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위안부 학살 증거 영상 최초 공개

이대희 기자 2018. 2. 2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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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서울대 인권센터, 27일 콘퍼런스서 영상과 문서 공개

[이대희 기자]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조선인 위안부 학살 사실을 입증하는 동영상이 최초로 공개됐다.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는 3.1절 99주년을 기념해 27일 개최한 '한·중·일 일본군 위안부 국제컨퍼런스'에서 해당 사실을 입증하는 19초 분량의 흑백영상을 공개했다. 

아울러 당시 미·중 연합군이 일본군의 조선인 위안부 학살을 분명히 인지했음을 확인 가능한 연합군 보고문서도 함께 공개했다. 이번 콘퍼런스에서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가 공개한 자료는 영상자료 1점과 사진자료 2점, 연합군 작전일지와 기타 문서 14점이다. 

해당 영상은 1944년 9월 15일, 중국 윈난성 텅충(騰沖)에서 일본군 점령지를 함락한 직후 중국-버마-인도 전구 미·중 연합군(Y군) 164통신대 사진중대 B파견대의 볼드윈(Baldwin) 병사가 촬영했다. 연구팀이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은 다음과 같다. 



당시 미·중 연합군은 1944년 6월부터 윈난성 쑹산(松山)과 텅충의 일본군 점령지를 공격했다. 이 해 9월 7일 쑹산을 함락했고, 14일에는 텅충을 함락했다. 쑹산과 텅충에는 각각 2000여 명의 일본군 수비대(쑹산 56사단 113연대 주력, 텅충 148연대 주력)가 있었다. 

당시 일본군은 패색이 짙었으나, 일본군 작전참모였던 츠지 마나소부(辻政信) 대좌는 "지원 병력이 도착하는 10월까지 계속 저항하라"는 사실상의 옥쇄 지시를 내렸다. 일본군이 옥쇄를 거부하는 조선인 위안부를 집단 살해했으리라 추정 가능한 대목이다. 

영상은 일본군이 조선인 위안부를 집단 살해한 후 버려두고 간 정황을 포착했다. 시신 주변에는 이들을 매장하러 온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군 병사 두세 명이 서성대고 있다. 

이 당시 쑹산에는 24명, 텅충에는 최소 30명 이상의 조선인 위안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함락 당시 연합군에 포로로 잡힌 19명(쑹산 6명, 텅충 13명)을 제외한 위안부 대부분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태 일본군이 위안부를 학살했다는 증언은 여러차례 공개됐으나, 학살 사실을 기록한 영상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2016년 서울시가 공개한 위안부 학살 현장 사진. ⓒ서울시 제공

▲ 2016년 연구팀이 공개한 위안부 학살 현장 사진. ⓒ서울시 제공

이번 영상은 앞서 2016년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가 공개한 조선인 위안부 학살현장 사진 원본과 같은 곳에서 촬영된 것으로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영상과 2016년 사진 원본이 각도만 다를 뿐, 동일한 장소에서 촬영됐음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로 "영상과 사진 속 시체의 옷차림, 매장하러 온 것으로 보이는 중국군 병사가 사진과 영상에 모두 등장하는 점" 등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전쟁 당시 연합군 사진부대가 사진과 영상 담당 병사 2인을 1개 조로 묶어 활동케 했다는 점에 주목해 사진과 같은 현장을 기록한 영상이 존재하리라 가정하고 해당 자료를 추적했다. 결국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된 자료를 뒤져 해당 자료를 찾았다. 

연구팀은 이 영상을 위안부 학살 사진 발굴 1년 만인 지난해 찾았으나, 공개에는 시간이 걸렸다. 주제가 민감한 만큼, 분석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연구에 추가 시간이 걸렸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해당 사건은 연합군도 인지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문서도 나왔다. 

미·중 연합군 제54군이 14일 18시 55분에 보고한 정보 문서(G-3 Daily Diary Sept. 15, 1944)는 텅충 함락 직전인 "9월 13일 밤 일본군은 성 안의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Night of the 13th the Japs shot 30 Korean girls in the city)"고 기록했다. 

연구팀 소속의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학살 사실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전쟁 말기 조선인 위안부가 처한 상황과 실태를 알리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러한 불행한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해야 다시는 고통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며 "앞으로도 서울시가 역사를 기억하고 바로 세우는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 일본군의 위안부 학살 사실을 밝힌 연합군 문서. ⓒ서울시 제공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는 지난 2016년부터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체계적 기록물 발굴·관리에 나서고 있다. 이 해 10월 25일 여성가족부가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 유산 등재 사업' 예산을 집행하지 않자, 서울시가 대신 나섰다. (☞관련기사 : 박원순 "나라 꼴이 참…위안부 사업, 서울시가 한다"

지난해 7월에는 조선인 위안부의 존재를 증명하는 영상을 최초로 공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관련기사 : 한국인 '위안부' 증명 영상 최초 공개…73년 만에 발견

여성가족부는 정권이 교체된 후인 지난해 7월, 서울 시내에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 건립에 나서기로 해 입장을 바꿨다. (☞관련기사 : 정현백 "서울 시내에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 건립한다"

한편 이번 콘퍼런스에는 한중일 위안부 전문가들이 발표자로 나서, 각국이 소장한 위안부 자료 현황을 공유하고 향후 과제를 논의했다. 

한국에서는 연구팀 강성현 교수와 함께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찬연구관이 발표자로 나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연합군번역통역부(ATIS)가 생산한 모든 자료를 소개했다. 일본에서는 와타나베 미나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WAM) 사무국장이 '위안부 아카이브의 현황과 전망'을 발표했다. 

WAM(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은 2005년 일본 도쿄에서 시민 모금으로 설립된 단체로, 지난 12년간 일본 정부에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한 일본의 국제법상 책임을 강조하는 등 역사를 잊으려는 일본 사회에서 위안부 관련 문제를 꾸준히 환기한 곳이다. 정기적으로 위안부 상설전과 심포지움을 개최하고 위안부 관련 서적과 시민활동 기록 등을 수집해 아카이브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역시 일본에서 온 고바야시 히사토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전국 행동' 연구원은 그간 발굴된 위안부 관련 자료 성과가 여전히 일본 정부가 사실을 인정하는 데 활용되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국제사회 활동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에서는 지린성당안관의 자오위제(趙玉潔), 뤼춘위에(吕春月) 연구관원이 발표자로 나서 지린성당안관이 보관 중인 일본의 중국 침략 기록문서와 발굴 상황을 소개했다. 

이번에 새로 발굴된 문서 중에는 일본군이 위안소를 이용할 때 사용한 면세표(免稅票) 문제가 있다. 특별 면세표를 가진 병사는 1엔 50전이었던 위안소 이용요금을 1엔으로 할인받았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위안소 유흥비 특혜는 군인 계급에 따라 차등 적용했다는 내용도 적시됐다. 

박정애 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 연구교수는 "일본은 이 책임을 인정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정한 사죄를 해야 한다"며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미투 및 위드 운동도 궁극적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닿아있다"고 밝혔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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