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나에게 물어라" 했지만..대답 없이 떠난 MB

입력 2018. 1. 18. 05:06 수정 2018. 1. 1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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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강남 사무실 앞에 기자들 100여명 집결했지만..
취재진 입장 막고 "풀단 짜달라" 7명에서 4명으로
귀가길 스케치 땐 "어차피 대답 안 하실 것" 실랑이도

[한겨레]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래서 지금 질문하지 말라는 겁니까? 이럴 거면 기자회견은 왜 하는 겁니까?” “그럼 안 오셨으면 될 거 아닙니까?”

17일 오후 6시께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빌딩 앞. 백여명 넘는 취재진이 모인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무실이 있는 이 건물 앞에서 끝내 고성이 터져나왔습니다. 건물 앞에서 이 전 대통령의 귀가길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에게 이 전 대통령 쪽 관계자가 “어차피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전 대통령이 오후 5시30분 긴급기자회견에서 “재임 중 일어난 일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에게 물어라”고 선언한 직후였습니다.

■ 취재기자 ‘4명’ 줄이고 시작된 기자회견

당초 이날 오전 10시 이 전 대통령과 참모들이 이 곳 사무실에서 대책회의를 열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방송사 등은 아침 일찍부터 건물 앞을 지켰습니다. 참모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찍기 위해섭니다. 이에 이 전 대통령 쪽은 사무실을 피해 다른 곳에서 대책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 전 대통령은 오전 10시께 공식입장을 내기로 결심하고 입장문을 마련하라고 참모들에게 주문했다고 합니다. 긴급 기자회견을 열겠다는 통보를 언론에 한 것은 3시50분께입니다. 예정 시각은 불과 40분 뒤인 4시30분이었습니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대치동으로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길이 막히지 않아 4시20분에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기자들은 속속 불어났지만, 입장할 수 있는 기자는 없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 쪽이 ‘풀단을 짜달라’고 요청한 때문입니다. 장소 등이 협소할 때 언론사에서는 현장 사고 등을 방지하기 위해 전체 공유를 전제로 ‘풀기자단’을 꾸리기도 합니다. 현장 기자들은 아침 일찍부터 기다렸던 취재진을 중심으로 통신사와 방송사를 고루 섞어 7명을 뽑았습니다.

그러나 4시30분 예정 회견은 계속해서 미뤄졌습니다. “풀단 인원이 지나치게 많다. 사무실이 좁아 사진기자까지 합하면 다 들어갈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전 대통령 쪽이 인원 수를 줄여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입장을 기로 한 가운데, 발표를 앞두고 참모진들이 대기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치열한 ‘풀단’ 경쟁 뚫었지만…질문은 허탕

취재기자들은 다시 통신사 두 곳과, 방송사 1곳, 그리고 신문사 1곳을 추려 4명으로 인원을 압축했습니다. 이 때 다소 늦게 현장에 도착한 한 기자는 “이 자리를 10년을 기다려 왔다”고 읍소하는 등, 풀단에 합류하려는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풀단에서 탈락한 기자들은 “이 질문은 꼭 물어봐달라”며 앞다퉈 질문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풀단들은 머리를 맞대고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어떤 질문을 할 지 추렸습니다.

5시30분이 되어서야 열린 기자회견에 입장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취재기자는 국내 4명, 외신 1명으로 5명이었습니다. 생중계 등을 위해 방송카메라 7대가 들어갔고, 사진기자가 4명이었습니다. 당시 풀단 중 한 기자는 “자리가 좁다더니, 생각보다 공간이 넓었다. 취재 기자 10명도 족히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전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이 건물 한 층을 모두 사무실로 쓰고 있습니다. 이전에 신년인사 취재 등을 위해 사무실에 들어가 본 사진 기자의 말에 따르면, 기자회견에 쓰인 장소는 가장 넓직한 사무실이라고 합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이 전 대통령은 참모들이 한켠에 도열한 가운데, 엄숙한 표정으로 나타나 카메라 앞에서 ‘입장문’을 읽었습니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라. 이것이 나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 전 대통령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질문을 받지 않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참모들은 “궁금한 점은 아마 내일 이후에 저희들이 소상하게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질의응답을 꺼렸습니다. “내일 이후라는 것은 아직 계획이 없다는 이야기냐”는 질문에는 “현재로선 (그렇다)”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현장에는 맹형규 전 행정자치부 장관, 정동기 전 민정수석, 김두우 전 홍보수석, 최금락 전 홍보수석, 장다사로 전 총무기획관, 이동관 전 홍보수석, 김효재 전 정무수석, 김상엽 전 녹색성장위 기획관이 배석했습니다. 짧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한 참모는 “(이 전 대통령이) 마지막에 울컥하셔가지고 목이 메이고 했다”고 평했습니다.

■ “어차피 대답하지 않으실 것” 기자들과 실랑이도

건물 입구 밖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이 모두 이동전화로 생방송을 시청하는 ‘진풍경’ 뒤, 기자들은 이제 이 전 대통령이 나오기만 기다렸습니다. 귀가길을 화면에 담는 동시에, 짧게라도 질문을 건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은 ㄷ자로 포토라인을 자체적으로 꾸리고 3명의 취재기자만을 대표로 문 앞에 남겨둔 채 물러서서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30분, 40분이 흘러도 이 전 대통령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6시께 잠깐 내려온 관계자는 방송용 마이크를 대고 문 앞에서 기다리는 3명의 취재진을 향해 거부감을 나타냈습니다. ‘어차피 (이 전 대통령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실 텐데, 질문을 피하고 사라지는 모습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기자들이 “바짝 붙지 않겠다”, “불편하다면 2명으로 인원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또다른 관계자는 차라리 취재기자들이 모두 문 앞으로 도열하되, 질문은 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현장이 자칫 인파에 떠밀려 위험해지고, 이 전 대통령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습니다. 물론 이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담기도 어렵습니다. 기자들이 이런 상황을 설명하자 “어차피 질문에 답하지 않을 건데…”하는 대답만 반복해 돌아왔습니다. 이에 화가 난 한 기자가 “그럴 거면 기자들은 왜 불렀느냐”고 항의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건물을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차에 탑승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기자들은 관계자와의 ‘협의’를 포기하고, 대신 기자 2명만 마이크를 잡고 다른 기자들은 뒤에서 최대한 바짝 붙지 않는 것으로 자체적인 룰을 세웠습니다. 6시50분께, 드디어 이 전 대통령이 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기자 1명이 준비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성명서에서) ‘나에게 물으라’고 했는데,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는 뜻입니까?” 빠르게 차를 향해 걸어가던 이 전 대통령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쳐다봤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습니다. “특활비 보고를 받았습니까?” 이 전 대통령은 역시 침묵한 채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아침 일찍은 제쳐두고, 기자회견을 공지했던 4시30분부터라고 쳐도 3시간 가까이 바깥에서 이 전 대통령을 기다렸던 기자들의 입에선 절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할 말만 하고 사라질 거면 기자회견이 아니라 페이스북 중계를 하지 그랬나.”

■ 검찰수사 응할까

“나에게 물으라”던 이 전 대통령의 말은 정말로 당당하게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는 뜻이었을까요? 그러나 “꼭 그렇게만은 볼 수 없다”는 것이 참모진의 전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보복”을 운운한 것은 현 정권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아마도 내일” 공식 입장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겼으니, 기자들은 18일에도 강남구 대치동 빌딩 앞을 지키게 될 듯 합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건물을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차에 탑승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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