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근로자이사제' 논의 시끄러운 금융권..KB·신한·하나 노조 "회전문 인사 막겠다"

박수호 입력 2018. 1. 1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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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당장 도입은 시기 상조"..정부 강요는 민간 자율성 침해

3월 정기주총을 앞두고 금융권이 술렁인다. KB국민, 신한, NH농협, KEB하나 등 4대 금융지주회사 사외이사 대다수는 올해 3월로 임기가 끝난다. 이들 자리가 최근 더욱 주목을 끄는 이유는 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근로자이사를 과연 선임할 것이냐 여부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이미 민간 금융회사들에 ‘근로자 추천 이사제(잠깐용어 참조) 도입을 검토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사외이사 교체 규모는

▷4대 금융지주 28명 중 24명 3월 임기 만료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총 28명. 이 중 24명 임기가 오는 3월에 끝난다. 회장 교체 시기, 셀프연임 논란의 중심에 사외이사가 서 있다 보니 이들 거취가 상당수 교체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다. 그런 가운데 이 자리에 한 사람씩은 근로자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서울시와 주요 공공기관에서는 근로자이사를 선임한 사례가 적잖다. 서울시 산하기관은 70% 이상이 이사회에 근로자이사가 들어가 활동 중이다.

민간 회사 이사회에도 이들이 들어가는 게 과연 가능한지, 또 현실적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근로자이사제의 장점은 적지 않다.

이사회 내에 노동자, 즉 현장 분위기를 가장 잘 아는 인사가 들어가 이사회 의사결정에 상당 부분 기여할 수 있다. 제왕적 리더십이 강했던 회사 분위기일수록 이들의 역할이 기대된다는 분위기도 있다. 근로자이사가 현장 아이디어를 전달, 혁신의 선봉장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회 통념상 양극화와 더불어 ‘반기업 정서’가 고개를 들고 있는데 이를 누그러뜨릴 여지도 있다. 근로자이사가 참여했다는 이미지만으로도 일단 소비자나 외부인이 보기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겠다는 기대감을 줄 수 있다.

그런데 민간 영역으로 넘어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간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이 불법 혹은 편법으로 운영돼왔다는 증거는 없다. 법에 규정된 이사회 구성에 따라 신속한 의사결정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또 이사회에 노동자의 목소리를 전달할 방법은 여러 가지로 열려 있기도 하다. 우리사주가 일반화돼 있는 곳은 알아서 이사회에 안건으로 근로자이사 선임 안건을 올리면 그걸로 끝이다. 이를 정부 시책이니 강제로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민간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이 거세다. 이 때문에 정부도 쉬 민간 영역 확산에 힘을 싣지 못하고 있다.

▶왜 금융권부터 시작되나

▷‘금융=정부 라이선스 사업’ 시각이 핵심

다만 금융권은 좀 다르다.

이른바 라이선스 사업, 즉 정부가 허가권을 쥐고 있는 업종이다 보니 일종의 공공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게 정부 시각이다. ‘금융기관’이란 표현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니 정부가 추진하면 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박근혜정부 시절 호봉제 대신 성과연봉제로 대체해야 한다는 정부 시책에 한동안 금융권이 달아올랐던 전례에도 이런 배경이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금융권 사외이사 임기 만료를 앞두고 정부와 금융 노조 사이 교감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특히 금융당국 수장은 연일 ‘셀프연임’ ‘참호구축’ 등의 표현을 쓰며 주요 금융지주의 제왕적 리더십을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는 반대로 분권형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의미인데 여기에 딱 맞는 이가 바로 근로자이사라는 게 최근 주장이다.

관전 포인트는 금융당국의 주요 비판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KB금융, 하나금융의 후임 사외이사로 과연 근로자이사가 올 것이냐다. 분위기는 어느 정도 조성된 상태다. KB금융지주 사외이사 중에서는 2명이 오는 3월 주총에서 교체될 것으로 확실시된다. 최영휘 이사회 의장과 이병남 사외이사가 오는 3월 23일 임기를 끝으로 연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부적으로 밝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 외에 유석렬, 박재하, 김유니스경희, 한종수, 스튜어트 솔로몬 이사 등이 있는데 그중 4명도 3월이 임기 만료다. 이들은 연임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 사외이사추천위원회(사추위) 회의에서 사외이사 중 몇 명의 임기 만료 결정이 나면 그 한 자리를 근로자 추천 사외이사로 채우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KB금융 노조는 지난해 11월 주주제안을 통해 사외이사를 추천했던 전례도 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사외이사로 추천했고 대주주인 국민연금(지분율 9.68%)이 찬성표를 던지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이번 3월엔 반드시 관철시킨다는 입장이다.

KB금융 노조 관계자는 “이번엔 1명이 아니라 복수 사외이사 후보를 안건에 상정해 실패 확률을 줄이고자 후보군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 노조, 하나은행 노조 역시 이 대열에 동참할 예정이다. 특히 신한은행 노조는 신한 우리사주조합 지분율이 3번째로 많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신한카드 우리사주조합 지분율은 4.73%(지난해 9월 말 기준)에 달한다. 1위 국민연금(9.55%), 2위 블랙록펀드 어드바이저(5.13%)에 이어 만만찮은 보유량이다. 이를 적극 협상 카드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하나금융 노조는 지분율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경영진이 ‘셀프연임’ 비판 여론을 자초했다고 규정, 반드시 사외이사 재신임을 묻고 그 자리에 근로자 추천 이사를 넣겠다며 맹공을 이어가는 중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 들어간 사외이사 중 일부 재신임을 묻고자 금감원 조사 요청은 물론 하나금융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과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에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과 관련된 여러 의혹 등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각종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금융권 확산 과연 잘될까

▷KB·신한은 가능성 높아, 우리는 “지주사 전환 후”

분위기는 근로자이사제에 우호적으로 흘러가고 있긴 하다.

하지만 확산될지 한두 곳에 선임되고 말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싶다. 왜냐면 우리은행 등 여타 금융권에서는 근로자이사제 선임이 시급한 사안까지는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우리사주조합 지분율이 5.37%에 달할 만큼 높다. 그럼에도 노조가 지주사 전환이 완전히 마무리된 이후에 근로자 추천 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입장이다.

또 이사회 안건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해서 선임까지 이어질 것이란 보장도 없다.

현행법상 금융사 주주는 은행의 의결권 지분 0.1%만 보유해도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선임 안건이 통과되려면 의결권 주식 수의 25% 이상, 출석 주주의 절반 이상 동의가 있어야 한다.

지난해 11월 KB금융노조가 국민연금의 찬성을 등에 업었음에도 불구, 발행 주식 대비 13.7%, 출석 주식 수 대비 17.73%의 찬성을 얻는 데 그치면서 선임이 불발된 전례는 앞으로 근로자이사 선임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최근 우려의 시각이 비등한 신(新)관치 논란(지나친 정부 개입)이란 기름에 불을 붙여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창양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은 말 그대로 공공성을 지니고 있어 근로자 의견을 이사회에서 반영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게 의미가 있다. 다만 민간 영역은 자율적으로 진행해야 뒤탈이 덜할 것이다. 국내에 들어온 해외 업체에도 강요하는 분위기가 되면 이는 국제 분쟁 이슈로 확전될 수도 있다. 민간 영역 도입 문제는 철저히 민간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잠깐용어*근로자 추천 이사제 기업 이사회에 근로자 대표가 참석,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게 법적으로 보장하는 걸 말한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2호 (2018.1.17~2018.1.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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