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MB 단죄할 기회 날리고 '꽃길' 터준 검사들

입력 2018.04.05. 16:06 수정 2018.04.0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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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의 법조외전(18) MB에 '면죄부' 준 검사열전

[한겨레]

까만 후배 검사가 말했다. “10년 전에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다스 실소유주가 드러났으면, (엠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겠나.” 2007년 12월5일 문제의 그 수사 실무를 총괄 지휘했던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가 엠비에게 면죄부를 주는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검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미처 몰랐다.

“역사를 바꾼 범죄라고 보면 된다. 10년 전에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다스 실소유주가 드러났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었겠나. 그런데도 지금까지 10년 이상 여전히 다스는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하고, 심지어 다스 건으로 명예훼손으로 감옥 간 사람도 있지 않았나. 다스 실소유주라는 사실만으로 구속감이다.”

검찰이 엠비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난 달 19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와 첨단범죄수사1부를 지휘하며 수사 실무를 총괄한 고위급 검사가 기자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이 준열한 ‘단죄사(斷罪辭)’는 그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다음 날 조간신문 1면들에도 큼지막이 실렸다. 한때의 최고 권력자를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검사의 추상같은 언명쯤으로 아름답게 해석하고 넘어갈 뻔 하다가, ‘범죄’와 ‘10년’이라는 단어가 연결되는 순간 덜컥 제동이 걸렸다.

“그럼 10년 전에 검찰은 무얼 했지?”

저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진 뒤 검찰 안팎에서는 “기자나 역사가라면 모를까, 검사가 할 말은 아니다”는 반응들이 나왔는데, 그보다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검찰의 잘못, ‘선배’ 검사들의 잘못은 쏙 빼놓고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만 비양심적인 사람으로 질타했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이 당시 수사 문제를 짚긴 했지만 검찰이라는 ‘집합명사’에 시선을 뺏기면서 ‘사람’을 놓쳤다. 검찰이라는 집단에만 초점을 맞추면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들은 익명의 허울 뒤로 숨게 된다. 그래서 늘 오욕은 검찰 ‘조직’의 몫일 뿐 책임지는 ‘검사’는 없다. 어쩌면 이것이 살아 있는 권력에는 한없이 약하고, 죽은 권력에는 잔혹 무비한 ‘하이에나 형’ 정치 검사들을 양산해온 요인이었는지 모른다.

“10년 전 엠비의 죄상을 밝힐 기회가 두 번 있었어요. 검찰에 한 번, 비비케이(BBK) 특검에 한 번. 특검도 수사는 파견 검사들이 다 맡아서 했으니까 결국 검찰에 두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봐야죠. 하지만 엠비의 죄상은 덮어졌고, 그때 그 사건을 했던 검사들은 엠비 정부에서 더할 나위 없이 잘 나갔죠.” (검찰 관계자 ㄱ)

2007년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 수사 당시 (왼쪽 위부터) 임채진 검찰총장, 권재진 대검 차장,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명동성 서울중앙지검장, 김홍일3차장, 최재경 특수1부장, 김기동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부장. 한겨레 자료사진

#1. 2007년 12월, 서울중앙지검

2007년 대통령 선거일(12월19일)을 2주 앞둔 12월5일, 검찰은 공직자윤리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된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에 대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그해 7월 당시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의 엠비 고발로 시작된 5개월짜리 수사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었다. 브리핑은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다스 9년 치 회계장부를 검토하고 자금 흐름을 면밀히 추적하는 등 노력했으나 이 후보 것이라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회사 경영이익 귀속에 대해 보면, 다스는 1987년 설립 후 지금껏 후지기공이 주주로 있던 1993~1995년 사업연도 7천만 원대 이익 배당 외에 전혀 이익 배당이 없었으며, 9년 치 회계장부 모두 검토하고 법인 명의 개설된 모든 계좌와 필요한 연결계좌 다 추적했음에도 다스 돈이 배당금 등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이 후보에게 건너간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은 무혐의 처분. 어쩌면 엠비의 당락을 갈랐을지 모를 최대 걸림돌은 검찰이 앞장서 말끔히 치워주었다.

장면을 바꿔, 3월19일. 엠비 구속영장 청구 직후 “역사를 바꾼 범죄”라고 언급한 서울중앙지검의 고위급 검사는 기자들에게 이런 설명을 내놓았다.

-(다스에서 비자금 조성을 통해 엠비가 빼간) 횡령도 액수를 특정해 주세요.

“횡령은 약 350억원입니다. 비자금과 법인카드 등등. 자동차 받으신 부분도 있고, 여러 가지 합쳐 봤을 때.”

-구속영장에 다스는 엠비 것이라고 쓰여 있나요?

“저희는 그렇게 판단했고, 당연히 그렇게 들어가 있습니다.”

-어떤 식의 표현인가요?

“표현까지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기본적으로 어떤 회사 실제 주주 판단 기준은 설립 과정, 설립 과정에서 자금 조달 및 의사 결정의 문제, 회사의 의사 결정은 누가 했고, 회사의 주요 수익은 누가 수취했고, 이득은 누가 가졌냐는 문제를 본 결과 엠비 소유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 구성과 객관적 사실, 핵심 역할을 한 관여자들 진술 등을 통해서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 다스가 배당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은 세금 문제도 있지만, 이걸 다시 돌려받는 게 복잡했던 겁니다. 그 대신 이익을 (엠비가) 비자금 조성으로 취한 것이죠.”

같은 검찰, 다른 결론.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홍상수의 영화 제목을 뒤집어놓은 듯한 결론은 10년 전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 차이는 어떻게,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2007년) 수사팀도 할 말은 있겠죠. 관련자들이 한결같이 입을 다무는 데 용빼는 재주가 있느냐고. 일리는 있어요. 하지만 언제부터 검찰이 진술에만 의존해서 수사했나요. (10년 전) 그때는 심지어 범행 시점에서 훨씬 더 가까이에 있을 때입니다. 은행 자료 같은 것도 더 많이 남아 있었을 테고. 아무리 내일모레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아니죠, 신분이 그러니까 더욱 철저하게 파헤쳤어야죠. 그 양반들이 당시에 증거를 못 찾았다고 했는데, 10년 후에 수사한 동부지검 다스 수사팀이랑 서울중앙 수사팀에서는 찾아냈잖아요. 2007년 그 수사팀은 그때 뭘 본 거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검찰 관계자 ㄴ)

“의지죠, 수사 의지. 검사들이 딱 찍어서 ‘내가 저놈 반드시 잡겠다’고 작심하고 덤비느냐, ‘에이~ 이 상황에서 열심히 해서 뭣 하려고?’ 이렇게 생각하느냐가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그때 엠비는 대통령이 된 거나 마찬가지였잖아요. 검사들 눈에도 엠비는 즉위식만 남겨놓은 황태자 같은 존재였다고 봐야죠.” (검사장 출신 변호사)

9년 치 회계장부와 법인 계좌는 물론 연결계좌까지 전부 추적했다는 그때 검찰이 ‘다스는 엠비 것’이라는 증거를 못 찾은 것인지, 안 찾은 것인지, 보고도 못 본 체 한 것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엠비의 “역사를 바꾼 범죄”에 ‘면죄부’를 준 그 당시 수사팀과 검찰 지휘부의 면면, 엠비 정부에서 화려함을 더한 그들의 이력만은 분명히 기록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당시 엠비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에는 명동성 지검장 아래로 김홍일 3차장-최재경 특수1부장-김기동 특수1부 부부장이 있었다.(그 아래로도 수사 실무를 담당한 검사들이 많이 있지만, 검찰 조직의 특성상 그들까지 거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여 생략한다)

명동성 서울중앙지검장은 2007년 11월 그 자리에 있다 검찰총장이 된 임채진 씨의 뒤를 이었다. 그가 부임할 당시 서울중앙지검에선 엠비 수사가 한창이었다. 수사 결과의 ‘공로’를 인정받아서인지 그는 호남 출신(광주고)임에도 엠비 정부 첫 1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최종 수사결과 발표 날 마이크를 잡았던 김홍일 3차장. 그는 엠비가 대통령이 된 뒤 자신의 ‘진짜 전공’인 대검 마약조직범죄부(옛 강력부)의 부장을 거쳐 특수 검사로서는 최고위직인 대검 중수부장이 됐다. 2011년 8월에는 고검장으로 승진해 부산고검장을 지낸 뒤 박근혜 정부 첫 인사를 앞두고 옷을 벗었다.

그 바로 아래, 특수1부장으로 문제 사건의 주임검사이던 최재경 검사는 엠비 정부 들어 ‘특수 검사’들의 로망이라는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거쳐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뒤 선배 기수를 제치고 대검 중수부장에 올랐다. 소싯적부터 특수부 검사로 경력을 쌓긴 했다지만, 엠비 정부 내내 요즘 말로 ‘꽃길’만 걸은 셈이다.

이들은 엠비 정부가 끝난 뒤 차례로 검찰을 떠나 변호사가 됐다. 반면 김기동 당시 특수1부 부부장은 현재 ‘검찰 몫’인 사법연수원의 부원장으로 현직에 남아 있다.

김기동 검사는 엠비 정부 첫 인사에서 ‘지청 부장’으로 나갈 차례였다. 다른 동기들은 모두 짐을 싸들고 지방으로 떠난 그 인사에서 그만 유독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부장으로 남았다. 1년 뒤 그의 동기들이 지방검찰청 부장이나 충주·서산 등 작은 지청의 지청장으로 부임할 때 김 검사는 같은 청사(서울중앙지검)에서 층만 바꿔 특수3부장으로 영전했다. 그해 8월에는 다시 특수1부장이 되고(이때 그는 한명숙 전 총리의 유죄가 확정된 이른바 ‘한만호 사건’ 수사를 개시한다), 2010년 8월 김준규 검찰총장이 낸 인사에서 대검 ‘검찰기획단장’으로 임명된다. 동기들 대부분이 지방과 서울, 지방에서 지방으로 옮기던 엠비 정부 4년 동안 그는 서초동에 ‘나홀로’ 남는 특혜를 누렸다.

한동안 공개 석상에서 보이지 않던 그는 얼마전 문무일 검찰총장이 와병 중인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를 문병하고 사과하는 자리에 배석해 화제가 됐다. 김 검사는 박 열사의 부산 혜광고등학교 동기다. 그는 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고교·대학(서울법대) 1년 후배로, 두 사람은 매우 절친한 사이라고 검찰 내부에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조 수석은 “김기동 검사와는 지난 10년 이상 밥 한 끼 또는 차 한 잔 같이 한 적 없다”고 알려왔다.)

당선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관련된 중대 사건의 결론은 허투루 내려지지 않는다. 검찰총장과 그를 보좌하는 차장, 대검 중수부장 등이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지시하고 다듬는다. 당시 대검 지휘부는 임채진 검찰총장, 권재진 대검 차장, 이귀남 중수부장으로 구성돼 있었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2007년 11월 임명장을 받았지만, 노 전 대통령을 죽음(2009년 5월23일)으로 몰고 간 ‘박연차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는 그 책임을 진다며 2009년 6월 중도 사퇴했다. 애초 엠비 수사가 시작될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바로 그였다. 임 총장은 나중에 ‘후배’ 검찰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지나고 보니 (총장으로서의) 영광은 짧고 오욕은 길더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권재진 대검 차장의 행로는 임 총장과 판이했다. 그는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검사 옷을 벗은 뒤 2009년 9월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엠비 수사 당시 검찰 ‘넘버 투’에서 엠비의 핵심 참모로 변신한 것이다. 그는 2011년 8월 엠비 정부의 마지막 법무부 장관으로 부임하기까지 만 2년 동안 민정수석을 지내며 대통령과 그 주변 관리, 권력기관 통제 등을 맡았다. 그런데 최근 검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을 통한 거액 ‘뒷돈’ 수수 등 엠비 개인비리의 대부분이 그가 민정수석으로 재임하던 시점에 저질러졌다.

더구나 그는 당시 자기 휘하에 있던 김진모 민정2비서관(전 서울남부지검장)이 관여한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의 ‘윗선’이라는 의심을 사며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남긴 법무부 장관 취임사(2011년 8월12일)는 읽을수록 아이러니하다. “사회 곳곳의 부정부패는 선진일류국가 도약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구조적 비리와 고질적 부패를 뿌리 뽑아, 깨끗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법무부와 검찰의 역량을 결집해 나갑시다.”

엠비의 고려대 후배인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도 엠비 정부 내내 탄탄대로를 걸었다. 중수부장 다음에는 고검장으로 승진해 대구고검장과 법무부 차관을 지냈고, 2009년 9월부터 권재진 수석이 부임하기 전까지 만 2년 동안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검사 출신들이 총장 못지 않게 선호하는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 보기 드물게 ‘장수’를 한 것이다.

2008년 이명박 특검 당시 정호영 특검, 박정식 2팀장, 차맹기 검사, 조재빈 검사(왼쪽부터). 한겨레 자료사진

#2. 2008년 2월, 이명박 특검

검찰의 엠비 수사가 실패로 돌아가자 국회는 우여곡절 끝에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대통령 선거일 이틀 전인 12월17일 처리된 특검법의 정식 명칭은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 혐의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2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특검법에 따라 2008년 1월7일 판사 출신인 정호영 변호사가 특검에 임명된다.

“좋은 분이죠. 부드럽고 합리적이고. 그 기수에서 대법관 후보로도 거론이 됐었고. 근데 수사를 하실 분은 아니었어요. 수사를 모른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그때 특검 추천은 특이하게도 대법원장이 하게 돼 있었어요. 이용훈 대법원장이 1번, 2번으로 생각한 후보들이 모두 고사를 하는 바람에 그 분으로 간 거예요. 이미 당선돼서 취임식만 앞둔 차기 대통령인데, 누가 그런 수사를 하려고 하겠어요. 결국 사람 좋은 정 변호사가 거절을 못했던 것 아닌가….” (법원 고위직 출신 변호사)

특검은 팀을 4개로 나눴다. 1팀이 LKe뱅크·BBK투자자문·옵셔널벤처스 등을 통한 주가조작, 2팀이 도곡동 땅과 다스 지분·주식과 관련된 사건, 3팀은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센터(DMC) 부지 관련 의혹, 4팀이 검찰의 피의자 회유·협박 및 편파·왜곡 수사를 각각 맡았다. 이때 특검은 법에 정해진 최대치 10명의 검사를 파견받았다.

이번 검찰 수사에서 엠비 구속으로 이어진 직접적인 혐의는 다스를 맡은 2팀의 영역이었는데, 그 팀장이 현재 부산고검장인 박정식 부장검사(당시 인천지검 특수부)였다. 그 아래 파견 검사로는 현재 수원지검 1차장인 차맹기 검사(당시 안산지청)와 대검 검찰연구관(검찰개혁추진단)인 조재빈 검사(당시 청주지검)가 있었다.

이명박 특검은 취임식을 앞둔 엠비에게 ‘비단 꽃길’을 열어줬다. 정호영 특별검사가 2008년 2월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에서 특검보들을 배석시킨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다스.도곡동 땅 차명소유 의혹 등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그래서, 수사 결과는? 완벽한 무혐의였다.

“관련자 46명, 68회 조사. ㈜다스 법인계좌, 이상은 급여 계좌 등에 대한 입·출금 내역 추적. 검찰 수사기록 21권, 계좌추적 기록 8권, 회계자료 36권 분석. 금융기관에 입출금 전표가 보조돼 있는 최근 5년간 다스 포괄계좌 전체에 대한 입출금 내역을 철저히 추적했으나 다스의 법인자금이 당선인 측에 유출된 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음. (…) 당선인은 도곡동 땅 매각대금 263억원 상당 금융자산을 (처남) 김재정·(형) 이상은 명의로 차명 소유한 사실도 없었고, 다스 주식을 김재정·이상은·김창대 명의로 차명 소유한 사실도 없었다. (…) 확인되었으므로 당선인에 대한 공직자윤리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모두 혐의 없다.” (2008년 2월21일 특검 수사결과 발표문)

특검은 이번에 밝혀진 다스 비자금의 ‘꼬리’를 잡았지만 엠비에게 흘러간 ‘몸통’ 350억원은 밝혀내지 못했다. 2008년 초 특검이 “철저히 추적”했다고 장담했던 “다스 포괄계좌 전체”의 기간은 5년. 같은 기간 경리직원 조아무개씨는 120억원을 횡령한 것 말고도 엠비 비자금과 김성우 전 대표 등이 관여된 비자금 등을 모두 조성하고 관리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 사람에 의해 각기 다른 세 가지 경로로 비자금이 만들어졌지만, 특검은 그 중 조씨 개인 횡령 한 가지만 봤다고 한다. 그러고도 그들은 국민 앞에 엠비에겐 “(범죄) 사실이 없다”고 단언했다.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던 검찰 수사에서 한참을 더 나간 것이다. 엠비 취임식장에 꽃길 아니라 비단길이라도 깔아주고 싶었던 것일까.

특검 수사에서 ‘면죄부’를 받은 엠비는 닷새 뒤 대통령에 취임했다. 엠비정부 첫 검찰 인사에서 박정식 2팀(다스팀)장은 모든 특수검사들이 꿈꾸는 대검 중수부의 과장(2과장)으로 영전한다. 거기서 그는 국세청 특별 세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구속함으로써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의 터를 닦았다. 그러고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엠비 고향을 관할하는) 포항지청장, 부산지검 2차장, 서울북부지검 차장 등 검사장 승진에 충분한 이력을 쌓았다.

차맹기 검사도 박 검사를 따라 동기들 모두가 선망하는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으로 입성했다. 이어 부산지검 특수부장, 서울남부지검의 특수부 격인 형사6부장, 수원지검 특수부장 등 특수 요직을 두루 거쳐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장으로 안착한다.

‘막내’ 조재빈 검사는 특검 수사 때 자금추적을 전담했었다. 특검이 끝나고는 정책홍보관리실 검사로 법무부에 입성한다. 이어 서울서부지검에서 부부장을 달았다. 그는 참여연대와 민변이 지난 해 정호영 전 특검을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을 때 검찰 내부 통신망(이프로스)에 ‘10년 전 다스 파견 검사의 소회’라는 제목의 반박 글을 올렸다. “대한민국 검사로서, 여러분들의 선후배로서 전혀 부끄러운 일을 한 바가 없다.” 엠비가 가져간 350억원 규모의 비자금이 드러난 뒤에도 그의 입장이 한결같은지 궁금하다.

“수사에서도 다른 업무에서도, 정권에 대한 충성과 보상(인사)을 연계시켜 검찰을 본격적으로 망치기 시작한 것이 엠비 정부 때부터다. 11년 전 엠비 수사야말로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가장 먼저 조사해야 할 사안이 아닐까.” (검사장 출신 변호사)

서울중앙지검의 고위급 검사가 기자들에게 준엄한 단죄사를 말하고 있을 즈음, 어느 검사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난 엠비가 구속되면 검찰총장이 국민에게 정식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년 혹은 11년 전에 밝힐 수 있었던 범죄를 그때 바로잡지 못하고 놓쳐서 죄송하다고 말이죠. 문 총장 본인의 재임 중 잘못은 물론 아니죠. 그러나 범죄자를 밝혀내 단죄하라는 직무에 소홀했던 검찰의 책임은 늦게라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3월20일 오후 부산 수영구 남천동 남천사랑의요양병원에 입원중인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를 만나 사과 인사를 전하고 있다. 문 총장 바로 옆이 박정식 부산고검장, 그 옆이 김기동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이다. 이 두 사람은 각각 2008년 이명박 특검에서 다스수사팀의 팀장, 2007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부장으로 엠비 수사에 관여했으나 최근 수사에서 드러난 범죄 혐의를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