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푹 자고 일하고 싶어.." 웹디자이너의 마지막 소원

입력 2018.04.04. 05:06 수정 2018.04.0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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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강의업체 직원 비극적 선택
평소 잦은 야근·직장내 괴롭힘 호소
유족 "과로자살"-회사 "업무와 무관"
퇴직자 "4명 하던 일 몰아준듯" 증언

[한겨레]

2일 자정께 서울 강남구 인터넷 강의업체 ㅇ사 사무실 불이 켜져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저도 푹 자고 나와서 일하고 싶죠. 그런데 일이 정말 너무 많아서… 아침에 나와서 새벽까지 해도 빠듯해요.”

장소연(가명·36)씨가 지난해 12월1일 동료들에게 인터넷 메신저로 보낸 메시지다. 직장 상사에게 ‘하루면 되는 일이다. 나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낼 것이다’ ‘눈에 초점이 없다. 자고 나와 맑은 정신으로 일하라’는 말을 들은 뒤였다. 다음날 집에 돌아온 장씨는 언니에게 “일이 너무 많은데 상사가 ‘잠은 자면서 일하냐’는 말에 폭발해버렸어”라고 말한 뒤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장씨는 유명 인터넷강의업체 ㅇ사의 웹디자이너였다. ‘대성통곡’ 한달 뒤인 지난 1월3일 자정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 유서는 없었다. 우울증을 앓았던 장씨는 숨지기 직전 친구에게 “나 다시 우울증이 도진 거 같아” “그냥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장씨의 유족은 과도한 업무와 야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병증이 악화된 ‘과로자살’이라 주장한다.

3일 <한겨레>가 유족의 동의를 얻어 입수한 장씨의 교통카드(출퇴근) 기록과 날마다 이메일로 회사에 제출하는 업무일지, 인터넷 메신저 대화 내용, 유족 및 퇴사자들 증언을 종합하면, 장씨는 지난해 4월부터 한 강의 브랜드의 디자인 리뉴얼을 맡았다. 2013년부터 앓던 우울증이 악화된 지난해 8월 장씨는 회사에 이를 알리고 9월부터 10월 초까지 휴직을 했다. 그러나 복직 뒤 기존에 맡던 업무에다 페이스북 콘텐츠 제작 등이 더해져 일이 늘었다. 근무시간은 오전 10시~저녁 7시였지만, 11월 한달 동안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한 날이 열흘이었다. 밤 12시 넘어 퇴근한 날도 닷새였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한 날은 엿새였다. 퇴근 뒤 집에서 일하기도 했다. 12월27일 업무일지엔 “어제 집에 간 뒤 브랜딩 작업을 했다. 오늘도 집에 가서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썼다.

이 회사를 최근 퇴사한 웹디자이너 ㄱ씨는 장씨 업무일지를 보고 “원래 4명이 맡던 업무를 장씨에게 몰아준 것 같다. 상사들의 ‘컨펌’이 있기 전까지는 퇴근을 못 하기에 야근이 많았다. 나도 퇴사 전까진 불면증을 앓았다”고 말했다. 구직사이트 ‘잡플래닛’에 올라온 전·현직 직원들 평가에도 “퇴근시간이 없다” “야근이 당연시된다”는 글이 있다.

업무와 관련한 직장 내 지적 또한 장씨의 자존감을 떨어뜨린 것으로 보인다. 업무일지를 보면 장씨는 “제가 얼마나 기계적으로 업무를 했는지 부끄러웠습니다”(11월15일) “지치지 않고 제대로 된 아웃풋을 내겠습니다”(11월22일)라고 적었다. 2013년부터 장씨의 우울증 치료를 담당한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소견서에 “지난해 하반기에 장씨는 재발성 우울장애 완치를 기대하고 있었으나, 직장에서 받은 모멸감, 수치심, 비인간적 태도 등을 호소했다”며 “급성 스트레스 발현 원인은 직장 내 압박감이 우선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장시간·야간노동은 우울증을 악화시킨다. 2013년 한국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주당 60시간 근무한 노동자들은 40~48시간 근무한 노동자들에 비해 우울증상이 1.62배 높게 나타났다. 지난해 ‘한국의학저널’엔 야간노동 때 우울증이 43%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성인 4명 가운데 1명이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는 상황에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나 자살을 개인 문제나 마음과 의지가 약한 문제로 치부하는 태도가 문제를 오히려 증폭시킨다”고 설명했다.

회사 쪽은 “고인의 죽음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업무 과중과 장씨의 죽음 사이 관련성이 떨어진다는 태도다. 회사 쪽은 <한겨레>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고인을 충분히 배려했다. 외부 법무법인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고인에 대한 괴롭힘 등은 없었고 다른 직원과 비교해 업무가 과중했다는 점을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잦은 야간근무에 대해서도 “아이티(IT) 기업의 특성상 불가피한 야근이 발생하고, 오후 출근 등으로 충분한 휴식을 보장했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언니가 숨지기 한달전 근로감독 청원…“바로 했더라면…”

인터넷 강의업체 ㅇ사를 다니다 지난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소연(가명·36)씨의 언니 장수현(가명·39)씨는 동생이 지난해 12월2일 집에 돌아와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며 울다 지쳐 잠든 모습을 봤다. 바로 그날 고용노동부 누리집에 이 회사에 대한 근로감독 청원을 올렸다.

그러나 일주일 뒤 고용부 서울강남지청 근로감독관은 ‘근로감독을 바로 할 수는 없다. 내년 2월에 하겠다’고 답했다. 그 한 달 뒤 동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현재까지 근로감독은 이뤄지지 않았다. 노동단체 ‘노동자의 미래’ 박준도 정책기획팀장은 “연장근로 위반에 대한 근로감독 신청을 ‘위험 신호’로 인지하고 즉각 근로감독에 나섰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강남지청 관계자는 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진정 접수 당시 이미 계획된 근로감독이 많아 바로 착수하지 못했다. 빠른 시일 내에 근로감독 착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수현씨는 5일 국회 정론관에서 회사의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시민사회단체 등과 함께 연다. 그는 “동생은 후배들이 야근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마음 아파했고, 자신이 나서서 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다고 했다”며 “동생의 뜻을 이어 야근문화를 근절하는 것은 유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