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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제2, 제3의 다산신도시..대한민국은 택배전쟁중

김성훈 입력 2018.04.11. 05:00 수정 2018.04.1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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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없는 단지' 확산에 전국 곳곳서 택배전쟁
구리 갈매지구 안전 이유로 택배차량 제한
서울 성동구 아파트 손수레도 막아 이중고
'행복도시' 세종시 택배기사에겐 '배송지옥'
구로구 천왕동 이펜하우스 실버택배로 상생
10일 오후 경기도 구리시 갈매지구와 서울 성동구 소재 아파트에서 택배 기사들이 손수레에 택배 물건을 싣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신중섭 조해영 기자)
[이데일리 김성훈 신중섭 조해영 이윤화 기자] 10일 오후 경기도 구리 갈매지구에 있는 한 아파트 정문 인근에 택배차량 한 대가 들어섰다. 택배 기사는 입구 쪽 도로에 차를 세운 뒤 손수레를 내려 물건을 가득 싣고 나르기 시작했다. 수레를 끌고 수차례 단지 안을 오가던 택배기사는 이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택배기사 한모(32)씨는 “하루 많게는 250개 넘는 택배물건을 수레에 싣고 직접 배달한다”며 “시간을 지체하면 퇴근이 늦어진다”고 말하고 바쁜 발길을 옮겼다.

같은 시각 서울 성동구 소재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단지 입구에 차량을 정차한 택배 기사는 손수레를 끌고 지하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아파트 단지는 택배차량은 물론 택배기사들이 끄는 손수레도 시끄럽다며 사용을 막았다. 택배기사들은 수레에 택배물건을 싣고 지하주차장 통로로 오간다. 택배기사 고모(40)씨는 “주민들이 택배차량은커녕 손수레 소리도 시끄럽다고 지하로 다니라고 요구해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최근 논란을 빚은 다산 신도시 ‘택배전쟁’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민 안전 등을 이유로 ‘차 없는 아파트’를 표방한 아파트 단지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부터다. 이들 단지는 소방차 등 긴급차량을 제외한 방문·주민 차량의 지상 통행로를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반면 단지를 연결하는 지하주차장은 층고가 2.3m 높이여서 차고(2.5~3m)보다 높은 택배차량은 진입조차 불가능하다.
10일 오후 경기도 구리시 갈매지구에 있는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에 ‘탑차 절대 진입 금지’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지하주차장 입구가 낮아 탑차 진입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막기 위한 경고문이다. (사진=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 “아이들 안전이 최우선” 택배차량 이동 막은 구리 갈매지구

구리 갈매지구의 경우 일부 단지에서 택배 차량의 지상이동을 막고 있다. 입주민들과 택배회사와 갈등의 시작은 다산 신도시와 비슷하다. 2016년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 차량과 아이의 충돌 사고가 일어나자 구리 갈매지구 일부 단지는 택배차량의 지상통행을 제한했다.

구리 갈매지구 한 아파트 단지 관리직원은 “아이들 안전에 대한 입주민들의 우려가 큰데다 보도블록 파손 등 문제 때문에 지상통행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민 김모(40)씨도 “단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부피가 큰 택배는 경비실에서 맡기고 지상에 있는 무인 택배함을 이용하면 문제 없다”고 했다.

그러나 택배기사들 얘기는 다르다. 택배 기사 김모(60)씨는 “하루에 수백개씩 택배가 쌓인다. 무인 택배함은 금세 무용지물이 된다”며 “눈이나 비가 오는 날에 수레를 끌고 생수나 쌀같이 무거운 택배를 나르고 나면 파김치가 된다”고 토로했다.

서울 성동구의 또 다른 아파트 단지도 마찬가지다. 올해 3월 입주민들이 택배회사에 차량을 개조해 차고를 낮춰 지하주차장을 이용하거나 지상에서 수레로 배송하라고 요구하자 택배회사가 ‘택배 불가 지역’으로 지정하고 배송을 거부해 마찰을 빚었다.

택배기사 김모(60)씨는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주민들 마음은 이해한다”면서도 “지상통로 이용을 막아 택배기사들이 겪는 고충도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뿐만이 아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도 수년째 택배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세종시 택배기사들에겐 3생활권 아파트 단지들이 기피대상이다. 일부 아파트 단지는 실버 택배 제안마저 거부했다.

이곳에서 택배 기사 일을 하는 최모씨는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손수레를 이용해 2년 넘게 배송을 이어오고 있다”며 “일이 너무 힘든 나머지 택배기사들도 7~8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10일 오후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택배 기사가 손수레에 택배 물건을 싣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 택배전담지원센터·실버택배로 상생

이러한 상황에서 택배전담지원센터나 실버 택배 등을 활용해 주민과 택배회사가 상생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 구로구 천왕동 천왕이펜하우스 3단지 아파트는 2015년 8월 단지 내에 ‘라이프센터’ 문을 열었다. 서울도시주택공사(SH공사) 주도로 설립한 이곳은 입주민들에게 공구를 빌려주거나 단지 내 실버택배 업무를 맡고 있다.

택배기사들은 단지 내에 진입하지 않고 이곳에 들려 택배물건을 맡기면 이곳에서 일하는 실버 택배 어르신들이 각 가구로 택배물건을 다시 배송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실버 택배 어르신 20명은 하루 2~3시간 일하고 월평균 45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구청 보조금 15만원에 택배 배송 건당 금액을 받는 구조다. 보조금 외에 배송료은 택배회사 측이 부담한다. 실버 택배에서 일하는 20명 중 7명은 이 아파트 주민이고 나머지 13명은 인근 지역에 거주한다. 현재 라이프센터에 택배를 위탁하는 곳은 CJ대한통운과 우체국 택배다.

아파트 입주민이자 실버 택배 일을 하는 백창현(85)씨는 “실버 택배일을 하면서 주민들을 더 많이 알게 됐다”며 “규칙적인 생활에 용돈도 벌 수 있는 점 또한 장점이다”고 말했다.

황난실 라이프센터 실장은 “모르는 얼굴의 택배 기사분들이 오시는 것보다 주민들도 안심할 수 있다는 점이 크다”며 “다른 아파트에도 이러한 시설이 생긴다면 택배 문제들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오후 서울 구로구 천왕동 천왕이펜하우스 3단지 아파트 내 ‘라이프센터’에서 일하는 실버택배 직원들이 택배물건을 분류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김성훈 (sk4h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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