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크기업 M&A 시장에선 이미 무역전쟁 불이 붙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9건 제동
중, 지적재산권 침해로 자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통상 압박을 강화할 목적으로 무기한 관세와 투자규제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미국 CNN 방송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 관광객에 대한 비자발급 제한도 거론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드럼프 대통령이 기술ㆍ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최대 600억 달러(약 64조원)어치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전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24일부터 중국산을 포함한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대중 압박안은 아직 시행되기 전 단계에 있다. 그러나 테크기업의 인수합병(M&A) 시장에서만큼은 이미 총성없는 무역전쟁에 불이 붙었다.
싱가포르 반도체기업인 브로드컴이 미국을 대표하는 통신칩기업인 퀄컴 인수를 가로막은 것이 하이라이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M&A 시장에서 기록적인 1170억 달러(127조원)를 지불하고 인수하려던 찰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문제 제기한 국가안보를 이유로 막아세운 것이다.
퀄컴의 CEO인 스티브 몰렌코프는 세계 통신칩 시장에서 화웨이를 비롯한 경쟁사의 추격을 계속 따돌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특허출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스마트폰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연구개발과 조인트벤처 등 막강한 서포트가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M&A를 추진했는데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제프리스 보고서에 따르면 퀄컴은 전 세계 5G 필수 특허의 15%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노키아가 11%,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이 10%를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작 CFIUS가 브로드컴의 인수를 거부했지만 실상은 중국 화웨이를 염두엔 둔 인수불가 결정이었던 셈이다.
실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주재하는 CFIUS의 힘이 점점 막강해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지난해부터 중국이 미국 테크기업에 투자하고 기술을 빼내가는 상황을 예의주시해왔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스콧 케네디 중국 경제정책 연구원은 “CFIUS의 관심이 국가안보에 영향을 주는 현존 기술이 경쟁국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뿐 아니라, 미국 기업이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지속해서 투자하도록 보장하는 것으로 확대됐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중국 자본이 미국 테크기업을 인수하려다 결렬된 사례가 9건에 달한다. 올해초 알리바바 자회사인 디지털 결제업체 앤트파이내셜이 미국의 송금회사인 머니그램을 인수하려다 결렬됐고, 지난해 9월 중국계 사모펀드가 미국의 래티스 반도체업체를 인수하려다 제동이 걸렸다.
특히 중국기업의 통신시장 진출에 대한 우려가 커서 화웨이의 새로운 스마트폰이 미국 AT&T를 통해 보급되는 루트도 막아버렸다. 화웨이가 미국인들의 중요 대화를 엿듣거나 정보를 축적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는 미 무역대표부(USTR)이 노리고 있는 주요 항목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행위에 막대한 벌금을 물리겠다며 보복조치를 예고한 바 있다.
미국은 최근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경제 책사인 류허(劉鶴) 공산당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에게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1000억 달러 정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서면으로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벌금을 중국이 가져올 무역흑자 축소방안과 연동시킬 것으로 점쳐진다. 협상에서 우위를 지키기 위함이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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