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99돌]①임시정부 요인들은 왜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채택했을까?

이현우 2018. 4. 1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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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1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기반이 될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새로운 나라와 정부의 이름을 뭐로 할 것인지를 놓고 여러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신석우는 다시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보자"며 대한민국이란 국호에 다시 힘을 실어 말했고, 이 부연설명을 들은 임시정부 요원들의 만장일치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호인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그나마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소극적이나마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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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 앞 야외광장에서 열린 제99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기념식에서 임시의정원 회의가 재연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1919년 4월1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기반이 될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새로운 나라와 정부의 이름을 뭐로 할 것인지를 놓고 여러 의견이 나왔다. 여기서 나온 국호 중 하나가 '대한민국(大韓民國)'이었다. 일제 침탈에 쓰러진 대한제국의 법통을 이어받고, 대한제국의 순종황제가 국권을 포기한 순간부터 민주공화국이 시작됐음을 알리기 위해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탄생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제안한 이는 독립운동가인 우창(于蒼) 신석우(申錫雨)였다.

물론 이 국호에 대한 이견도 있었다. 당시 이 회의에 참석했던 여운형(呂運亨)은 이 국호를 꺼려했다고 알려져있다. 대한이란 이름으로 나라가 망했는데 또 대한을 쓸 필요가 있는냐는 반론이었다. 일제에 패망한 대한제국의 이름을 굳이 따라 쓸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당시엔 많았다고 한다. 500년 넘게 써오던 전통적인 국호인 조선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이야기부터 갖가지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또한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이미 멸망한 국가의 이름을 계승 왕조나 국가가 바로 사용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신석우는 다시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보자"며 대한민국이란 국호에 다시 힘을 실어 말했고, 이 부연설명을 들은 임시정부 요원들의 만장일치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호인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다음날 임시헌장이 발표되면서 공식적으로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이틀 뒤인 4월13일 정부 수립을 대내외에 공식선포했다. 3.1 만세운동으로 확인된 독립의 열기를 통해 태어난 대한민국 정부는 이렇게 시작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을 앞두고 1945년 11월3일 충칭의 연화지 청사에서 찍은 기념사진 (사진=서울시 제공)

이후 임시정부는 광복이 오는 1945년 8월15일까지 갖은 고초를 겪었다. 좌우 세력간 대립은 물론 조선총독부의 방해와 일제의 만주침공과 상하이사변으로 인해 계속 서쪽으로 밀려나면서 만주와 중국 각지에 흩어져있던 무장독립단체들과 연계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1940년에 이르러서야 임시정부 산하에 한국 광복군이 창설됐고 1945년 8월~9월에 국내정진군 선발대가 서울 진공작전을 계획하기도 했으나 실행 전에 일제가 항복하면서 좌절되고 말았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국내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으로 점령됐고, 각각 군정이 실시되면서 임시정부는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

임시정부에 대한 법통 논란은 이때부터 심각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임시정부를 부르주아 집단으로 간주, 독립운동 단체로 인정하지 않게 됐다. 그나마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소극적이나마 계승했다. 정부 수립 이후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천명하고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으로 기산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법통은 임시정부로 천명돼왔다. 1987년 9차 개헌된 헌법 전문에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후략)"라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확인시키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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