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엔 총이 없다" 부러워한 미국 언론

입력 2018. 2. 20. 16:26 수정 2018. 2. 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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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삼엄했던 소치·총기 산재한 미국과 견줘 평화로운 분위기 전해
"마치 보안 요원이 없는 것만 같아서 매우 낯설다"

[한겨레]

평일에도 붐비고 있는 강원도 강릉올림픽파크 현장(사진 왼쪽). 공군 8전비 헌병대대 군견 요원이 강릉 세인트존스 호텔에서 폭발물 탐지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오른쪽).

우리에겐 익숙한 평온이지만 누군가에겐 놀라운 광경일 수 있다. 겨울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강원도 평창은 남북 군사 분계선이 있는 비무장지대(DMZ)로부터 불과 80㎞가량 떨어져 있지만, 올림픽 현장에서 총기를 든 경호 인력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있다. 이런 장면이 총기가 산재해 있는 나라에서 온 이들에게 신기한 광경으로 보였다.

미국의 종합일간지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는 19일(현지시간) “한국에서는 총기규제법 때문에 대량 살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평창올림픽의 ‘그림자 보안’이 만들어 낸 낯선 광경을 소개했다. 해당 기사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현지 파견 기자는 “지난 올림픽들과는 달리 중무장한 병력을 볼 수 없다”고 현장의 풍경을 전했다. 직전 겨울올림픽인 러시아 소치의 분위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평창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BBC)의 2014년 2월 보도를 보면, 소치에는 올림픽이 열릴 당시 살얼음 같은 긴장감이 팽팽했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올림픽 전부터 소치로 통하는 단 하나의 길목만을 개방하고 러시아 연방보안국 요원들을 배치해 등록된 차량만 출입할 수 있도록 통제했다. <영국공영방송>은 “언덕 위에 있는 옛길에 배치된 병력이 올림픽을 위해 건설한 철길과 새 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러시아는 당시 다게스탄 내 이슬람 세력 등의 테러 위협으로부터 선수단과 방문객을 보호하기 위해 소치를 중심으로 가로 70㎞, 세로 100㎞ 특별경계구역을 설정하고 이를 ‘강철 고리(ring of steel)’라고 불렀다. 여러 나라의 대표팀이 야간 외출을 금지하거나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는 단복 착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소치의 거리와 경기장을 무장 병력들이 둘러싸고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2014년 2월 소치 올림픽이 열렸을 당시 스키 경기가 열리는 리조트 주변을 경계하는 무장 병력. 사진 AP.

소치가 ‘강철 고리’였다면 평창은 ‘그림자 보안’을 강조한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거주하는 다나 피핸(41)은 평창올림픽 현장에서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이런 행사라면 중무장한 병력이 있을 줄 알았다”라며 “마치 보안 요원이 없는 것만 같아서 매우 낯설다”고 밝혔다.

외신기자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야후 스포츠 캐나다의 매니징 에디터인 댄 톤먼은 <한겨레>에 “더 많은 무장 병력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풍부한 비무장 보안 요원과 자원봉사 인력이 이를 보완해주고 있다”며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무장 병력에 둘러싸여 있을 때보다 겁이 나거나 긴장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뉴스1>은 17일 한 외신 기자가 일간 브리핑에서 성백유 평창 겨울올림픽 조직위원회 대변인에게 “군인이나 경찰을 많이 배치하지 않고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평창올림픽에서 이런 수준의 보안이 가능한 것은 “한국의 낮은 폭력 범죄율과 강력한 총기규제 덕”이라고 밝혔다. 이 매체는 “2016년에 51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한국 전체에서 356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 반면 인구 270만 명인 시카고 시에선 762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또한 “한국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적은 총기를 소유하고 있는 나라”라며 “미국에 3억 정의 총기가 있는 데 반해 한국에는 51만 정의 총기가 등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한국의 총기 소지율은 100명당 1정꼴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미국은 100명당 100정이 넘는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에서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학내 총격 사건이 언급되기도 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미국은 또 다른 학내 총기사건으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평창을 방문한 수천명의 미국인들은 강한 총기규제와 극단적으로 낮은 폭력 범죄율을 가진 나라를 직접 목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4일 니콜라스 크루스(19)는 반자동소총 ‘에이아르(AR)-15’를 들고 자신이 퇴학당한 플로리다 주의 한 고등학교를 찾아서 화재경보기를 울려 학생들이 뛰어나오도록 한 뒤 1시간 넘게 총격을 가한 바 있다.

이미나(20)씨는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이 사건을 언급하며 “한국 학생들에겐 총이 없다. 남을 괴롭히거나 폭력적인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누군가를 쏠 순 없다”고 증언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고향 친구들이 나에게 북한이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말하면, 여기가 미국보다 안전하다고 지적한다”는 한 주한 미군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외곽 경계임무를 맡은 공군 헌병 특수임무반의 모습. 대한민국 공군 페이스북.

다만 평창올림픽 조직위는 이같은 외신 보도 등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조직위 쪽은 “안전한 나라라고 해서 경계를 게을리하고 있는 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평창 조직위 안전관실 관계자는 “감시 카메라와 무인 정찰기 등 첨단 감시 장비를 사용해 위화감을 주지 않고 사각지대 없이 감시하는 게 주요 콘셉트”라며 “예전처럼 인력으로만 운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평창에서는 지능형 CCTV(810대), 드론. 무인비행기, 전술비행선, 차량형 X-ray 검색기(3대), 차량 하부검색장비, 얼굴인식시스템 등이 활용되고 있으며 보안관제센터는 24시간 운영 중이다.

조직위는 “1일 최대 경찰 1만3000명, 군 5000명, 소방 700명, 민간 2400여명이 투입된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외곽 경계를 위해 산에 매복한 인력들을 뺀 숫자다. 보안상의 이유로 정확히 밝힐 순 없지만 훨씬 많은 인력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총을 들고 2중 3중의 경계근무와 매복 순찰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외신기자가 올림픽 선수촌 안에 있으면 다양한 종류의 안전 요원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던데 사실인가”라는 <한겨레>의 질문에 조직위는 “소프트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사복을 입고 관광객으로 가장하는 등 드러나지 않게 근무를 하고 있다”며 “우리 뿐 아니라 주요 국가에서 파견한 각국의 요원들이 드러나지 않게 근무하고 있으니, 거의 대인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세회 기자 sehoi.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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