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면 늙지 않는다는 '불로문'을 아십니까?

정용부 2018. 4. 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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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불로문' 활용법.. "문을 지나면 장수하지만 만지면 늙어요"
▲ 서울 종로구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불로문의 모습. 뒷면에는 금이 간 흔적이 뚜렷하다./사진=정용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청와대 정원을 산책하며 불로문을 지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예나 지금이나 인류의 공통적인 소망은 불로장생(不老長生) 불로불사(不老不死)가 아닐까. 조선 왕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던 창덕궁 후원의 불로문(不老門)이 현대에도 다양한 곳에 세워지고 있다.

창덕궁 불로문은 후원 연경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진 가로 약 2.5m에 통돌 하나를 ‘П’자 모양으로 깎아 만든 문이다. 상단에는 한자 전서체로 ‘불로문’이라 쓰여 있으며, 문틀에는 경첩의 일종인 돌쩌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문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로문은 16세기 말 조선 숙종 18년(1692)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숙종 이전에 예종(20세), 인종(31세), 명종(34세), 현종(34세) 등이 젊은 나이에 요절을 했고,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점 후손이 귀해짐에 따라 조선 왕실이 임금의 '옥체 보전'과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마음은 어느 때보다 높았을 것이다.

■ '무병장수' 기원하는 현대판 불로문

21세기 들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여전하다. 현대에는 불로문이 가진 영생의 의미와 더해저 역사문화 콘텐츠의 사업성이 높아지면서 최근 몇 년간 불로문을 모방한 조형물이 지하철역에서부터 아파트, 음식점, 공원,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원조' 불로문 외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 쪽에 세워진 불로문이다. 이 모방작은 크기와 글씨, 통돌로 제작된 점이 원조와 거의 일치한다. 경복궁역 5번 출구는 경복궁과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불로문은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지난 3월 29일 말레이시아에서 온 미셀(23) 씨는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다”라면서 “전 세계 누구나 늙고 싶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 문의 뜻을 알고는 몇 번을 지나다녔는지 모르겠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경복궁역과 멀지 않은 사직단 앞 ‘광화문 풍림 스페이스본 아파트’에도 불로문을 볼 수 있다. 이 아파트의 불로문은 원조에 비해 그 크기가 곱절이며 문도 두 개다. 또 원조는 바깥 모서리는 둥글고 안쪽 모서리는 직각을 이룬 반면, 이것은 양쪽 모두 둥글게 처리했다. 정교함은 원조에 미치지 못한다.

▲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에 있는 불로문을 외국인 관광객이 지나가고 있다./사진=정용부 기자

▲ (위) 서울 종로구 '광화문풍림스페이스본아파트'에 세워진 불로문의 모습. (아래)부산 영도구 불로초공원 입구, 대구약령시 한의약박물관에 세워진 불로문의 모습/사진=인스타그램 아이디 'ip_i***', 'han****'

불로문은 청와대에도 있다.

정확히는 소정문 입구에 있으며 현대인의 체형에 맞게 조금 높게 세워졌으나 외관은 원조와 거의 일치한다. 특히 이 불로문은 우리나라의 국제 외교 활동에 큰 성과(?)를 보태기도 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당시 김정숙 여사가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에게 “창덕궁의 불로문을 닮은 이 문 아래를 지나면 영원히 늙지 않는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멜라니아 여사는 “그렇다면 꼭 지나가야겠습니다”라고 받아치기도 했다.

또 음식점에서도 ‘장수의 상징’ 불로문을 활용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정식집 ‘지리산’이 그곳이다. 이곳은 크기와 글씨 모두 흡사하지만 통돌이 아닌 세 개의 돌을 이어 제작했다. 식당 주인은 2015년에 매장 리모델링을 하면서 설치했다며 “별다른 뜻이 있겠나. 우리 음식 드시고 모두 무병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했죠”라고 제작 동기를 밝혔다.

이 밖에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에 원조를 빼닮은 조형물이 하나 더 있다. 전국적으로는 수원 영통구 광교박물관 입구, 대전 유성구 남선공원 입구, 대구 약령시 한의약박물관 입구, 울산 남구 울산대공원 안, 부산 영도구 봉래산 불로초 공원 전망대 입구 등을 포함해 확인된 것만 10개에 이른다. 다만, 대구 약령시의 조형물은 3칸이며, 부산 불로초 공원에는 두 마리의 용이 문을 타고 올라와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더욱 발전적이다.

■ '원조' 창덕궁 불로문 보존 상태 우려

모방작들이 전국 곳곳에 생기고 있지만, 정작 원조 불로문은 보존이 위태로운 상태다. 326년간 제자리를 지켰던 불로문의 뒤면에는 금이 간 흔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궁궐의 문화해설사들은 이점을 우려해 "불로문을 지나가면 장수를 하지만, 만지면 늙는다"라며 더 이상의 훼손을 경계하고 있다.

한편, 경기도의 한 금속판금 제작업체는 화강암 재질로 된 불로문을 제작하는데 드는 비용은 약 500만원이며 기간은 약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고 밝혔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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