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유산?..'농지연금' 놓고 부모·자녀 간 갈등 잦다
[경향신문] ㆍ가입자 3명 중 1명꼴 중도 해약…해지 사유 ‘자녀의 반대’가 1위
“농지 맡기고 연금 받아서 노후에는 편하게 좀 살고 싶구나.”(부모)
“무슨 말씀이세요. 유산은 남겨주셔야지요.”(자녀)
65세 이상 농업인이 농지를 담보로 노후생활 안정자금을 매월 연금 형식으로 받는 농지연금 제도가 농업인들 사이에서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농지연금 가입자가 증가하는 만큼 연금 가입을 두고 부모와 자녀가 갈등을 빚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농지연금에 가입한 3명 중 1명은 자녀 때문에 결국 계약을 해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의 65세 이상 농업인 49만명 중 8631명(약 1.8%)이 농지연금에 가입했다. 농지연금 가입 비중은 아직 낮지만 증가폭은 매우 가파르다. 지난해에만 1848명이 새로 가입하는 등 가입자 수가 연평균 12%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전체 가입자 가운데 32.3%인 2788명은 연금을 중도에 해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입자 3명 중 1명이 연금을 깬다는 얘기다. 당국이 농지연금을 중도 해지한 2788명에게 물은 결과, 해지 사유 중 가장 많은 것은 ‘자녀의 반대’(26.2%)였다.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자녀들이 뒤늦게 부모가 연금에 가입한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설득한 것으로 농식품부는 분석했다. 또 16.0%는 농업인이 자녀에게 상속하기 위해 스스로 연금을 해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농업인들이 ‘자녀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노후’를 포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농지연금 가입자들이 받는 월평균 연금은 98만2000원이다. 매월 200만~300만원의 연금을 받는 사람은 978명, 월 300만원의 농지연금을 받고 있는 ‘고액연금’ 농민도 전국에 178명에 이른다. 농지연금에 가입해 연금을 받고 있는 연금수령자(5843명) 5명 중 1명이 월 200만원 이상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이 담보로 맡긴 농지의 평균 면적은 0.42㏊, 평균 가격은 1억8400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농지연금이 최근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담보로 맡긴 농지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임대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정된 노후’와 ‘농사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의미다. 연금 가입자인 최모씨(79·경기 평택)는 “시가 1억6000만원대 땅을 담보로 종신형 농지연금에 가입해 매월 82만원을 받고 있다”면서 “연금 가입 농지는 다른 사람에게 임대해 매월 28만원의 추가 소득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지연금은 ‘자녀의 벽’을 아직 넘지 못하고 있다.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은근히 유산을 바라는 자녀의 기대가 한 번에 바뀌긴 힘들다. 전문가들은 농촌지역 고령자의 노인복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농지연금제도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연금’과 ‘상속’에 대한 젊은층의 인식개선이 우선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주택도시금융연구원 마승렬 박사는 “ ‘내 노후는 내 자산으로 책임지겠다’는 부모의 선택이 가장 현명한 것임을 자녀들이 이해하고 지지해줘야만 농지연금제도가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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