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점수 더 받으려는 위장 전입 기승 .. 정부, 칼 빼들었다
점수 항목·배점 10년 전과 그대로
1~2인 가구 증가 추세 등 반영 못해
젊은층에 혜택 주도록 제도 바꿔야
“부모님을 위장 전입하는 편법으로 청약 가점을 새치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 집 마련의 대기 줄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순진하고 바보 같은 국민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 있는 글이다.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청약 점수를 높이기 위해 위장 전입으로 부양가족 수를 늘리는 실태를 고발한 것이다. 게시판에는 이와 유사한 청원이 20여 건 올라와 있다.
국토교통부가 13일 아파트 청약과 관련해 위장 전입 실태 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를 심각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8·2 부동산 대책 후 청약가점제가 확대 시행되면서 부모나 조부모를 위장 전입해 가점을 높이려는 유인이 커졌다”며 “우선 투기과열지구에 있는 분양 아파트에 대해 특별사법경찰관을 투입해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약가점제는 2007년 도입 이후 점수를 매기는 세 항목과 배점이 그대로다. 특히 1~2인 가구가 증가하는 추세와 맞지 않게 부양가족 점수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많다. 무주택 기간 배점은 1년 미만부터 15년 이상까지 1년 단위로 2점씩 점수가 늘어난다. 청약통장 가입 기간은 15년 이상이어야 만점인 17점을 받는다. 이와 달리 부양가족 수는 한 명만 있어도 10점, 3명이면 20점, 6명 이상이면 35점 만점이다. 부부와 자녀 둘이 있는 가정이 부모님을 위장 전입시키면 10점을 더해 만점을 받을 수 있다. 국토부가 위장 전입 조사를 강화한다고 했지만, 청약 당첨자 집을 일일이 방문해 단속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실거주 여부를 불시에 조사하는 것은 물론 부양가족 1명당 가점의 폭을 지금보다 줄이는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가 불이익을 받는다는 지적도 많다. 무주택 기간 점수는 만 30세 이후부터 1년마다 2점이 가산된다. 20대 초중반에 독립해 무주택으로 살아도 30세 전까지는 가산점을 받을 수 없다. 3년 전 결혼한 직장인 김민정(33) 씨는 “대학 졸업 직후 청약통장에 가입했는데 현재 총 가점이 25점도 안 된다”라며 “아이를 낳고 몇 년을 전세로 살아도 청약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청약가점제로 분양한 32개 아파트 단지의 당첨자 평균 가점은 51점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젊은 실수요자가 청약에서 소외되고 있다”며 “가점제 적용 비율이나 배점을 바꿔 젊은 층의 내 집 마련이 가능하도록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청약통장 가입 기간 배점은 변별력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청약 통장 가입 기간(15년) 만점자는 70만 명이 넘는다. 청약 1순위 자격요건을 갖춘 계좌도 1000만 건을 웃돈다. 가점제 항목에 부모와 본인 소득·자산을 반영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10억원짜리 전세를 사는 사람이 3억원짜리 낡은 자가 아파트에서 살다 새 아파트로 이사를 원하는 세대주보다 더 높은 가점을 받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주택보급률이나 가구 유형의 변화, 새 아파트에 대한 수요 등을 고려할 때 무주택자에 혜택을 준다는 기본 원칙은 지키면서도 청약가점제 항목을 변경·신설하거나 배점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헌정 국토부 주택기금과장은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나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실태 조사를 통해 청약가점제를 보완하거나 개선할 점이 있는지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윤·황의영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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