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말라~ 그날은 온다..인생은 이승훈처럼

입력 2018. 1. 1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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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러시아월드컵(6월~7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8월) 등 2018년은 어느 해보다 풍성한 스포츠 일정으로 빼곡하다. 종교와 이념, 피부색, 국경과 상관없다고 하는 스포츠는 예측불능의 극적인 요소와 희노애락의 파노라마를 담고 있어 인생의 축소판에 비유된다. 영웅과 전설이 없는 시대, 스포츠 이면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가는 스포츠 오딧세이를 시작한다.

‘신체조건상 동양인은 장거리 스피드 스케이팅 안된다’는 편견을 깨고 이승훈은 평창동계올림픽 1만m에서 금메달 후보 1순위다. 모두 땀으로 이겨낸 결과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남보다 특출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아예 남들은 불가능하고 여긴 것에 도전해야 새로운 지평을 연다. 오랜 시간을 지배한 관념이나 사고를 바꾼다면, 그것이야말로 21세기의 혁명가다.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 간판 이승훈(30·대한항공)은 국제 올림픽 역사에서 보면 이단아다. 동계올림픽 100여년 역사는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에 동양인은 안 된다’라는 신화로 가득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1908년 영국에서 열린 4회 런던올림픽에 스케이팅 종목이 추가됐지만 여름과 가을로 나눠 열어야 하는 번거로움에 동계종목은 골칫거리가 됐다. 그래서 동계올림픽은 1924년 프랑스의 샤모니 대회를 기점으로 하계에서 분리돼 독립 대회로 거듭났다.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장거리(5000m, 1만m)는 1924년 1회 샤모니올림픽을 시작으로 2006년 토리노올림픽까지 20번의 동계올림픽에서 단 한번도 아시아계에 메달을 허락하지 않았다.

1924년 첫 대회에서 3관왕에 오른 핀란드의 ‘영웅’ 클라스 툰베리가 5000m 금메달을 차지했고, 1만m에서는 역시 핀란드의 율리우스 스쿠트납이 정상에 올랐다. 이후 핀란드, 노르웨이, 미국, 스웨덴, 캐나다, 네덜란드, 소련이 5000m를 지배했고, 일시적으로 동독, 벨기에, 서독, 이탈리아 정도가 메달권에 명함을 내민 정도였다.

이승훈은 지난 2009년 쇼트트랙 국가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한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그가 신체조건이 불리함에도 세계1인자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사진=빙상연맹)

1만m에서도 대동소이하다. 북구 바이킹의 후예나 슬라브, 게르만족 등 신체적으로 큰 유럽 선수들이 장거리 무대를 독차지했다.

그러나 요지부동 장거리 얼음판은 1m77, 70kg의 홀쭉한 아시아 청년에 의해 균열했다. 2010년 밴쿠버 리치먼드 오벌에서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1만m 무대가 진앙지였다.

국제 무대에서는 완전 초짜였던 이승훈은 당시 일인자였던 네덜란드의 스벤 크라머를 꺾고 올림픽 신기록(12분58초55)으로 우승한다.

비록 크라머가 6600m를 지난 시점에서 바깥 코스로 빠지지 않고 인코스로 도는 바람에 기록에서 앞서고도(12분54초50) 실격하는 행운이 따랐지만, 반드시 운이라고 볼 수 없다.

400m 트랙 한바퀴를 바깥 쪽이 아니라 통째로 안쪽에서 돌면서 단축한 시간과 힘 배분의 이점 등을 따지면 4초의 차이는 꽤 많이 상쇄된다.

이승훈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오른쪽 정강이가 베이는 상처를 입고도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출전을 강행해 4관왕에 올랐다. 사진은 8바늘을 꿰맨 이승훈의 오른쪽 정강이.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앞서 5000m에서도 은메달을 땄던 터라 이승훈에 쏠리는 세계의 눈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2010년 이전 1만m 경주에서 그는 14분 벽을 깨지도 못했다.

밴쿠버 올림픽 1만m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전향한 뒤 출전한 세번째 1만m 경기였다. 몇개월 새 수십초씩 기록을 당기고,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비법을 쓴 것일까?

중학까지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던 이승훈은 2009년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다. 올림픽 희망이 사라진 그에게 동기부여가 될만한 것은 없었다.

그때 모교의 은사인 전명규 교수가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할 것을 권유한다. 전 교수는 “나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꿈이 있었다. 주변에서는 동양 선수가 장거리는 할 수 없다고 했지만 쇼트트랙 코너 기술을 접목하면 스피드에서도 못할 것은 없다고 봤다. 이승훈이 증명했다”고 회고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은 보통 직선 주로에서 속력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직선 주로에서 잘못 속도를 냈다가는 체력 안배에 실패해 레이스 전체를 망칠 수 있다. 반대로 코너에서는 선수들이 원심력을 이용해 빠르고 돌면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코너 기술에서 우위가 있다면 힘들이지 않고 격차를 벌릴 수 있다. 이승훈은 직선에서 뒤쳐진 것을 코너에서 만회하는 식으로 기록을 당기고 당겼다.

1만m 국제대회를 사흘 앞두고도 오로지 111.12m의 쇼트트랙 빙판에서 코너를 도는 연습을 한 ‘이승훈 효과’는 이렇게 나왔다. 쇼트트랙의 원(반지름 8m)을 빨리도는 훈련을 하다보면 400m 트랙의 큰 원(반지름 25m)를 돌 때는 “눈 감고도 탈 수가 있다”고 한다.

반대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가 쇼트트랙의 코너를 도는 것은 매우 어렵다. 밴쿠버 올림픽 뒤 이승훈 효과에 눈뜬 스피드 스케이팅 강국은 너나할 것 없이 훈련 때 쇼트트랙 코너를 도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승훈은 대회 출전때마다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이번 평창에서 보여줄 비장의 무기는 무엇일까.(사진=빙상연맹)

물론 이승훈의 금메달은 남들은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유럽 선수가 두발 나갈 때 동양 선수는 세 발 나가는 식이다. 성실성은 이승훈의 트레이드 마크다. 장거리에서는 꾸준한 마음의 자세 없이는 최고가 될 수가 없다.

5000m 레이스 1~8위에게 출전권이 부여되는 1만m에서 자신보다 큰 ‘골리앗’을 상대로 승리한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변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여름 지상훈련 등 모진 시련을 감내한 결과다.

2014 소치올림픽 팀추월(32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이승훈은 평창올림픽에서 3개 올림픽 연속 입상에 도전한다. 이번엔 400m 트랙 16바퀴를 도는 매스스타트가 무대다.

이승훈은 이 종목 세계 1위로 금메달 후보 1순위다. 이승훈은 올림픽마다 경쟁자를 따돌리기 위해 종목을 바꿨고, 남들이 모르는 비장의 무기를 선보였다. 치열한 두뇌싸움이 펼쳐지는 매스스타트에서는 어떤 파격적인 작전이 나올까. 팬들의 시선이 이승훈의 발에 쏠렸다.


◆ 김창금 한겨레신문 스포츠팀 기자

1993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스포츠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이면의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글을 쓰려고 오늘도 노력한다. 스포츠 미디어에 대한 비평, 스포츠 정책, 스포츠 경제와 인권을 주요 글쓰기 대상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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