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동성애 둘러싸고 '격전지' 된 교육방송 EBS

노진호 입력 2018.01.22. 11:58 수정 2018.01.2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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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까칠남녀'의 은하선 작가. 최근 EBS로부터 프로그램 하차 통보를 받았다. [사진 EBS]
동성애를 주제로 토크쇼를 진행한 EBS '까칠남녀'를 두고 찬반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교육방송 EBS가 동성애를 둘러싼 '격전지'가 된 모양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언론개혁시민연대·페미니스트 교사모임 등 42개 시민단체는 22일 오전 11시 경기 일산 EBS 사옥 앞에서 "'까칠남녀' 은하선 작가의 하차에 반대한다"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앞서 EBS는 '까칠남녀' 패널로 출연 중이던 은하선 작가의 하차를 결정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한 전교조 여성위원회 관계자는 "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는 것은 공영방송도, 교육 방송도 아니다"며 "EBS는 은하선 작가의 하차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EBS에서 동성애를 둘러싼 항의가 시작된 건 지난달 28일부터다. 반 동성애 단체들이 EBS 토크쇼 '까칠남녀'에 항의면서다. 지난달 25일과 올해 1월 1일 두 차례 EBS '까칠남녀'는 성 소수자에 대한 주제를 다루며 실제 성 소수자들을 출연시켜 토크쇼를 진행했다. 평소 출연진이던 은하선 작가는 이날 바이섹슈얼(양성애자)로 출연해 성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했다.

방송 이후 보수 학부모 단체와 반 동성애 기독단체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전학연)은 지난달 28일부터 EBS 표지석에 계란과 밀가루를 투척하고, 로비까지 점거하는 등 항의 시위를 이어갔다. 이들은 "동성애를 옹호하는 '까칠남녀'를 당장 폐지하고 책임자를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항의 시위는 22일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2일 경기 일산 EBS 사옥 앞에서 진행된 '까칠남녀' 은하선 작가 하차 반대 시위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이러한 상황에서 EBS가 최근 '까칠남녀'를 폐지할 계획을 밝히고, 은하선 작가에게 하차를 통보하면서 논란은 더 가열됐다. EBS 측은 '까칠남녀'의 폐지는 개편 계획에 따라 오래 전부터 결정된 사안이며, 은하선 작가의 하차는 성 소수자 탄압이 아니라 스스로 품위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은하선 작가가 지난달 25일 성 소수자 특집 방송으로 인해 SNS 등을 통해 항의를 받던 중 개인 트위터에 "까칠남녀 피디님 연락처"라며 퀴어문화축제 후원 번호를 올린 것을 문제 삼았다. 은하선 작가의 하차 결정은 '까칠남녀'를 책임지고 있는 류재호 CP의 단독 결정이라는 게 EBS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결정이 반 동성애 항의 시위와 시기가 겹치면서 "성 소수자 탄압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렀고, 급기야 마지막 2회분 녹화를 앞두고 일부 출연진이 "방송 출연자로서 부적절하다는 하차 사유는 성 소수자 입을 막아 존재를 지우겠다는 반 동성애 집단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며 보이콧을 선언, 녹화가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22일 경기도 일산 EBS 사옥에서는 "동성애를 인정하고 성 소수자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 시민단체들의 항의 시위까지 벌어지면서 동성애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커지고 있다. EBS 정문에서는 반 동성애 단체가, EBS 측면에서는 진보 시민 단체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EBS '까칠남녀' [사진 EBS]
지난해 3월 방송을 시작한 EBS '까칠남녀'는 자위, 페미니즘, 직장 내 성희롱, 낙태, 노브라, 냉동 난자, 꽃뱀 프레임 등 민감하거나 성별에 따라 시각이 엇갈리는 성 관련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왔다. 이 때문에 "중요하지만 외면돼 왔던 주제들을 공영방송이라는 공론장으로 불러왔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일각에선 "교육방송에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었으며, 이 때문에 매번 방송이 끝나면 시청자 게시판은 "당장 폐지하라"는 비난으로 채워졌다. EBS '까칠남녀'의 한 관계자는 "아직 출연진 보이콧으로 인해 마지막 방송 2회분을 녹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안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부심을 가지고 방송을 이어왔는데, 종료를 앞두고 끝이 좋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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