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부모 '돈'없고 학생 '운'없으면 학종 꿈도 못꿔

김효혜,조성호,김희래 입력 2018. 3. 18. 17:54 수정 2018. 3. 1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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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열에 여덟 "불공정한 전형" 분통

◆ 학생부종합전형의 폐해 (下) ◆

"제발 학종 비중 좀 줄여주세요.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힘든데 그런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것 같아서 억울해요. 부모의 경제력과 운에 좌우되는 전형 같아요."

"공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선생님의 관심도가 달라져요. 학교에서 키워주는 최상위권 친구들은 선생님이 알아서 학생부를 관리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선생님을 찾아가서 요청해야만 들여다봐줘요. 성적이 어중간한 친구들은 완전히 찬밥 신세죠."

올해(2019학년도) 서울 소재 대학들이 신입생 선발에서 2.7명 중 1명을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을 통해 뽑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4년 학종이 도입된 이래 최대 규모다. 사실상 '인(in) 서울'을 노리는 학생들은 무조건 학종을 준비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고교생 10명 중 7.5명이 '학종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하지 않다고 여기는 전형이 아무런 개선 없이 비중만 확대되는 상황이 이어지자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만이 들끓고 있다. 18일 매일경제는 진학사와 함께 현재 고1~3 재학생과 작년 고3이었던 졸업생 총 1303명을 대상으로 학종에 대한 의식 설문을 진행했다. 설문 결과 '학종이 공정하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75%인 977명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또 "학종 비중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되거나 그보다 더 축소돼야 한다"는 답변이 전체 응답자의 88.3%로 압도적인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갈수록 확대되는 학종 비중에 "너무 힘들다"며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3학년 1학기까지의 모든 학교 생활이 곧 '입시'로 귀결되는 데 따른 부작용이다. 교과 성적(내신)은 기본이고 소위 '자·동·봉·진'으로 일컬어지는 '자율활동·동아리활동·봉사활동·진로활동'까지 골고루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별로 요구하는 부분이 다른 점도 학종 준비를 어렵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이에 학생과 학부모는 각종 사교육과 컨설팅에 내몰리고 있다.

학종이 도입된 이후 학교 현장에 나타난 폐해는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일부 상위권 학생에게 '스펙'을 몰아주는 관행으로 꼽혔다. 무려 76%(997명)의 학생이 학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일부 상위 학생에게 스펙 몰아주기'를 택했다. 거의 대부분 학교에서 이 같은 관행이 행해지면서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고1 첫 중간고사 성적에 인생이 결정된다"는 말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면 상위 5%에 들지 못하는 중·하위권 학생들은 소외감과 박탈감에 시달린다. 경기도 이천의 한 고등학교 2학년 최 모양은 "선생님들의 모든 관심이 상위권 학생에게 쏠려 있고 그 학생들 중심으로 돌아간다"면서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은 상위권 학생을 빛내주기 위한 '들러리'인가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손주은 메가스터디그룹 회장은 "패자부활이 어렵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너무 일찍부터 큰 패배감을 안겨준다"며 "꿈과 희망을 앗아간다"고 지적했다.

또 어느 학교에 배정되느냐, 어떤 담임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학생부 완성도가 천차만별 달라지니 '복불복'이라는 인식은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다. 전형 결과에 대해서도 왜 붙었는지, 왜 떨어졌는지를 아무도 알지 못해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올해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한 김 모군은 "작년에 고3으로 학종을 겪어본 결과 모든 것은 '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학종에 붙은 친구나 학종에 떨어진 친구나 모두 이에 공감하더라"고 말했다. 학종이 되레 고교 서열화를 공고히 한다는 지적도 많다. 학종 수혜를 본 곳들이 대부분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특수목적고(특목고)라는 근거에서다. 실제로 2018학년도 서울대 수시 합격자를 10명 이상 배출한 고등학교를 살펴보면 32개교 중에 단 3개교만 일반고다. 나머지는 전부 자사고와 특목고다.

또 서울대 수시 합격자들의 고교 유형 비중을 살펴보면, 학종이 도입된 2014년 치러진 2015학년도 입시 즈음 기존 70%였던 일반고 비중이 50%로 내려앉은 것을 알 수 있다. 서울 영등포구 한 고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는 "사실 학종의 가장 수혜를 입은 학교는 전국 단위 자사고와 특목고"라며 "대표적인 곳이 '하나고'다. 하나고가 뜬 이유는 음악·미술·체육 자율 동아리활동을 활성화함으로써 다양한 특기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강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학종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자 교육부는 이달 말 '학종 개선안' 시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개선안의 전반적인 기조는 '학생부 기재 항목의 간소화·단순화'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학생과 교육전문가들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학생들은 대체로 '학종 간소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경기도 분당 소재 한 고등학교 1학년 이 모군은 "대학의 구체적인 평가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기재해야 할 사항은 지나치게 많다고 느꼈다"며 "기재 항목이 간소화하면 입시 부담이 줄어 조금은 편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학종 의식 설문조사에서도 '교육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학생부 기재 항목 간소화에 찬성하는가'라는 물음에 응답자 중 864명(66.3%)이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면 교육전문가들은 '학종 간소화'가 자칫 또 다른 문제점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학종 개선안이 고교 서열화를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우 연구원은 "학생부 기재 항목이 간소화하면 학종은 학생부 교과 전형과의 차별성을 상실할 수 있다"며 "이 경우 대학은 고등학교의 네임밸류, 내신 성적 등에 더 무게를 두고 학생을 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대학의 평가도구가 줄어들면서 또다시 특목고, 자사고, 강남 8학군 등 명문고의 비교우위가 커질 것이란 얘기다.

[김효혜 기자 / 조성호 기자 /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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