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스스로를 '마녀'라 부르는 그녀..성폭력 마녀사냥에 맞서다

김지혜 기자 kimg@ kyunghyang.com 입력 2018.03.29. 22:30 수정 2018.03.30.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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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미투’ 피해자들과 연대 앞장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사법 시스템 안에서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변호사도 없이 혼자서 법적 투쟁에 뛰어들었습니다.”

2010년 지인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협박·스토킹에 시달렸다. 피해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허술한 수사 끝에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그렇게 사건은 흐지부지됐다. 적반하장으로 가해자는 보복성 고소를 해왔다. 명예훼손 2건을 포함해 모욕, 공갈, 협박, 위증 등 총 6건이나 됐다.

홀로 끌어온 법적 싸움만 3년여. 7년간 다니던 직장도 그만둬야 했다. 결국 가해자는 강간죄 등으로 2년의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보복성 고소 사건들도 전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트위터 활동명 ‘마녀(@C_F_diablesse)’로 활동하는 ㄱ씨가 털어놓은 성폭력 생존자로서의 투쟁기다. ‘마녀’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당했던 ‘마녀사냥’의 기억을 반어적으로 해석해 만든 이름이다.

“지는 싸움이라고 미리 포기하지 마세요”
성폭력 소송 3년 ‘나홀로 투쟁’ 끝 승리
다른 피해자 지원 나선 ‘마녀’이야기

성폭력 생존자인 ‘마녀’가 들려주는 영화 같은 지난 이야기는 엄연한 ‘현실’이고,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마녀’는 지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의 법적 투쟁을 돕는 ‘연대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3년간의 나홀로 투쟁기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만난 ㄱ씨는 “나 역시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처럼 피해 직후에 바로 신고하지 못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피해자에게 죄의 입증 책임을 지우는 수사기관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개월의 고민 끝에 겨우 경찰서를 찾았지만 경찰 수사는 그의 짐작보다 더 허술했다고 말했다. 수사관은 가해자와 ‘형, 아우’하며 친분을 쌓는 것처럼 보였고, ㄱ씨는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했다고 했다. 경찰의 결론은 ‘불기소’로 마무리됐다.

나홀로 투쟁이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다. ㄱ씨는 “일단 경찰의 불기소 의견을 뒤집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여유는 없었다. 홀로 국가인권위원회·여성가족부·검찰 등을 찾아다니면서 진정을 냈다. 피해를 입증할 자료도 스스로 모았다.

성폭력 피해 지원 기관에서 소개한 변호사는 첫 만남에서 대번 “경찰관도 자기 편으로 못 만들었냐”며 혀를 찼다. 성폭력 상담소에서도 “힘드시죠”라는 위로 이상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조언을 구했던 전문가들은 “기소된다고 해도 실형을 받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나 ㄱ씨는 “싸움을 멈출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계속된 항의로 검찰은 피해자 조사를 재개하고 자료를 재검토했다. 검찰은 3번의 피해자 조사와 1번의 대질신문 끝에 사건을 재판에 넘겼다.

그 와중에 끊임없이 당한 2차 가해는 더 가혹했다. ‘2차 가해의 시작을 기억하냐’는 질문에 그는 “가해자가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나에 대한 욕설을 끊임없이 게시했다”고 답했다. 이어진 재판에서도 가해자 측 변호사는 “진짜 피해자라면 이렇게 차분하고 치밀하게 대응할 리 없다”는 등의 변론을 했다. 판사는 이런 발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는 “2차 가해성 변론을 모아 서류로 정리했더니 재판이 끝날 무렵에는 라면 박스 3개를 가득 채우고도 넘쳤다”고 했다.

■ 가해자 수감되던 날, 승리의 기억

기소가 됐다고 해서 안심할 순 없었다. 그녀는 모든 공판에 직접 참석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법정 방청이라도 했고, 가해자의 거짓 변론이 나오면 즉각 반박 자료를 만들어 제출했다. 증인심문에서도 가림막 없이 가해자와 당당히 대면했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를 묻자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 대한 정보를 열람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가 전무해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답했다.

외로운 싸움 끝에 찾아온 ‘승리’의 기억은 생생하다. 2011년 강간죄에 대한 1심 선고가 있던 날, 가해자를 응원하는 10여명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마침내 “징역 2년 실형, 법정 구속한다”는 판사의 주문이 들려왔다. 짧은 정적이 흐르고 이후 가해자의 지인들이 하나둘씩 재판장을 빠져나갔다. 가해자는 곧바로 법정 한쪽의 문으로 끌려나갔다.

‘이겼다’는 실감은 법원을 나와 지하철역에 도착해서야 느껴졌다. 그 기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고 ㄱ씨는 말했다. 그는 “그날의 기억이 포기하지 않고 싸움을 지속하는 힘이 됐다”며 “내 삶과 말, 자리를 되찾을 수 있는 첫 발판이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 “‘미투’, 이기는 싸움으로”

2013년 만 3년 만에 모든 법적 투쟁이 마무리됐다. 가해자의 실형은 확정됐고 보복성 고소는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났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의료·상담 지원 등을 안내받지 못했던 탓에 ㄱ씨는 치유가 필요한 상태였다. 그는 “삼키기만 했던 감정과 기억을 세상에 내놓고 싶어 ‘마녀’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그간의 투쟁기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트위터 계정에 메시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해자를 고소했거나, 가해자로부터 보복성 고소를 당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성폭력 피해자의 ‘법적 투쟁’을 돕는 익명의 연대자가 됐다. 현재까지 60명 이상의 피해자들 소송을 직접 도왔다. ‘신뢰관계인’으로서 동석해 진술을 보조하거나 각종 서류 작성을 도왔다. ㄱ씨는 “보복성 고소에 한정했을 때 30건 이상이 마무리된 상태며, 대부분 성폭력 피해 폭로의 진실성과 공익성이 인정돼 기소유예나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2016년엔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소송 대처 매뉴얼을 <피해자를 위한 젠더 폭력 법적 대응 안내서>라는 책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그는 관련 강연과 세미나도 하고 있다.

그는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재판에서 이기는 선례를 접하지 못한 채 ‘어차피 질 것’이라는 편견으로 싸움을 포기하곤 한다”면서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이기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미투에 나선 피해자들이 이후 맞이할 세상은 장밋빛이 아닌 핏빛 현실에 가깝다”면서도 “연대자들과 함께 일상을 재구성하고 피해를 회복하는 길도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잃어버린 말과 자리, 그리고 시간을 되찾아 주기 위한 그녀의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그는 “다음달 중으로 피해자를 위한 소송 대처 매뉴얼을 업데이트해 발간한 후 무료 배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지혜 기자 kimg@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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