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칼럼] 2월의 졸업생들에게

김영민 2018. 2. 11. 13: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학창시절의 평가기준 다양

정치적 덕성을 습득했느냐가 중요

용기와 도전으로 이야기 채워가길

졸업을 축하합니다. 학창시절이라는 골치 아프고 불안한 세월-미래에 대해 초조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불안한 세월-을 견디어낸 것을 축하합니다. 학창시절이라는 이름의 위태위태한 밥상을 확 엎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것을 축하합니다. 학부형과 선생님들이 그런 불안하고 골치 아픈 여러분들을 참고 견디어낸 것 또한 축하합니다. 학부형 여러분, 그리고 동료 선생님 여러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저 불안한 영혼들을 견딜 필요가 없습니다! 저들도 이제 사회인이 되어 우리와 함께 나란히 노화( 化)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노화가 시작된 이상 시간은 더 이상 저들의 편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 비루한 기성세대의 세계에 입성하는 저들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맞아줍시다.

그러나 이 졸업의 순간, 지금까지 젊음의 시간을 누려온 졸업생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뭔가 귀중한 것들을 과감하게 소비한 이에 대해서는 부러운 마음이 들게 마련입니다. 실로 여러분들은 학창시절 동안 귀중한 것들을 가차 없이 소비했습니다. 비싼 학자금이랄지, 젊음이라는 이름의 소중한 시간이랄지, 흡연과 과음으로 거덜나기 이전의 깨끗한 장기(臟器)랄지. 그처럼 귀중한 것을 소비해서 뭔가 이루어나가는 것도 멋있어 보이고, 심지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그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버리는 경우에도, 부러웠습니다. 젊음같이 귀중한 것을 낭비해버리는 것은 그 나름 쾌감이 따르는 일입니다.

어쨌거나 학창생활이라는 것이 그렇게 귀중한 자원을 소비하는 일이라면, 그에 대한 평가의 시간을 갖는 것이 당연합니다. 각자 자기 식대로 고유하게 학창시절을 보냈을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평가는 여러분 개개인의 몫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만 평가 기준에 대한 것입니다. 과연 어떤 기준으로 지나온 학창생활을 평가할 것인가? 학교졸업 후 얼마나 높은 연봉의 안정된 직장을 가지게 되었는가가 유일한 기준은 아닙니다.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현실사회에서 타인과 사는 일의 고통과 영광을 얼마나 잘 겪을 마음의 준비, 즉 정치적 덕성(political virtue)을 습득했느냐는 것입니다. 즉 얼마나 성숙한 정치 주체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 졸업생들이 염두에 둘만한 평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온 학창생활에 대한 각자의 평가가 어떠한 것이든,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여러분들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있고, 진정한 평가의 시간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찾아옵니다. 그러면 미래에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의 삶을 평가할 때 적용되어야 할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 때 평가 기준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사회적 명예를 누렸느냐, 누가 오래 살았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좋은 이야기일까요? 좋은 이야기의 조건은 너무도 큰 주제라서 오늘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좋은 등장인물이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부자가 많이 등장한다고 해서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으로만 점철된 이야기라고 꼭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실패담도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이야기를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일련의 일들에 대한 망각도 필요합니다. 인생에서 일어난 일을 요령 있게 망각하고 기억할 때 좋은 이야기가 남겠지요. 아무 일도 기억나지 않는 삶은 물론 지루한 이야기겠지요. 그래서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졸업은 끝이 아니라 앞으로 남아 있는 그 큰 도전의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이제 막 그 큰 이야기의 첫 장을 탈고한 여러분의 졸업을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