향은, 급격한 환경 변화를 극복하는데 아주 유리한 형질입니다. 호미닌이 살아야 했던 환경이 바로 그랬습니다. 모두 나팔바지를 입는 문화에서 스키니 진을 입는 혁신꾼, 그리고 이를 신속하게 모방하는 모방꾼. 이들이 주기적으로 벌이는 협주곡이 바로 유행이고, 또 문화라는 것이죠.
    

유전자 문화 공진화 

가장 유력한 가설은 유전자 문화 공진화 이론입니다. 이는 문화와 유전자가 서로 자율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유연한 끈으로 묶여 있다는 주장입니다. 즉 문화는 독립적이지만, 유전자의 이득을 해칠 정도로 멀리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자살 문화 같은 것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문화가 자율적이라고 해도, 개체의 적합도에 너무 큰 손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진화 가설에 의하면 유전자도 문화에 의해서 강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가 정착한 후에는 후두를 높게 위치시키는 유전자가 대단히 불리해 집니다. 기도로 음식이 넘어가는 것을 예방하는 엄청난 적응상의 이득에도 불구하고, 말을 제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높은 후두 유전자는, 문화에 의해서, 이내 사라지는 것이죠. 

unknown (1908). 프란츠 보아스. 그는 인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유명한 문화인류학자다. 하지만 그는 물리학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체질인류학과 진화론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다. [출처: Popular Science Monthly Volume 72] - wikimedia (cc) 제공

    
에필로그

현대 인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란츠 보아스는 흔히 문화인류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박사 논문은 ‘해수에서 빛의 흡수, 반사 및 편광 현상’이라는 물리학 논문이었죠. 그의 대표적 저작 중에 하나인 ‘이민자 자손의 신체 형태 변화’는 체질인류학 논문입니다. 그는 다윈진화론을 신봉했지만, 자연선택으로 문화현상을 설명하는 것에는 신중했습니다. 아마도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보아스의 균형 감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인류의 신체와 정신, 질병에 대한 의학적, 인류학적 의미를 공부했다. 현재 동화약품 연구개발본부에서 심신을 치유하는 좋은 약을 개발하며,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신경인류학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parkhanson@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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