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차별을 묻다 .. 현실 같은 픽션, 픽션 같은 현실
딸 살해사건 둘러싼 이웃 갈등
10대 소년의 아련한 첫사랑
차별 반대한 80년대 사회운동
선과 악 이분법 뛰어넘는 메시지
이렇게 시작하는 ‘쓰리 빌보드’(감독 마틴 맥도나, 15일 개봉)는 이달초 미국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각본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은 영화다. 아카데미상과 함께 시상식 시즌이 막을 내리며 국내 극장가에 수상작 개봉이 한창이다. 아카데미만 아니라 칸영화제 등에서 굵직한 상을 받으며 작품성이 입소문 난 영화들의 제철이다.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니라 마틴 맥도나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가 바탕이다. 영국에서 극작가로 출발한 감독이 미국 중서부의 한적한 마을을 무대로 관객 앞에 펼치는 강렬한 드라마는 마치 윤리적 딜레마로 가득한 방탈출게임 같다.
하지만 80년대초라는 시간적 배경은 올리버가 극 중에서 하는 말처럼,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면 부모가 정신병원에 가두고도 남을 법한 시대이기도 하다. 엘리오의 부모는 이와 정반대로 아들의 성향을 충분히 짐작하고 아들의 첫사랑이 소중한 기억이 되길 바라는 보기 드문 경우다. 그렇다고 엘리오가 겪을 슬픔을, 첫사랑의 불완전함을 온전히 메워줄 수는 없다.
원작은 미국 작가 안드레 애치먼이 2007년 펴낸 동명 소설(국내 출간 제목 『그해, 여름 손님』)이다. 이를 시나리오로 각색한 사람은 올해 90세의 제임스 아이보리. 영화 ‘전망 좋은 방’ 등의 감독으로 이름난 그는 이번 영화로 첫 아카데미상을, 그것도 각색상을 받았다. 연출을 맡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아이 엠 러브’를 비롯, 사랑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단연 뛰어난 장인임을 이번에도 확연히 보여준다. 영화에 곁들여진 수프얀 스티븐스의 음악 역시 일품이다.
영화의 중심은 89년 액트업의 프랑스 파리 지부의 활동, 그 중에도 멤버들과 제약회사로 직접 쳐들어가는 션(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 분)이다. 동성애자, 약물 중독자, 오염된 주사바늘로 감염된 임산부와 그 아이들을 비롯해 절박한 처지에 놓인 이들이 치열한 회의를 벌이는 첫장면부터 강렬하다. 치료약의 부작용을 논하다 혼절하는가 하면, 시위 도중 끌려가면서도 약을 챙겨야 한다.
동시에 춤추고 사랑하길 포기하지 않는다. 액트업파리의 슬로건은 ‘춤이 곧 삶’이었다. 정부 관료에 가짜 피를 던지고, 분홍색 응원용 술과 은박종이를 흩날리며 한낮에 행진을 벌이고, 새하얀 십자가를 진 채 밤거리에 드러눕는 강렬한 시위의 끝에는 어김없이 80~90년대 유럽에서 유행한 하우스뮤직이 흐른다. 어둠 속에 부드럽게 부서지는 빛의 프리즘 속에 분당 120비트(120 Beat Per Minute, 영화 제목이 여기서 나왔다) 사운드에 몸을 맡긴 이들의 모습은, 세상을 잠시 잊고 그제야 온전히 호흡하는 듯 보인다.
로빈 캄필로 감독은 비감염자로서 90년대 액트업파리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전 멤버와 함께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마지막 순간까지 “증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데 에이즈를 이용하지 말라!”고 외치는 션의 구호는 고스란히 영화의 주제나 다름없다. 연인 나톤(아르노 발로아 분)은 수척해져가는 션의 곁을 끝내 떠나지 않는다.
이후남·나원정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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