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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특파원+] 현장에서 지켜본 '한반도 드라마'..그리고 남북한, 미국의 협연

박종현 입력 2018.03.0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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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 정치 도박의 세계에서 진실한 브로커 역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의용(왼쪽) 안보실장으로부터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을 원한다는 구두 메시지를 전달받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까지 북·미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게 알려진 8일(현지시간) 국제사회는 경악했다. 오랜 적국이었던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 개최 예고편을 설명한 이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다. 아무리 동맹이라지만 백악관에서 배석자 없이 다른 나라의 고위관계자가 브리핑을 하는 사례는 아마 최초라는 게 미 언론의 보도이다. 그것도 우리 정부의 요청이 아니라, 트럼프 정부의 요청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하지만 기분좋은 변화임에 틀림없다.

◆방미 특사단과 백악관의 현란한 개인기

북한이 미국으로 공을 넘겨주자 방미 특사단과 트럼프 정부가 백악관 안마당에서 현란한 개인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세계는 경악을 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게임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르지만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흥분하기에 족하고, 시청자들은 TV 수상기로 빨려들어갈 상황이다. 4월과 5월 2차례의 정상회담에서 보다 확실한 결과가 나오면 세계는 이 과정을 명승부의 전초전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런 급작스런 변화는 사실 예고됐다. 지난 2월 중순을 전후해 이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익명을 원한 워싱턴 소식통들 일부가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한반도 지형이 급변할 것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식사자리를 통해 주미 한국대사관과 백악관, 싱크탱크 등을 두루 접촉하고 있지만 확신을 하기까지는 무엇인가가 부족했다.

하지만 충분히 흥분할 주제였다. 선제타격설이 난무하는 북핵 위기 속에 한반도에 급작스럽게 평화기운이 드리울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북한 사이에 대화가 이어지고, 고위급 접촉이 이뤄지는 기미가 보였다.

◆“지켜보자”며 변화 예고했던 트럼프

워싱턴에서도 징후가 감지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느 순간부터 “지켜보자. 아마 (나중에) 알게 될 것”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반복했다. ‘말의 전쟁’을 펼치던 지난해의 모습이 아니었다. 문 대통령을 향해 때론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도저히 워싱턴에서는 취재에 한계가 있어 한국의 취재원에게 전화를 돌렸다. 백악관 등 간접적으로 접한 미국 분위기를 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일반인이 인지 못하는 사이에 사이에 남북 관계를 축으로 거대한 변화 흐름이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다시 미국 이곳저곳을 취재했다. 정 실장이 오래전부터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실장과 채널을 열고 긴밀하게 협의했다는 소식통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남북관계의 축은 통일부 장관이나 국정원장일 수도 있지만,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정 실장 역할이 지대하다”며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이 변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를 언급하면서 “두고 보자”는 말을 자주했던 배경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씩을 단위로 대형 뉴스가 터졌다. 부지런히 취재해 다음 날 기사게재를 목표로 뛰어다니면 어느새 새로운 소식이 신문지면을 장식할 정도로 한반도 변화는 가팔랐다. 정 실장의 대북 특사단 파견, 북·미 정상회담 등이 취재 도중에 단 며칠 사이에 이뤄진 일들이다. 매번 서울과 평양, 워싱턴으로 로케이션을 바꾼 ‘한반도 드라마’가 이어졌다. 주연배우는 바뀌었지만 한국 정부와 북한, 미국이 협연자로 등장한 거대한 음악회이기도 했다. 그만큼 치열하게 준비하며 대화를 나눈 것으로 볼 수 있다. 참여자들의 절실함도 간절 했을 것이다. 이 치열한 드라마의 총체적인 지휘자는 지금 보기엔 분명 청와대이다. 청와대는 그러나 말을 아낀다. 성과의 상당 부문을 백악관으로 돌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한국 정부의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 정 실장 일행을 맞은 백악관 면담에서였다.

◆한미의 공조…상상 이상의 변화올 수도

외신의 평가처럼 정치 도박의 현장에서 정직한 브로커로 나선 우리 정부가 승자의 편에 설지 패자의 편에 설지는 아직은 결정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중요할 수가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역할 분담이 잘 됐다. 눈돌릴 틈 없이 상황이 바뀌고 있는 것은 청와대의 치열한 준비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처럼 미국의 ‘최대 압박’이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통이 크건, 겁을 먹었건’ 한반도 변화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열쇠를 던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서 세계의 여론이 한반도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또다른 급변 소식이 전해질지도 모른다. 마냥 예측불가능한 이들로 여겨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문 대통령이 나란히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이제 흥분은 가라앉히고 보다 차분히 준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서로가 또 한번 속지 않도록 말이다.

이제야 정 실장이 이날 오전 워싱턴특파원들의 질문을 피해 조심스럽게 워싱턴 덜레스 공항을 빠져나가며 노심초사했을 상황이 이해된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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