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플 재정난' 사립대.. 강의까지 줄인다

주희연 기자 2018. 3. 15.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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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10% 달하는 청소비도 삭감.. 청소 용역 노조, 본관점거 등 갈등]
수당·장학금 졸라매며 안간힘.. 투자 감소로 교육 질 악화 우려도
대학들 "정부 지원금 늘려달라"

14일 오전 서울 동국대 사범대의 한 건물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학교 교직원들이 건물 곳곳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려 하자 청소 용역을 맡은 노동자들이 달려들어 막은 것이다. 동국대에선 지난 1월부터 민노총 소속 청소 용역 47명이 "청소 노동자를 충원하라"면서 45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학교 측이 지난해 말 청소 용역비를 줄이기 위해 정년퇴직한 청소 용역 노동자 8명 자리를 근로장학생으로 대체하겠다고 하자 노조가 반발한 것이다. 동국대는 청소 용역비뿐 아니라, 교직원 수당, 업무 추진비, 영어 수업 인센티브 등도 줄였다.

지난달 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서울캠퍼스에 청소 근로자가 학교 측에‘전일제 근로자’채용을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민노총 소속 이 학교 청소 근로자들은 학교 측이 정년 퇴직자 자리에 아르바이트를 채용하자‘전일제 고용’을 주장하며 60일 가까이 본관 점거 농성을 벌였다. /윤창빈 인턴기자

연세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전일제 청소·경비 용역 노동자 31명이 정년퇴직한 자리에 시간제 노동자를 투입하자 민노총 소속 청소 노동자들이 '전일제 고용'을 주장하며 본관을 점거했다. 결국 대학 측이 지난 13일 '전일제 청소·경비 노동자 10명 고용' 방침을 밝히자 노조는 57일 만에 점거 농성을 풀었다.

◇등록금 동결 10년

대학과 청소 노동자 간 갈등은 등록금이 10년째 동결되면서 재정난을 겪어온 대학들이 입학금 폐지, 최저임금 상승까지 겹치자 지출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생긴 단면 중 하나다. 현행법상 대학들은 '직전 3개 연도 물가 상승률의 1.5배' 이내에서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2009년부터 등록금 인상 대학에는 재정 지원 사업에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등록금을 동결 또는 인하할 것을 유도해왔다.

이에 따라 전국 154개 사립대 등록금 수입은 2011년 11조554억원에서 2016년 10조7232억원으로 3322억원 줄었다. 등록금에 기부금·국고보조금 등을 모두 합친 총수입은 같은 기간 5657억원(17조2341억원→16조6684억원) 줄었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최경수 기획단장은 "물가와 최저임금은 계속 올라갔는데 등록금은 10년째 동결 또는 인하되면서 사립대 재정은 너무나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대학들은 청소 용역원뿐 아니라 조교, 대학원 장학금까지 줄이는 등 긴축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재정난을 겪는 것은 서울 주요 사립대도 예외가 아니다. 연세대는 2018년 청소·경비 용역 인원 667명에 대한 예상 지출 비용은 연 272억원으로, 학부·대학원 등록금(2700억원)의 10%에 달한다고 말했다. 김우정 연대 총무부처장은 "재정이 부족해 청소 노동자 정년퇴직 같은 자연 감소분은 시간제 노동자를 충원해 비용을 줄여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립대들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청소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립대들은 경영 여건을 고려해 청소 용역 인원을 줄이거나, 근로장학생 등으로 대체하려다 노조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대학이 적립금을 쌓아두고 돈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민노총 주장에 대해 대학들은 "적립금은 건축·연구·장학 등 목적이 정해진 경우가 많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의 질 악화 우려

대학 재정난이 교육 투자 감소로 이어지면서 교육의 질 악화를 낳는다는 우려도 있다. 사총협에 따르면 사립대 총예산 대비 도서관 자료 구입비 예산 비율은 2012년 이후 감소 추세다. 온라인 논문 등 대학이 사들이는 전자 자료는 2011년 1만780패키지에서 2016년 4585패키지로 절반 넘게 줄었다. 개설 강좌 수도 2014년(1만7434개)에 비해 지난해 3.4% 줄었다.

동국대 관계자는 "과거엔 수강 신청 인원이 기준(9명)에 못 미쳐도 강의를 열었는데, 지금은 강사 비용을 아끼기 위해 9명 이하 수업은 무조건 폐강한다"고 말했다.

대학들은 정부가 등록금 동결 정책을 풀지 않으려면 정부 지원금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재정 전문가인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교육부가 대학들 재정난을 외면한다면 사립대 경쟁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문을 닫는 대학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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