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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피해자입니다, 사람들은 왜 용서 못 하냐고 저를 비난합니다"

이영경 기자 입력 2018.03.30. 17:28 수정 2018.03.3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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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법정에 선 미투, 3년의 투쟁

지난 1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318호 법정. 서현욱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러스트 | 이아름 콘텐츠기획자 areumlee@kyunghyang.com

“대학교수의 성폭력 사건으로 본심의 형량이 결코 무겁지 않고 피해자는 심각한 2차 가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1심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한 피고인이 법정에서 나가면 범행을 부인하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감형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서 검사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오전에 열렸던 다른 재판에서 검사들이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해주기 바란다”는 통상적인 발언을 했던 것과 달랐다.

춘천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김모 교수의 항소심 재판. 김 교수는 대학원생 제자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피고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못된 행동으로 피해자에게 충격과 고통을 준 것을 머리 조아려 사죄합니다. 30년 넘게 문학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관대한 선처를 바랍니다.”

작은 법정에는 5명의 방청객이 있었다. 방청객 가운데 한 명이 일어났다. “저는 이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왜 피고인을 용서하지 못하느냐고 저를 비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탄원서를 쓴 동일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출판·문학계에 있어 차마 고소하지 못했을 뿐 저는 등단하지 않아 신고할 수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한 탄원인에게 문자와 전화로 ‘자기가 지켜봐준 게 얼만데 피해자 편을 드느냐’고 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학교와 문단으로 돌아오면 제게 잘못을 돌릴 것입니다. 제발 그런 일이 없도록 선처하지 말아 주십시오.” 피해자는 울먹이며 말했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울면서 떨고 있는 쪽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였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어떻게 뒤바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김 교수 사건은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다. 대학교수이자 아동문학계 권위자인 가해자가 제자를 성추행했다. 학교 측은 사건을 축소하려 했고, 목격자는 가해자에게 유리한 거짓 진술을 했다. 일부 교수와 대학원생들은 가해자를 위한 탄원서를 썼다. 비난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향했다. ‘미투’ 이후 벌어지는 지난한 과정을 이 사건은 잘 보여준다. 피해자 ㄱ씨는 “3년째 고통받고 있고, 학업도 등단도 어렵게 됐다. 3년간의 고통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항소심 선고공판은 4월12일 열린다.

■ 문단 내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

교수·작가 셋이 만난 자리에서 교수가 추행·작가는 ‘못본 척’

김 교수는 아동문학계에서 이름이 높다. 잡지 ‘창비어린이’ 편집위원과 ‘어린이와문학’ 운영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작은 노벨 문학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상 심사위원으로 한국인 최초로 선정되기도 했다. 춘천교대 대학원에 아동문학교육 전공을 처음 만들었다. 김 교수는 ㄱ씨의 학업뿐 아니라 향후 문단에서 심사·평론·편집·출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

김 교수는 대학원 세미나 자리에서 “일 한번 해볼래?”라며 ㄱ씨에게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2016년 1월 어린이책 작가 ㄴ씨와 함께하는 저녁 자리에 ㄱ씨를 불렀다. ㄴ씨는 김 교수의 가족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책을 낼 예정이었고, 이날도 출간 예정인 책의 가편집본을 들고나왔다. 김 교수는 “신인문학상에 응모해보라”고 권하며 옆에 앉은 ㄱ씨의 등과 허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ㄴ씨가 함께였지만 아무런 제지도 없었다. 2차로 장소를 옮겨서도 김 교수가 같은 추행을 계속하자 ㄱ씨는 참다 못해 “만지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 뒤에도 길에서 갑자기 ㄱ씨를 끌어안고 “너랑 자고 싶다”는 말을 했다.

ㄱ씨는 신고하고 싶었지만 김 교수와 ‘갑을관계’에 있는 ㄴ씨의 증언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김 교수가 학계와 문단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 섣불리 신고하면 공부를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의심과 비난이 쏟아지는 경우를 봐왔기에 주변에 알려지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교수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받으면 공부에만 전념하고 싶었다. 같은 해 2월 김 교수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사과한 후 다시 성희롱했다. 이후에도 “만나자”는 연락을 계속해왔다. 정신적 고통으로 구토와 불면증 등에 시달리던 그해 9월 ㄱ씨는 김 교수를 만나 부적절한 연락을 중단해달라고 부탁했다. 정신과 치료 사실을 털어놓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ㄱ씨에게 김 교수는 “병원에 가지 말고 자신을 찾아오라”며 다시 성추행했다. “문학의 목표는 공감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강의하던 김 교수는 ㄱ씨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법원에서 인정된 김 교수의 혐의는 4건의 강제추행과 1건의 강제추행미수다.

■ 사건 축소하려 한 대학 ‘솜방망이 처벌’

당시 학생처장 "결혼은 했냐" 물어 '정직 3개월' 솜방망이 처벌만

더 이상 수업을 듣기 힘들었던 ㄱ씨는 같은 과 교수와 강사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했다. 공개 사과를 받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김 교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즈음 ㄱ씨는 김 교수에게 성폭력을 당한 추가 피해자 2명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라는 결심을 굳혔다.

지난해 1월, 학생처에 상담을 요청했다. 첫 상담에서 당시 학생처장은 “왜 이제서야 신고했냐” “결혼은 했냐”는 사건과는 무관한 질문을 했다. “공식적 사과를 원하냐”는 질문에 ㄱ씨는 “징계를 원한다.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이 안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징계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2차 가해는 이어졌다. 김 교수는 ㄱ씨에게 “‘선처해달라’는 한두 문장이면, 학교에 남을 여지가 있다네요”라고 e메일을 보내 학교에 선처를 호소해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피해자와 지인들에게 수차례 전화하며 연락과 만남을 시도했다. 김 교수는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와 e메일을 보내 ㄱ씨를 압박했다.

징계 결과 정직 3개월, 성폭력 치료 40시간 이수명령이 내려졌다. 또한 사과문을 1주일간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했다. 교육공무원법상 성폭력 징계 하한선은 해임이지만, 기준에 못 미치는 징계였다. 결과가 나온 날 ㄱ씨는 모르는 남자에게 두드려맞는 꿈을 꿨다.

대학은 김 교수의 징계 사유를 공개하지 않았다. ㄱ씨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김 교수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온 뒤인 지난 1월에야 김 교수의 징계 사유가 성추행이 아닌 성희롱임을 알 수 있었다. 대학에서 제대로 된 조사와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ㄱ씨는 “대학 징계위원회 운영이 불투명하다. 초·중·고 학교폭력 대책회의록은 법적으로 공개된다. 하지만 대학 징계위원회 회의록은 법적으로 공개가 안된다. 대학 측은 징계 사유도 은폐했다”고 말했다.

춘천교대 관계자는 “당시 조사위원회에서 성희롱으로 결론을 내려 그에 준하는 징계를 내린 것”이라며 “김 교수는 직위해제 상태이며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그에 따른 처분이 내려질 것이다. 성폭력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을 받으면 자동해임된다”고 밝혔다.

성범죄를 저지른 국립대 교수 10명 중 7명은 강단에 서고 있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최근 4년간 성범죄를 저지른 국립대 교수는 35명이었으며, 이들 가운데 68.6%(24명)는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원징계위원회에 피해 학생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도록 하는 ‘성범죄 교수 솜방망이 처벌 방지법 개정안’을 지난 1월 발의했다.

■ ‘위드유’ 연대의 힘

유일한 목격자는 ‘거짓 진술’ 교수·동료, 가해자 선처 탄원

“지위와 권력이 있는 가해자의 말은 널리 확대된다. 반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명예훼손과 무고의 위험 속에 드러나기 힘들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는 축소되고 가해자의 변명과 사과는 확대되는 것을 많이 봤다. 나 혼자였다면 신고도, 승소도 불가능했을 거다.” ㄱ씨는 성폭력 사건에서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ㄱ씨에게도 아동문학 작가들의 도움과 가해자에게 성폭력을 당한 다른 피해자들의 탄원서, 춘천교대 학생회의 연대가 큰 힘이 됐다.

대학 홈페이지에 김 교수의 사과문이 게재되자 경찰이 인지수사를 시작했다. ㄱ씨는 한국여성민우회에 상담을 했고 추가 피해자를 찾으라는 조언을 받았다. 2016년 말 ‘#문단_내_성폭력’ 폭로 운동을 보면서 자신이 당한 성폭력도 문단 내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동문학계에서는 ‘여성+어린이+문학’이라는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지난해 5월 ‘문단 내 성폭력, 어린이문학은 안전한가요’라는 제목의 집담회를 열었다. ㄱ씨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고 유사한 피해 사례 목격자들을 만났다. ‘여성+어린이+문학’은 1802명으로부터 아동청소년문학계 성폭력에 반대하는 성명서에 서명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흩어져 있던 피해자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아동문학 작가, 편집인 등 9명이 김 교수로부터 성폭력을 당했거나 목격했다며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춘천교대 총학생회에서도 입장문을 내고 김 교수의 복직에 반대하며 학교 측에 교수 성폭력 근절 대책을 요구했다.

■ 가해자 편에 선 목격자…2차 가해 계속

혼자가 아닌 '함께'의 힘 다른 피해자들·민우회 등 연대 "혼자였다면 신고·승소 불가능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는 어린이책 작가 ㄴ씨다. ㄴ씨는 피해자와의 통화에서 김 교수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며 “기억하고 있다”면서 “소신에 따라 현명하게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ㄴ씨는 경찰 수사에서 말을 바꿔 “김 교수가 머리를 기대거나 어깨동무하는 정도였다”고 거짓 진술했다.

춘천교대 교수 35명을 비롯한 일부 대학원생, 아동문학 작가 등 70여명이 김 교수를 선처해달라며 재판부에 탄원서를 보냈다. 이 가운데 ㄷ작가는 피해자와 피해자와 연대한 작가들을 비방했다. ㄱ씨는 “ㄷ작가는 ‘피해자가 다른 남자에게서 입은 피해를 화풀이하고 있다’ ‘피해자를 돕는 작가들이 교수 자리를 노리는 등 다른 의도가 있다’는 식으로 깎아내렸다. 아동문학계 성폭력 집담회에 대해서 ‘마녀사냥’ ‘남성 작가들을 범죄자로 몰아간다’고 비난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1심 재판이 끝난 후 법원에 재판기록 열람복사 신청을 통해 이 내용을 보게 됐다. ㄱ씨는 대학원 교수와 동료들이 가해자를 위해 쓴 탄원서를 보고 충격을 받아 대학원 복학을 포기하고 휴학을 연장했다.

아동문학 작가들의 모임인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인터넷 카페에서도 2차 가해가 이뤄졌다. ㄷ작가는 “피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들을 찾아내 복수극이라도 벌이면 어쩔 것인가” “판결이 확정되면 피고인이 피해자가 되고 연대자가 가해자로 입장이 바뀔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했다. 김 교수의 아내와 변호인은 피해자에게 문자메시지와 e메일을 보내며 직접 연락해왔다. 변호인은 재판부에 보낸 의견서에서 피해자에 대해 “민감한 성격” “피해의식이 보통 사람들보다 강하다”며 피해자 탓을 했다. 항소심이 시작되자 김 교수 측은 2000만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겠다고 나섰지만 ㄱ씨는 합의를 거부하고 있다.

■ 성폭력이 파괴하는 건 피해자의 미래다

1심 승소했지만 복학 불투명 “학업·등단 포기해야 할 수도”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전날, ㄱ씨가 교사가 되어 처음 가르쳤던 제자들이 찾아왔다. 대학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인 한 제자는 성희롱 교수가 복직할 예정이어서 학생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또 다른 제자가 다니는 중학교에서도 교사 성폭력이 문제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ㄱ씨는 반복되는 성폭력이 끔찍했다. 그는 “끝까지 싸워야겠다”고 결심했다. 학업도 등단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ㄱ씨는 기나긴 싸움 끝에 가해자의 유죄를 이끌어냈지만 학업을 중단하게 된 상실감이 크다. 담담하게 말을 잇던 ㄱ씨는 미래를 이야기할 때 비로소 울음을 터뜨렸다. 성폭력 사건 이후 ㄱ씨의 시간은 멈췄다. 대학원은 2년째 휴학 중이며 복학 계획은 불투명하다. 그는 “대학원 교수들과 동료들이 가해자를 옹호하는 탄원서를 썼는데 대학원에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ㄱ씨는 “내 형사소송 판례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동문학계에서도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다.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에서는 지난달 성폭력위원회를 설치하고 30일 회원들을 대상으로 ‘젠더 감수성과 미투 운동’이라는 교육을 실시했다. 임정자 대표는 “어린이를 독자로 만나는 아동문학 작가들은 권력구조에 의한 성폭력에 대해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하고 일상 속에서 무의식으로 드러나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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