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기업, 한국기술 강탈 심각..'더블 연봉'제안에 파일 1만5천개 빼내

안두원,강봉진 입력 2018. 1. 25. 17:57 수정 2018. 1. 25.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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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예산으로 세계최초 개발한 자동차 엔진 기술 빼돌린 뒤 특허 등록해 해외진출 차질
겉으론 인재 스카우트 한다지만 실제론 기술 훔쳐가기 많아
국내 기술 탈취만 신경쓰다 해외 기술유출은 '사각지대'

◆ 기술유출 비상 / 해외 기술유출 6년간 166건 적발 ◆

국내 기업이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기술에 눈독을 들이는 곳은 중국 업체들이다. 무차별적으로 선진 기술을 확보하는 가운데 인재 스카우트를 가장해 기술 탈취를 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 피해는 개별 업체에 그치지 않고 국가 경쟁력도 갉아먹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고액 급여를 제시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기술 빼내기에 나서고 있어 정부의 기술 보호 대책이 강화되지 않으면 이들 기술이 중국 업체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상적인 인력 채용 범위를 넘어서 채용 중간 과정에서 기술 유출을 압박해 사실상 강탈과 다름없다는 지적도 있다.

매일경제가 입수한 산업기술 유출 사례에 따르면 친환경 에너지 전문 기업 B사는 2015년 온실가스 배출권 협약이 시행된 이후 친환경 발전장비로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중견기업이었다. B사는 재미동포로 미국 시민권자인 C씨를 연봉 3억원에 주택과 차량까지 제공하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채용해 회사 연구소를 이끌도록 했다. 그런데 2017년 중국 업체가 C씨에게 '더블 연봉(연봉 액수와 계약 기간, 주택과 차량 지원액 모두 2배)'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고 C씨는 전직을 결심한 뒤 B사가 보유한 친환경 기술 관련 파일 1만5000여 개를 넘겼다. 단순히 파격적 연봉 제안에 그치지 않고 비밀리에 기술 유출을 요구했다는 심증이 가는 대목이다.

C씨는 연구소장 직위를 이용해 회사의 보안시스템을 해제하고 자료를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등 대담하고 치밀한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C씨가 가족을 데리고 외국으로 도피하자 정부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C씨가 국내 대형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입국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검거하는 데 성공했고 C씨는 재판에서 혐의가 대부분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중국 업체들은 우리 업체의 선진 기술을 곶감 빼먹듯 가져가고 있다. 한국이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세정 기술도 지난해 7월 중국으로 유출됐고 2016년 1월에도 OLED 소재 기술이 중국에 유출됐다.

업계에서는 중국의 인재 빼내기 수법에 대한 경계감이 나오고 있다.

일부 추격 기업은 연구개발(R&D) 과정에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고급 인력을 스카우트하는데, 대상자에게 거짓 약속을 하는 일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직을 하기 위해 회사 관계자를 만나면 말을 바꿔 기술 관련 도면을 가져오라는 조건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를 못 지키면 약속했던 급여를 50%로 삭감하는 식으로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유출로 중견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았던 사례도 있다.

정부의 R&D 자금 20억원이 투입돼 세계 최초로 자동차 엔진 관련 첨단 기술을 개발한 D사. 2017년 초 이 회사 연구원 E씨는 회사에 불만을 품고 기술을 빼돌린 뒤 퇴직했다. E씨는 이후 기술 유출 혐의로 사법처리됐으나 회사의 피해는 나중에 드러났다. D사가 첨단 기술을 이용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시장 진출을 추진하던 중 자사 제품이 현지에서 특허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황당한 답변을 받은 것이다. E씨가 유출한 기술을 유럽 업체와 결탁해 미리 특허 등록을 해놓은 상태였다.

D사는 자사 기술이 무단으로 특허 등록된 것 때문에 수출길이 막혔고, 특허 무효화에 대해 정부의 지원 방법도 딱히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D사는 현지에서 특허 취소 소송을 제기하려고 했지만 중소기업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소송 비용과 기간 때문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해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대기업은 산업보안을 스스로 잘하지만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은 보안이 회사 생존에 직결된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며 "특허 등록 시 유사 등록이 있는데, 퇴사한 직원들이 이미 특허를 낸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2010년엔 세계 최고 기술 수준을 자랑하는 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기술 설계도를 제3국에 유출하려 한 산업스파이 일당이 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됐다. 조선 관련 기술 유출도 많아 2016년 3월과 7월에 각각 고부가가치 선박 설계 도면과 LNG선 건조 기술 자료가 중국에 넘어갔다. 2015년 4월에는 역시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초저온 보랭재 기술이 독일로 유출됐다. 대부분의 국가 핵심 기술 유출 사건이 OLED와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 기술, LNG선·특수선박 건조 기술 등 한국이 세계 1위이거나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기술이다.

[안두원 기자 / 강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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