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호통 판사 천종호 "배려없는 인사로 공황상태"

현일훈 2018. 2. 2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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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인사로 8년만에 비 '소년재판부' 발령
천 판사 "인사후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위기 이겨낼 지혜달라" 호소..휴가 상태
대법원 "인사원칙 따라 발령냈을 뿐"
일부선 전문 법관제 도입 주장도

인사발령을 접하고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비행 청소년의 대부’, ‘호통 판사’로 잘 알려진 천종호(53) 부장판사의 글이다. 대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천 부장판사는 지난 21일 지역 판사 등이 속한 비공개 SNS(네이버 밴드)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예기치 않는 길을 나서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소년재판 전문가에 대한 배려라고는 없는 인사로 사랑하는 아이들을 떠나게 됐다”고 썼다. ‘김명수 사법부’ 첫 정기 인사(26일자)가 지난주 발표됐다. 천 부장판사는 부산가정법원에서 부산지방법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를 두고 천 부장판사가 '배려라고는 없는 인사'라는 표현을 쓰며 비판한 것이다.
천종호 판사 [사진 SBS '학교의 눈물']
그는 “인사발령을 접하고 나니 온몸의 기운이 빠진다. 가슴은 아파오고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이 밀려와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고 심경을 밝혔다. 또 “지난 일주일간은 낮에는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밤에는 잠 한숨 못 잔 채 뜬눈으로 지새웠다”고 토로했다. 법복을 벗을 때까지 소년 재판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돼 용서를 바란다고도 했다.

그는 경남 지역에서 소년사건을 8년간 전담해 ‘소년범의 아버지’ 등으로 불렸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법관 퇴직 시까지 소년보호재판만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천 부장판사는 “약속을 이제 지킬 수가 없게 되어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며 “부디 제가 의도적으로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라는 점만 알아주시면 감사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인사발령으로 인해 소년 재판 업무를 볼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또 자신이 소년보호 재판을 떠나더라도 여전히 아이들의 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선생님 이거 데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편은 없다니까요? 왜 그런 거래요? 헬조선 진짜!!” 등 인사발령 소식을 들은 아이들의 반응이라며 글을 올렸다.

천 부장판사는 “지난 8년간 소년재판만 해 온 탓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진퇴양난의 늪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몇 날 며칠을 괴로움 속에서 보냈다”며 “위기를 잘 이겨낼 지혜와 인내와 용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천 부장판사는 현재 휴가 중이다.

■ 천종호 부장판사는

「 부산대를 나온 천종호 부장판사는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 합격한 후 판사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창원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했고, 2013년 2월 부산가정법원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소년재판을 맡을 정도로 비행청소년 지도에 애정을 가져왔다. 그는 2013년 1월 학교 폭력을 조명해 화제를 모은 방송 다큐에서 가해 학생과 그 부모에게 호통을 치던 주인공으로 유명해졌다. 또 2013년 소년재판 이야기를 담은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를 출간하고 인세를 비행 청소년 선도를 위해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

이에 대해 대법원은 ‘순환근무’ 원칙에 따라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어느 판사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지역, 다른 재판부에서 근무를 하는 게 인사의 대원칙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천 부장판사가 아이들에 대한 애정, 소년보호재판에 대한 전문성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인사의 형평성을 지키기 위해 이 같은 인사를 단행했음을 이해해달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선 이번 기회에 ‘전문법관 제도’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사법부는 ‘가사’ 분야를 제외하곤 전문법관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 않다.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 분야에서도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전문법관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며 “특정 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전문가적 식견을 가지고 있으면 바른 재판을 위해서라도 전문 법관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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